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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순 Feb 22. 2022

이토록 숨 막히는 비감

가슴 아픈 사람 이야기


평소 우리가 흔히 아는 감정들이 내 안에 쌓여 있었다. 우울감, 불안함, 분노, 좌절,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희망, 낭만, 기대, 또다시 찾아온 좌절 등등 수많은 감정이 얽히고설켜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자리 잡았다. 무엇이 낙관적이고 무엇이 비관적인지 구분할 수도 없이 얽혀있다. 전혀 새롭지 않고, 평생을 느껴왔던 흔하디 흔한 감정이기에 이대로 놔둬도 나중에 잘 풀어 내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 덕에 당장은 그 감정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무거운 감정을 가득 안은채 침대에 누웠다. 무거운 감정 꾸러미에 짓밟힌 내 몸은 금방 피곤함을 느꼈지만,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들이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잠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이 두려워 떠오르는 생각들을 억지로 쳐내고 잠에 들면, 깊지 않은 수면 속에서 현실과 꿈 사이를 수도 없이 오갔다. 현실과 꿈을 넘나 들어도 깨어있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렇게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은 감정들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내 온몸의 구멍 사이사이로 쏟아져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온몸의 작은 구멍들은 눈덩이처럼 불어 단단히 뭉쳐진 덩어리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덩어리들을 다시 삼키는 것뿐이었다. 밀가루 반죽처럼 질척이고, 돌덩이처럼 단단히 뭉쳐있는 그 덩어리를 억지로 삼키고 나니 당장의 위험함은 면했지만 그 덩어리들은 다시 내 속에서 겹겹이 쌓여 어떤 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악취가 나는 감정의 늪, 더러운 쓰레기 더미, 깊은 심연 속에서 올라오는 이 답답한 체기. 이 감정들이 언제부터 쌓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의 사람들과 줄지어 다닐 때부터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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