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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Jun 27. 2020

군대

바둑대회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일병 때 있었던 일이다. 사단 바둑대회가 열렸다. 어릴 적, 바둑학원을 다닌 경력이 있는 나는 우리 분대 최강자였다. 당연히 참가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바둑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3인 1조여야 했고, 2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분대에는 인물이 없었다. 타분대에서 바둑 좀 둔다고 알려진 2명과 결국 한 조를 이루었고, 그 구성원은 한일병과 나, 장이병이었다.


타 분대지만 모두 선후임 관계였고, 한일병은 나보다 두 달 선임, 장이병은 나보다 두 달 후임이었다. 장이병은 대학에 입학해서 바둑을 조금 배웠고, 한일병은 군대에 와서 처음 배웠다. 당시에는 이미 전역했지만 부대에는 바둑 고수였던 선임이 한 명 있었고, 그에게서 한일병은 처음으로 바둑을 배운 것이다. 나는 이들을 이끌고 대회에 나가 마치 포에니 전쟁의 한니발이 로마를 휩쓸고 다녔던 것처럼, 바둑대회를 휩쓸고 다닐 것을 상상했다.


포에니 전쟁, 그중에서도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전쟁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카르타고의 식민지였던 스페인 지역의 사령관이 된 한니발은, 사군툼 점령을 시작으로 로마 원정길에 나선다. 로마는 한니발의 진격을 막기 위해 마르세유에 병력을 파견한다. 하지만 한니발은 로마의 예상을 깨고 마르세유로 가지 않고,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땅에 당도한다. 이탈리아 땅에서 트레비아 전투를 시작으로 십수 년간 로마를 휩쓸고 다닌다.


나는 그런 한니발을 꿈꾸었는데, 이는 처음부터 무리수였다. 바둑학원을 다닌 경력은 너무 어릴 적 이야기였고, 장이병과 한일병은 내가 이끌고 다닐 실력이 아니었다. 서로의 실력을 비교해보는 첫 대국 때는 내가 둘을 전부 이겼는데, 그때만 제외하고 장이병과 나의 전적은 비슷했다. 한일병은 천재였다. 군대에서 처음 바둑을 시작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그마저도 나날이 발전해서 나중에는 내가 이기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내 머릿속 시나리오에서 한니발은 한일병이 맡아야 할 판이었다.


사단 바둑대회가 시작되었다. 대회는 본래의 바둑판보다 간소화된 13줄 바둑판으로,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3대 3 경기이므로 3명 중 2명이 이긴 팀이 승리하는 방식이었고, 우승까지는 총 다섯 번의 대국이 필요했다. 토너먼트 대진표는 상당히 좋았다. 나는 거의 참석한 적 없지만, 매주 사단에서 진행하는 바둑 교실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서 제법 잘 둔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다른 조에 속해있었다. 우리는 나와 장이병이 서로 번갈아가며 지기는 했지만, 무적의 한일병을 중심으로 매 경기마다 2승 혹은 전승을 기록하며 마치 한니발처럼 나아가고 있었다.


실제로 한니발은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벌인 트레비아 전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땅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이탈리아는 로마 땅이었으며, 로마는 로마 군단병이라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국가였고, 로마의 장군들은 굉장히 유능했다. 한니발은 이런 로마를 상대로, 적국의 땅에서, 제한된 병력으로 트라시메누스 호수 전투, 칸나이 전투라는 전설을 만들어냈다. 오죽하면 한니발을 그나마 애먹게 만들었던 파비우스의 지연전은 적군에 한니발이 있으면 절대 싸우지 말고, 한니발이 없으면 바로 싸우라는 식이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여유롭게 이겨나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훈련소 동기가 한 명 보였다. 딱히 친하지는 않았지만 바둑을 제법 둔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있기에 전적을 확인해 보았다. 깜짝 놀랐다. 그 동기가 속한 조는 시작부터 죽음의 조라는 소리를 들었던 조이다. 그리고 그 동기는 그 조에서 에이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계속 깨부숴 나가고 있었다. 관전을 해보니 동기와 같은 팀을 이룬 나머지 두 명의 실력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바둑 대회에 출전한 팀 대부분의 구성은 이랬다. 에이스가 보통 한 명 정도는 있지만, 나머지 두 명은 실력이 고만고만했다. 그래서 에이스라 부를 수 있는 한일병과 고만고만한 실력 정도는 넘어서는 나와 장이병으로 구성된 우리 팀이 승승장구한 것이다. 저 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무엇보다 저 팀은 훈련소 동기가 죽음의 조에서 에이스로 알려진 사람들을 일부러 도맡아서 전부 이겨버리는 중이었다. 우리보다는 바로 저 동기가 한니발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 팀은 로마와 스키피오가 되어야 할까.


한니발은 전설적인 장군이지만, 결국 2차 포에니 전쟁의 승리자는 로마였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땅을 휩쓸고 다닐 때, 로마는 한니발이 지원을 받아 힘을 얻는 것을 두려워하여 한니발의 본거지인 스페인으로 스키피오를 파견한다. 스키피오는 스페인의 카르타고 노바를 점령하고, 바이쿨라 전투를 치르며, 마침내 일리파 전투라는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내어 스페인의 카르타고 세력을 괴멸시켜 버린다. 스키피오가 차마 막지 못했던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의 지원군이 로마에 당도하자, 이 둘이 합류하기 전에 로마의 뛰어난 집정관 가이우스 클라우디스 네로가 하스드루발의 군대를 괴멸시켜버린다.


우리 팀은 그렇게 로마처럼 한니발을 깨부수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마침내 결승에서 훈련소 동기의 팀과 맞닥뜨린 것이다. 상대적으로 쉽게 올라왔으며, 2승 1패라는 전적이 고루 있었던 우리 팀과는 달리, 동기의 팀은 죽음의 조에서 전승으로 올라온 팀이었다. 대신 나는 저 팀을 계속 관찰한 덕분에 저 팀의 구성을 얼추 알았지만, 반대로 훈련소 동기의 팀은 우리 팀을 전혀 몰랐다. 우리 팀의 에이스를 상대가 모르니 대전 상대를 고를 기회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했다. 우리 팀의 에이스와 상대팀의 에이스가 붙으면 우리 팀이 이길 수 있을까. 정말 무적의 한니발 같은 저 훈련소 동기를 우리 팀의 에이스인 한일병이 이길 수 있을까. 한일병이 스키피오가 될 수 있을까.


로마는 하스드루발의 군대를 막아냈지만, 여전히 한니발의 군대는 어쩌지 못했다. 결국 스페인을 정리한 스키피오는 로마의 집정관이 되어 카르타고의 본국, 아프리카를 직접 쳐들어간다. 카르타고 본국의 군대를 격파하고, 카르타고에게 한니발을 불러들이라고 협박한다. 카르타고는 한니발을 본국으로 불러들이고, 한니발과 스키피오는 이탈리아가 아닌 카르타고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인다. 전설이었던 한니발의 패배이자, 2차 포에니 전쟁의 종결을 짓는 자마 전투이다. 그렇게 2차 포에니 전쟁은 결국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스키피오는 한니발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역사적인 평가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다. 한니발은 '전략의 아버지'라고 까지 불리지만 스키피오는 그 정도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한일병도 바둑에 입문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 만큼 아직은 버거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훈련소 동기의 앞자리에는 내가 앉게 되었다. 대회날 성적이 제일 좋지 않은 내가 에이스를 상대하여 1패를 가져간다. 대신 나머지 두 명이 어떻게든 이겨줘야 하는 것이다.


훈련소 동기는 나에게 물었다.

"너 잘해?"

"아니, 내가 제일 못해. 그래서 내가 네 앞에 앉은 거야. 네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아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상대의 멘탈을 흔들려는 얕은 수작이기도 했다. 역시나 동기의 멘탈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피식 웃는 수준으로 그쳤다. 나는 최대한 지연전을 펼치려 했다. 혹시나 우리 팀 나머지 두 명이 이기면, 동기의 멘탈도 타격을 받지 않을까. 그럼 나에게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문제는 내 실력과 훈련소 동기의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순식간에 져버렸다. 결승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자리이니 만큼, 우리 편이 진다는 것은 나머지 팀 멤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조마조마했다. 결과는…


한일병은 어렵지 않게 이겼다. 마지막으로 장이병이 상대를 간신히 이겼다. 우리 팀이 2승으로 결국 우승했다. 그제야 훈련소 동기의 표정이 일그러짐을 보았다. 그렇게 우리 셋은 사단장 포상휴가증을 받았다. 이 조그만 바둑대회가 내 머릿속에서는 로마와 한니발의 치열한 전쟁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나는 한니발도 아니고 스키피오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럴 능력도 되지 않았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주인공은 한니발과 스키피오였지만, 로마의 네로와 파비우스 같은 유능한 집정관들이 있었고, 나도 나름 그 정도 몫은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10년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할 만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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