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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Nov 21. 2020

최대 고민, 점심시간

고슴도치와 여우

하루 중 가장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시간, 점심시간이다. 점심시간의 고민은 업무 중의 고민과는 비할바가 아니다. 업무 중의 고민은 책임감에 하는 고민이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고민이다. 인정을 받고, 연봉을 받기 위해 하는 고민이다. 회사가 준 업무에 책임감을 갖고, 회사에게 좋은 평가를 기대하고, 회사에게 돈을 받기 위한 고민이다. 점심시간의 고민은 회사로 인한 고민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고민이다.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한 고민이다. 업무 중 고민에 비할바가 아니다.


우선 누구와 먹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혼자 먹을 수도 있다. 하려면 할 수 있지만, 나는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최근 회사에는 혼자 먹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후배들과 같이 먹는 것을 고려할 수도 있다. 후배들과 먹을 때는 불편하진 않지만, 완전히 편하지 않다. 친한 후배들과는 더 이상 체면이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신경이 쓰인다. 동기들은 그저 편하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선배들은 먼저 제시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일 자주 같이 먹는 그룹은 팀 사람들이다. 약속이 없으면 자동으로 팀 사람들과 먹게 된다. 편함과 불편함이 공존하지만, 언제나 나를 기꺼이 받아주는 가장 고마운 그룹이다.


그다음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고민하는 메뉴도 천차만별이다. 후배들과 먹을 때는 거의 내 마음대로다. 동기들과는 특정 메뉴에 대한 욕망이 가장 센 사람을 따라간다. 목소리가 제일 크기 때문이다. 선배들과 먹을 때는 그저 조용히 따라간다. 팀 사람들과 먹을 때는 서로 어느 정도 눈치를 본다. 메뉴가 제시되지 않으면 주도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그 사람들의 의도대로 간다. 그래서 메뉴도 한정적이다. 한식 아니면 면이 포함된 국물류이다. 무난하지만 종종 다른 것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메뉴들이다.

 

회사의 점심시간 분위기는 제법 자유로운 편이라, 위와 같은 고민을 하는데 제약이 별로 없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샐러드만 먹는 사람도 있고, 고구마와 삶은 계란 정도의 가벼운 도시락만 싸오는 사람도 있다. 혼자가 편하다며 혼자 식당에 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밥을 먹는 사람도 있고, 사람은 두 명인데 둘 다 스마트폰만 보면서 밥을 먹는 그룹도 있다. 상대적으로 후배 직급끼리 모여 조용히 선배 뒷담화를 까면서 스트레스와 식욕을 동시에 해소하는 그룹도 있고, 업무 회의를 하던 무리가 그대로 가서 업무의 연장선 마냥 점심 식사 내내 업무 이야기를 하는 그룹도 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지만 신입 사원 시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점심시간은 팀 사람들의 단합을 위한 자리처럼 업무 얘기를 하면서 같이 먹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샐러드를 먹거나, 혼자 먹는 경우는 궁상을 떠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의 이런 분위기는 거의 사라지고, 지금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정착되었다. 회사에서 특별히 이런 분위기로 이끌기 위해 주도한 적은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시대가 지나면서 과거보다 자유롭고, 다양하면서, 유연한 현시대 상황이 직원들에게 스무스하게 녹아든 것이 아닐까 싶다.


시대가 지나면서 과거의 시선과는 다른 현재의 시선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나고 있다.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의 시인 아르킬로코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중요한 한 가지를 알고 있다."

이 말의 주위 맥락을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인식으로 보면 이렇다. 여우는 잡다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꾀가 많지만 실속이 없다. 반면 고슴도치는 꾀를 부리지는 못하지만 근면, 성실하며, 부지런하고 한 방면에서 뛰어나다. 여우가 꾀를 부려 고슴도치를 잡아먹으려 했지만, 결국 고슴도치의 가시 방어를 풀지 못하여 물러난 우화도 유명하다. 이렇게 전통적인 사고에서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것은 고슴도치였다. 전통적 사고에서는 다방면에서 뛰어난 꾀돌이보다, 묵묵하고 우직한 성실함을 더 높이 평가했다.

 

전통적 사고라고는 했지만,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굳이 따지자면 고슴도치는 현시대의 전문가들이다. 한 분야를 우직하게 깊이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한 뛰어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대생들에게 인문학을 요구하고, 초중학생들에게 논리적 사고를 위한 코딩을 제시하는 시대이다. 고슴도치는 여전히 높게 평가되지만, 여우는 더 높이 평가받는 시대가 아닐까 한다. 


다음은 영국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이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분류한 고슴도치 형과 여우 형에 대한 설명이다.

"고슴도치형 부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 즉 명료하고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과 연관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런 시스템은 모든 것을 조직화하는 하나의 보편 원리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생각하며 느낀다."

"여우형 부류는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행동 지향적이며 생각의 방향을 좁혀가기보다는 확산시키는 경향을 띤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은 산만하고 분산적이다. 또한 다양한 면을 다루면서 아주 다채로운 경험과 대상의 본질을 포착해나간다."

고슴도치형은 명료하고 일관된다. 여우형은 산만하고 분산적이다. 하지만 고슴도치형은 하나의 시스템에 근거해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반면 여우는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다.


과거와는 달라진 현재의 시선은 고슴도치형이 좋다, 여우형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다른 개성일 뿐이다. 양쪽의 균형을 찾아가던지, 혹은 자신에게 좀 더 잘 맞는 부류를 찾아가면 된다. 점심시간에 샐러드를 먹든, 혼자 먹든, 선배 뒷담화를 하면서 먹든, 업무 얘기를 하면서 먹든, 개인 혹은 그룹의 성향 차이가 있을 뿐이다. 뭐가 좋다,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자유롭고,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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