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둥새 Aug 02. 2020

나는 좀비

사람 되기

나는 좀비다. 아침이 되면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출근한다. 회사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한다. 저녁이 되면 축 늘어진 몸뚱이를 이끌고 퇴근한다. 시키는 일을 열심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잘하려고 노력한다. 퇴근 후 그저 축 늘어져있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 생활도 즐긴다. 좀비도 먹을 것을 보면 열심히 뛰어가서 먹기 위해 노력한다. 평소에도(?) 목적은 모르겠지만 '으어어'를 외치면서 열심히 여기저기를 배회하는 나름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좀비 끝판왕이 있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나치 정권의 관료로 유대인 이송과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에게 잡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는다. 그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생각한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증오한 것이 아니다. 그저 권력과 명예 때문에 상부에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아이히만이 명백히 유죄인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대로 라면 아돌프 아이히만은 무서운 신념을 가진 악인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나치 아래 있었을 뿐인 좀비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아이히만과 같은 선상에 있을 수는 없다. 아무래도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저 눈앞의 먹을 것을 쫓아다니고 여기저기 배회하는 것을 즐기는, 좀비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다워져야 한다. 사람답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시키는 대로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여 '나'다운 선택을, '나'다운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좀비가 아닌 사람답게 만들어야 한다.


사람답기 위한 것, 나를 나답게 하기 위한 것은 생각하는 것, 사유가 아닐까 한다. 사유하기 위해서는 맨 바탕에서는 힘들고,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직접 체험한 것이 경험이 되고, 어떠한 경로를 통해 알게 된 것이 지식이 되어 '나'를 이룬다. 사유 없이 그저 경험과 지식만 있는 상태에서는 역시 좀비와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사유하여 나만의 정체성을 찾아야만, 나를 나답게 한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을까. 나의 주관이 생기고, 이것이 더욱 굳건해져 신념이 되고, 신념이 생겨 나만의 삶을 살아갈 때, 사람다움, '나'다움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나는 매일 같은 곳을 출퇴근하며 같은 업무를 해 나가기에 매일매일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좀비가 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 한다. 챗바퀴와 같은 일상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 지식을 쌓으려고 한다. 책을 읽고, 역사와 철학도 짬짬이 공부해보고, 이렇게 얻은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사유해보려 한다. 물론 그저 이끌려다니기만 하면 되는 좀비로서의 편한 삶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언제 사람이 될지 기약도 없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좀비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