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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Nov 25. 2020

회의 중 잡념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회의를 하다 보면 여러 상황을 겪는다. 깔끔하게 진행되고, 깔끔하게 끝나는 회의가 물론 대부분이지만, 축 늘어지는 회의, 멀고 먼 안드로메다로 빠지는 회의, 깔끔한 줄 알았는데 실상은 빈 껍데기였던 회의 등등의 상황을 겪는 경우가 간혹 있다. 가끔씩 그런 회의를 겪다 보면 회의에 집중하지 못한다.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떠오르는데 그중에 하나가 고대 그리스 작가인 아이소포스의 이야기, 즉 이솝우화의 이야기 중 하나인 '로도스' 이야기였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온 한 남자가 있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 자신의 모험담을 늘어놓는다. 로도스 섬에 갔다가 멀리 뛰기 시합에 참가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상상도 못 할 엄청난 거리를 뛰었다고 자랑한다. 만약 그 자리에 있었던 로도스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다면, 증언해 줄 수 있을 거라며 안타까워한다. 그렇게 자신의 무용담을 증명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그 남자에게 친구 중 한 명이 말한다.

"자, '여기가 로도스다'라고 생각하게. 그리고 여기서 뛰어보게."


증명할 수 있으면 길게 말할 필요가 없고, 보여줄 수 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끔씩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자, 여기가 로도스입니다. 한 번 뛰어보시죠."

로도스는 일종의 환상이다. 나의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다. 나는 로도스에서 상상도 못 할 엄청난 거리를 뛸 수 있다. 로도스에서 나는 깔끔하게 회의를 진행할 수 있고, 피피티를 이용한 환상적인 발표를 해낼 수 있으며, 개발을 기가 막히게 해낼 수 있다. 자신의 환상 속 일을 남에게 자랑하거나, 요구하거나, 회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여기가 로도스'라는 말은 이 환상 속 로도스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말이다. 환상 속 로도스와 현실로 끌어내려진 로도스의 갭이 클수록 그 사람은 인정받기는커녕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 속 로도스를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아마도 로도스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경우가 많지 않을 수 있는 환경에 있기 때문일 것 같다. 마치 내가 대놓고 뛰어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물론 이런 경우도 있다. "여기가 로도스입니다. 한 번 뛰어보시죠." 했는데 "그래? 기가 로도스야? 뛰어보지, 뭐." 진짜로 뛴다. 그리고 증명해낸다. 자신이 말한 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환상 속 로도스와 현실의 괴리가 별로 없는, 환상보다 현실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깨닫고 환상 속에서 이를 부풀리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건 로도스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였던 에라스무스는 로도스에 관한 이 이솝우화를 간결하게 표현해냈다.

"Hic Rhodus, Hic saltus"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이 표현을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서 다시 한번 인용한다. 그리고 패러디하여 다음과 같은 표현을 쓴다.

"Hic Rhodon, Hic salta"

Rhodon은 그리스어로 장미를 뜻하며, rose의 어원이 되는 말이라고 한다. salta는 그리스어로 춤추어라는 표현이라고 한다.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는 표현이 되는데, 사실 헤겔은 나에게 너무 난해하신 분이라, 그 앞뒤 맥락을 읽어봐도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추측도 해보고, 조사도 해보았다. 헤겔은 현실로 끌어내려진 로도스를 장미로 비유한다. 장미 같은 현실에서 춤을 추라고 한다. 현실은 장미처럼 아름답고, 그 현실에 집중하는 것은 춤추는 것과 같이 즐겁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환상 속 로도스에 매달리지 말고, 로도스를 여기로 끌어내리는 것. 환상 속 로도스와 여기 있는 로도스의 괴리를 줄이고,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것이 남들에게도 인정받고, 나 스스로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로도스를 허황되게 꾸며봤자 남들은 믿지 않는다. 그것을 현실에서 보여줘야 한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환상이 아닌 현실 속 진정한 나를 단련하고, 모두에게 증명할 수 있도록 멀리 뛰기 실력을 성장시켜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렇게 잡념에 빠져있는데 뜬금없이 회의 중 지적된 문제점에 대한 화살이 나에게 날아왔다. 내가 아는 만큼 대답을 하고 있는데, 질문 강도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한다. 여기는 헤겔의 말과는 달리 장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춤을 추지는 못하겠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며 내적 갈등이 일어난다. 약간의 비난과 질타를 감수하고 내가 확실히 아는 선까지만 답변할 것인가, 추측성 발언과 적당한 얼버무림을 사용하여 당장의 위기를 벗어난 뒤, 확신 없는 멀리 뛰기를 할 것인가. 나는 어디에 있건 로도스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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