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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Jul 05. 2020

대학 2

취업과 두려움, 불안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인생에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한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학 3, 4학년을 꼽을 것이다. 이전까지 한 사람의 말에 30분 이상을 집중한다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배를 넘는 시간을 대학 3, 4학년 때 해냈다. 나는 눈만 감으면 자는 사람이었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의지로 어떻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미리 자는 것이었다. 동아리 방에서 후배들의 눈총을 받으며 20여분 정도는 반드시 자고 수업에 들어갔다. 자투리 시간마다 도서관에 들려 예습, 복습도 하고, 책도 읽었다. 이전까지의 나와 비교해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왜 그때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나를 공부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취업 스트레스다. 취업을 하지 못했을 상황에 대한 두려움,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불안, 내 능력을 믿지 못한 불신. 예습, 복습까지 하며 수업에 집중하고, 전공서와 자기 계발서도 많이 찾아 읽고, 스터디와 프로젝트도 진행했던 나의 원동력은 두려움과 불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시기의 내가 접한 영화 중 하나가 '평화로운 전사'였다.


'평화로운 전사'의 주인공, 댄 밀먼은 체조 선수 유망주이다. 체조 선수이기에 올림픽을 준비하는 댄에게 금메달은 삶의 목표이다.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의 전부이다. 댄이 우연히 만난 주유소 직원 소크는 질문한다.

"올림픽 대표팀에 못 들면 자넨 뭘 할 텐가?"

댄은 대답을 회피하며 떠나버린다. 삶의 목표였던 금메달, 그런 금메달을 얻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 댄은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댄 역시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자신의 기량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훈련 중이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밤에 잠을 설치다가 소크를 만난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은 강한 원동력이 된다. 이전까지 그러지 못했던 나를 집중하게 만들고, 졸지 않게 만들고, 밤도 새우게 만든다. 예복 습도 하게 만들고, 책도 읽게 만들고, 스터디도 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두렵다. 두렵기에 조바심이 나고, 책은 실용적인 자기 계발서 위주로, 전공 공부는 이론보다는 실무 위주의 프로젝트성으로 찾아간다. 나보다 월등한 스펙을 갖춘 경쟁자를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불안한 취업 시장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있으면 시험에 나오거나 면접에서 물어볼까 봐 마음이 조급해진다.


댄의 친구인 카일이 훈련 중 부상을 당한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카일의 부상이 제게는 이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어요."

댄은 그때 잠시 들었던 자신의 생각을 소크에게 털어놓으며 자책한다. 그런 댄에게 소크는 생각이란 그저 마음의 반사 기관일 뿐 자신에 대한 그 어떤 것도 들어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런 머릿속 모든 불필요한 잡념들을 내던지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100% 경험하기 위해 헌신하라고 말한다. 핑곗거리 뒤로 숨지 말고.


공부를 함에 있어서, 아니 공부뿐 아니라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가장 거슬리는 것을 꼽으라면 불필요한 잡념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 경쟁자에 대한 질투, 부족함에 대한 자책 등등. 이러한 생각들은 머릿속에 맴돌며 내내 나를 거슬리게 한다. 이러한 잡념들을 그저 반사적인 반응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나 자신이라고 인지하게 되면 이는 점점 스노볼처럼 그 크기를 불려 나가 나를 끝없이 괴롭힌다. 이는 결국 핑곗거리가 될 뿐이다. 공부를 포기하게 만들고, 취업을 포기하게 만들고, 내가 뭔가 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소크는 댄을 처음 봤을 때부터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었으며, 마침내 댄은 그걸 볼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3시간 정도 걸리는 제법 높고 험한 산의 정상이었지만 댄은 자신이 볼 것을 기대하며 묵묵히 따라간다. 그리고 거기에는 돌멩이 하나만 있었다. 댄은 화를 내지만 소크는 말한다.

"나 역시 우리가 뭘 찾아낼지 확신할 수 없었지. 절대로."

소크의 말에 댄도 화내는 것을 멈추고 얘기한다.

"이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줬어요. 목적지가 아니라."


마침내 내가 취업이라는 목표를 이루었을 때, 나는 행복할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아니, 돌멩이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크와 댄처럼 그것을 이룬 지금은 알 수 있다. 취업 뒤에도 수많은 두려움 거리가 산재해 있다는 것을. 그럼 돈이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돈이라는 목표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갔을 때, 마침내 그것을 이루었을 때, 나는 행복할까. 그것은 정말 알 수 없다. 돈 많은 미래는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원동력을 얻어 문제를 해결해봤자, 그곳에 도착하면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할 수는 있는데 아마 또 다른 두려움과 불안이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댄이 영화 초반과 같은 상태로 이 길 끝에서 오로지 돌멩이 하나만 봤다면 미친 듯이 화내고, 괜히 따라왔다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의 댄은 소크와의 여행을 즐겼고, 그 끝에서 돌멩이 하나만 있었을지 언정 깨달음을 얻었다.


댄의 친구인 토미는 예선전 시합에 들어가기 직전 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댄은 토미에게 말한다. 오로지 이 순간에만 신경 쓰라고. 금메달이 아니라, 주변 시선이 아니라, 오로지 이 순간에만 집중하라고. 그러나 토미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일생은 심판들 앞에서의 20초를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금메달 때문이다.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신경 안쓸 수가 있겠냐. 자신은 행복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취업을 하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해냈을 때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 이러한 요소들을 원동력으로 나는 그래도 만족할만한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두려움을 벗어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후회한 적이 없을까. 만약 내가 취업에 실패했다면, 취업을 했어도 만족하지 못했으면, 나는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두려움과 불안은 강한 원동력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영화를 접한 그 시절에는 이 영화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냥 철학적인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몇 번이고 다시 보며 영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여 무엇을 하기보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즐기고, 지혜롭게 사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물론 생각만 그렇다. 지금도 집을 못 살까 봐 불안해하고, 고과를 걱정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벌금을 낼까 봐 글을 뒤늦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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