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 의한 불안
지금은 트렌드에 따라 직급이 사라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사원, 선임, 책임, 수석과 같은 직급이 있었다. 책임쯤 되면 자기 업무를 완전히 책임지는 사수가 되고, 종종 관리 업무도 맡게 된다.
나는 무난하게 책임으로 진급했다. 얼마 안 있어 작은 프로젝트 관리 업무가 주어졌다. 규모는 작았지만, 프로젝트 인원들을 체크하고 조율하는 일은 기존 업무와 달랐다. 나를 보조할 후배 두 명도 배치되었고, 그들에게 업무를 전달하고 진행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업무량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어려운 일을 맡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선임 때는 내 앞의 일만 처리하면 됐다. 주어진 보고서를 쓰고, 요청받은 자료를 만들고, 내 파트만 책임지면 그만이었다. 일이 끝나면 퇴근했고, 주말이면 일을 잊었다. 물론 가끔 야근도 했지만, 그건 내 손으로 처리할 일이 남아있을 때였다.
책임이 되고 나서는 달랐다. 내 일뿐 아니라 후배들의 일정도 봐야 했고, 다른 팀과의 조율도 신경 써야 했다. "이번 주에 이게 끝나면, 다음 주에 저기 넘어가고, 그러면 그다음 주엔..."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계산이 돌아갔다. 한 달 뒤, 두 달 뒤, 분기 말까지. 시선이 자꾸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걱정이 늘어났다. A팀 일정이 늦어지면 우리 프로젝트에 영향이 갈 것 같았고, 후배가 실수하면 전체 흐름이 꼬일 것 같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퇴근해도 일 생각, 주말에도 월요일 걱정, 휴가 때도 복귀 후를 생각했다.
처음엔 이게 당연한 줄 알았다. 책임이 됐으니 책임감이 생긴 거겠지. 프로젝트를 맡았으니 신경 쓰는 게 맞겠지.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어느 날 밤이었다.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내일 회의 준비는 끝났다. 당장 급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 머릿속은 계속 돌아갔다. 다음 주 일정, 다음 달 마감, 분기 목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집에 왔는데도 일 생각. 주말에도 월요일 걱정.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뭔가를 걱정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이게 끝이 있기는 한 건가?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책임이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것은 단순히 업무가 늘어나는 게 아니었다. 불안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염려하는 존재'라고 불렀다. 염려(Sorge)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 자체를 가리킨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와서, 현재에 머물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존재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고,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앞으로 올 것들을 준비한다. 이 모든 게 한꺼번에 일어난다. 과거의 무게를 지고, 현재의 일을 처리하면서, 미래를 내다본다. 이것이 염려다. 인간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방식.
문제는 이 염려가 평소에는 의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출근하고, 회의하고, 보고서 쓰고, 퇴근한다. 염려는 배경처럼 작동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선임 때의 나도 그랬다. 염려하며 살았지만, 그 범위는 좁았다. 오늘 할 일, 이번 주 마감, 내 책상 위의 업무. 그 정도였다. 염려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졌던 건, 실제로 가벼워서가 아니라 범위가 좁았기 때문이다.
책임이 되면서 염려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내 일뿐 아니라 후배들의 일, 다른 팀과의 일정, 한 달 뒤의 마감, 분기 말의 목표. 과거에 있었던 실수들을 기억하면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체크하고, 미래에 생길 문제들을 예측한다. 시야가 넓어지면서 염려의 무게도 무거워졌다.
그래도 처음엔 괜찮았다. '이 정도는 해야지' 하며 받아들였다. 책임이라는 직급은 이런 거겠지. 이게 어른이 되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몇 달을 버텼다.
그런데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잠 못 이루던 순간. 염려가 갑자기 의식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모든 걸 걱정하고 있지?' 일상의 균열. 하이데거는 이 순간을 불안(Angst)이라고 불렀다.
불안은 두려움(Fear)과 다르다. 두려움은 대상이 명확하다. 상사가 무섭다, 마감이 두렵다, 해고가 걱정된다. 구체적이다. 하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다. 뭔지 모르겠는데 불안하다. 딱히 급한 일이 없는데도 마음이 불편하다.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는데도 뭔가 불안하다.
그날 밤 내가 느낀 게 바로 그것이었다. 회의 준비도 끝났고, 급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 불안했다. 무엇이 불안한 건지 정확히 말할 수도 없었다. 그냥 불안했다. 책임이라는 자리가 주는 막연한 불안.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은 일상이 멈추는 순간이다. 평소엔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나는 왜 이 일을 하지?', '이게 끝이 있기는 한가?', '나는 왜 여기 있지?' 이런 질문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평소엔 자동으로 작동하던 염려가 갑자기 전면에 드러난다. 아,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왔구나. 과거의 일들을 떠안고, 현재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미래를 걱정하며. 끝없이 시간 전체를 가로지르며 살아왔구나.
책임이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단순히 직급 하나 올라가는 게 아니라, 염려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 내 앞의 일만 보던 시야가 전체를 보게 되는 것.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떠안게 되는 것. 그리고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것.
선임 때는 몰랐다. 책임이라는 게 단순히 '일을 더 잘해야 한다' 정도의 의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 전체를 책임진다'는 의미였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조율하며, 미래에 생길 일들을 예측하고 대비한다. 끝나지 않은 염려의 연속.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건 확실함 속에 사는 게 아니라, 불확실함을 떠안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될 거야"라고 미래를 설계하지만, 그게 정말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A팀이 일정을 지킬지, 후배가 실수하지 않을지, 다음 달 마감을 맞출 수 있을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그 불확실함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게 책임이다.
불안은 바로 이 불확실함에서 온다. 내가 지금 떠안고 있는 시간 전체가, 사실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가능성일 뿐이라는 자각. 그럼에도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 이것이 책임이 주는 불안의 본질이다.
가끔 또 불안이 찾아온다. 밤에 잠 못 이룰 때, 휴가 중에도 일이 생각날 때, 문득 '이게 언제 끝나지?' 하는 순간. 그럴 때마다 나는 안다. 아, 지금 내가 염려의 무게를 느끼고 있구나. 책임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하이데거는 이것을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염려하는 존재다.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이기에, 과거를 떠안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내다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끔, 그 사실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것이 불안이다.
불안은 불편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내가 여전히 책임을 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걱정이 없다는 건 책임도 없다는 뜻이니까. 불안하지 않다는 건 전체를 보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불안은 책임의 그림자다. 책임이 있는 곳에 불안이 있다.
문제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날 밤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염려하며 살았다. 프로젝트 일정을 체크하고, 후배들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다음 달 마감을 걱정했다. 일상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그 무게가 의식되는 순간이 왔다.
다만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안다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한지. 이것이 책임의 본질이라는 것을. 책임이란 시간 전체를 떠안는 것이고, 불안이란 그 무게를 자각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책임으로 진급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지금도 나는 염려하며 산다.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고, 현재의 상황을 조율하며, 미래의 일들을 걱정한다. 끝없는 시간을 가로지르며. 가끔 그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밤에 잠 못 이루며 "이게 언제 끝나지?" 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자리의 무게라는 것을. 책임이라는 자리는 불안과 함께 온다는 것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그 의미를 안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나는 지금 시간 전체를 살아가고 있구나. 과거를 떠안고, 현재를 조율하며, 미래를 염려하고 있구나. 그게 책임이고, 그 무게가 불안으로 느껴지는 거구나.
그리고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회의 준비하고, 후배들 일정 체크하고, 다음 주 계획 세우고. 염려는 다시 배경으로 물러나고, 나는 또 일상을 살아간다. 불안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