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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Jul 26. 2020

회사 2

선배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입사 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 우여곡절을 헤쳐나가며 연차를 쌓아갔고,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회사에는 나 이후로도 많은 신입 후배들과 경력직 선후배들이 입사해 있었다. 내 한 몸 챙기기 바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연차가 쌓이고 여유가 조금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제야 후배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신입이나 연차가 낮은 경력직 후배 몇들과 친분이 생기기 시작할 때쯤 나에게도 부사수라며 직속 후배 한 명이 생겼다.


처음 이것저것 알려줄 때는 하나를 말하면 둘셋도 알아듣는 것 같았고, 제법 열심히 따라오는 모습도 기특해서 나름 애지중지 챙겼던 것 같다. 그런 부사수고 직속 후배였지만 역시 사람이 일로 엮이면 마냥 편한 관계는 없는 듯하다. 같이 업무를 진행하다 보 가끔씩 나를 울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때는 짜증을 '약간' 내기도 하고, 핀잔을 '살짝' 주기도 하고, 라떼를 '조금' 시전 하기도 했다. '약간', '살짝', '조금'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후배가 어떻게 느꼈을지 알 수 없다.


가끔씩 후배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순수하게 칭찬해주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머리는 사실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후배가 제시한 의견의 약점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어떻게 이 건방짐을 처리하지라는 생각으로 빠지기도 한다. 참 부끄러운 마음인데 간신히 이런 마음을 다잡고 크게 실수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기껏해야 몇 년 차이 나지 않은 연차임에도 이런데, 그 옛날 퇴계 이황 선생은 고봉 기대승과의 논변에서 어떻게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


주자의 성리학에서 벗어나, 조선만의 독자적인 성리학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는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변. 쉽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존재의 근원에 가까운 '리(理)'와 존재 그 자체에 가까운 '기(氣)', 그리고 사덕-인(仁), 의(義), 예(禮), 지(智)-에 기반한 사단-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감정에 기반한 칠정-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의 관계에 대한 논변이다.


성리학은 맹자의 성선설에 기반했기에 인간의 근원, 인간의 '리'는 지극히 선한 것, 순선한 것이다. 반면에 인간 그 자체, 인간의 '기'는 선하기도, 악하기도 한 것이다. 이황은 사단은 '리'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의 발현이라고 말하며 사단과 칠정을 엄연히 구분한다. 이에 기대승이 반론을 제시한다. 기대승은 사단 역시 칠정에 포함되어 있는 감정이며, 그중에서도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 사단이므로 이황의 말대로 사단은 '리'에서, 칠정은 '기'에서 발현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황이 제시한 내용에 기대승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이 논변은 9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양측에서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제시한다. 이황은 사단은 '리'가 발현하되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현하되 '리'가 따르는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단은 '리'의 발현, 칠정은 '기' 발현이라는 입장을 꺾지는 않았다. 기대승은 사단은 순수한 본성의 발현이므로 '리'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칠정의 발현은 '리'와 '기', 선과 악을 겸하기에 오로지 '기'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꺾지 않는다. 이 논쟁은 훗날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의 인심도심(人心道心) 논쟁으로 이어진다.


사단칠정 논변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태도는 놀랍다. 퇴계 이황 선생은 이미 당시 조선의 대학자였고, 고봉 기대승은 이제 막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한 신인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이미 학계의 거두로 있는 사람과 이제 막 박사 과정을 마치고 실무에 투입된 사람 간의 논쟁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굽힘 없이 논리적으로 펼쳐나간 고봉 기대승도 대단하지만, 9년간 이어지는 논변 내내 고봉 기대승에 대한 퇴계 이황 선생의 태도는 매우 깍듯하고, 존경을 표하여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퇴계 이황 선생이 고봉 기대승에게 쓴 편지에 들어있는 내용들이다.

"공의 따끔한 논박을 받고서 성글고 잘못되었음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아는 것이 많아서 막힘이 없는 공에게 고루한 사람이 도움을 받은 것이 며칠도 안 되어 이미 이렇게 많은데, 하물며 함께 서로 따를 수 있다면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깨우쳐주시는 두 번째 서간을 받고, 제가 앞서 보낸 서간의 말이 엉성하고 잘못되었으며, 형평을 잃은 곳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연차가 조금 쌓였다지만 여전히 나보다 윗사람이 많은 회사다. 그중에서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깔끔하게 인정하고, 후배의 의견은 순수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나와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본받을 수 있는 선배로 꼽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선배가 될 수 있을까. 그저 노력해보려 한다. 그래도 회사 내의 동기들, 친구들 중에는 나만큼 후배들과 친밀한 관계인 사람 없다. 우쭐한 마음이 없지 않다. 물론 내가 다 아끼는 후배들이지만, 그 후배들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모른다.

"아, 저 꼰대는 왜 자꾸 우리한테 달라붙냐."

"경력 차이 얼마나 난다고 잘난 척 엄청 하네."

혹시 이런 마음이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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