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죽음을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심지어는 사랑했다.
외롭고, 힘들고, 지친 내 곁에는 항상 죽음이라는 선택지가 놓여있었다.
죽음과는 정말 친했다. 어느정도로 친했냐면, 5층 옥상에서 내려다 보는 땅바닥과의 거리가 10cm도 나 보이지 않을 만큼 친했다.
죽음은 나에게 말을 건 적없이 그저 고요히 내 곁을 지켜줬다. 손목을 긋기위해 칼을 집어들 때도, 떨어지기 위해 옥상에 올라 갈 때도 그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말 없이 내 옆에만 있어줬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줬다. 걔는 굉장한 수다쟁이라 하루종일 쉴 틈 없이 말을 걸었다. 걔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죽음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죽음은 나를 보채지 않았고 묵묵히 옆에 있어줬다.
걔는 자꾸 나에게 밖을 나가자고 보챘다. 문만 열면 네가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일 거라고 얘기했다. 처음에는 거부했다. 그러나 걔의 번지르르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호기심을 참지 못 하고 알았다고 말했다. 걔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뻐하며 나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나는 아차 싶어 황급히 죽음의 손을 잡았다. 나는 죽음이 없으면 두려워 했다. 간절하게 붙잡은 내 손을 죽음은 물끄럼히 쳐다봤다. 나를 따라오지도 않고, 떼어 내지도 않은 채. 나는 '걔'가 잡아 당기는 힘 때문에 얼떨결에 죽음의 손을 놓쳐버렸다.
안 돼! 다급히 소리쳤지만 죽음은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걔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흥얼거리며 문을 잡았다. 이렇게 절망하고 있는 내가 안 보이나?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걔의 손을 놓을려고 했다. 빠져나가는 내 손을 알고 있는 듯 꼭 붙잡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뺄 수 없게. 그리곤 천천히 문을 열었다. 도망쳤던 바깥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눈을 감아도 문 밖의 세상이 밝은 게 느껴졌다. 문득 너무나 궁금해 졌다. 나는 아직 살만 한가? 내가 겪어보지 못 한 무언가가 있을까? 내가..가치 있는 사람 일까? 나의 고민을 눈치챈 듯 걔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눈을 뜨고 걔를 바라보려고 했다. 하지만 눈을 뜨는 순간 정말 아름답게 빛나는 세계에 걔를 바라보진 못했다. 걔는 내 옆에서 나직이 속삭였다.
"어때, 예쁘지? 네가 죽음을 사랑하기엔 아직 겪어보지 못 한 일들이 너무 많지 않아? 이렇게 아름다운 일들이 언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인 거 같아. 이런 일을 기다리는 건 항상 두근 거리면서 기분이 좋거든. 그러니까..."
거기까지 얘기하던 걔가 말을 멈췄다. 의아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걔를 마주봤다. 그제야 걔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젠 나를 사랑해줘."
난 너의 미소를 보며 깨달았다. 나는 아직 감동 받을 일이 많구나. 내가 살아갈 수 많은 이유를 얘와 함께라면 찾을 수 있겠구나. 죽음은 나를 방관했지만 넌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나는 아직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살아 갈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나는 강하고,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