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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Jul 14. 2020

회사 1

상황과 스타일

나는 운이 좋았다. 신입 교육 기간을 무려 6개월로 잡은 우리 회사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 기간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신입이라고 자율 출근 제임에도 8시 출근을 고수했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느라 야근이나 주말 출근도 종종 했다. 그러다 결국 일정은 밀리고 인력은 부족했던 실무 개발팀의 요청으로 우리의 교육은 5개월째에 조기 종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입사 5개월 만에 실무 개발팀에 배치되었다.


내가 배치된 우리 팀의 우리 파트는 꽤나 긴급한 상황이었다. 일정은 촉박했고, 개발량은 상당했다. 나도 한몫 거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신입이었고, 아직 어리숙한 면이 많았다. 결국 파트장의 밀접한 관리 아래 일을 시작했다. 파트장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개발 스타일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자신의 개발 스타일을 전수하고 이렇게 개발해 나갈 것을 권했다. 이러한 스타일, 철학, 방법론 등은 상황에 딱 들어맞을 때는 어마 무시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 옛날 전국시대, 상앙의 법가와 같이 말이다.


상앙은 위나라 사람이었으나 위 혜왕은 상앙을 중용하지 않았고, 상앙은 위나라를 떠나 뛰어난 인재를 모집하던 진 효공을 따르게 된다. 상앙은 진 효공의 강력한 지원 아래 법가를 바탕으로 한 개혁, 법제 개혁을 실시한다. 이목지신(移木之信), 나무를 옮기면 상금을 주겠다 약속하고 이를 실제로 행하여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통해 강력한 법치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진나라는 전국칠웅 중에서도 최강으로 우뚝 서게 된다.


파트장의 스타일도 상앙의 법가처럼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물론 강점이 있는 스타일이었고, 배울 점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 스타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잡다한 개발량은 늘어난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는 안 그래도 일정이 촉박하고, 개발량은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 경력이 조금 쌓인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해야 할 일의 개발량과 일정을 전혀 유추해내지 못한 파트장의 실수였다. 파트장은 자신의 스타일을 권유했다. 하지만 일에 치인 내가 그 스타일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자 점차 강요하기 시작했다.


상앙은 법제 개혁을 통해 진나라의 국력을 강력하게 만들었지만, 개혁을 통한 상앙의 변법은 너무 강력하고 엄중다. 상앙은 교육과 교화, 인심의 중요성을 몰랐기에 독선적이었고, 오로지 강력한 법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였다. 당연히 적이 많았다. 든든한 지지자인 효공이 죽자 역적으로 몰려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작법자폐(作法自斃), 도망자 신세가 된 상앙은 자신이 만든 법에 걸려 결국 도망에 실패한다.


일정 탓에 파트장도 뒤늦게 직접 개발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이 발목 잡음을 깨달은 듯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자고 말했다. 자신이 만든 법에 스스로 걸린 상앙과 달리, 이 상황의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봤다. 8시 전 출근, 11시 이후 퇴근은 당연했고, 밤을 새우는 경우나 주말 출근도 종종 있었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뒤늦게 자신이 고수하던 스타일을 은근히 철회하는 모습은...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서야 그저 경험으로 치부하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상앙의 법가는 진나라를 초강대국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진시황과 이사에게 이어져 마침내 전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진나라가 급속도로 멸망한 원인에는 법가의 영향이 없지 않다. 전시 상황에서는 법가의 엄격함과 강력한 왕권이 조화를 이루어 부국강병을 이끌었다. 그러나 통일을 이뤄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법가는 융통성이 없고 가혹했으며, 넓은 영토를 관리하기에는 비효율적이었다. 결국 초한쟁패를 거쳐 뒤를 이은 한나라는 덕치를 말하며 유가를 내세우면서도 법가의 장점들을 수용하여 긴 안정기를 가져간다.


경력이 조금 쌓인 지금,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해가고는 있지만, 후배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않는다. 당시의 경험도 있고, 상황에 맞게 유연한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가 신입 때 남겨놓은, 이불 킥을 유발하는 코드들이 아직도 히스토리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괜히 잘난척하다가 후배들이 이것들을 보고 놀리기라도 하면… 그나마 위에서 언급한 당시의 개발 잔재들은 파트장의 스타일을 따라간 덕분인지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결국 배울 점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안전과 꼼꼼함을 추구해서 속도가 느려짐을, 나의 시간과 건강으로 메꾸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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