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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Nov 27. 2020

회사 생활의 낙

아타락시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생긴 몇 가지 즐거움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회사 동기들, 동기는 아니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후배들과의 관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할지 언정, 즐거움으로까지 표현되는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들과 커피 한잔, 식사 한 끼, 가벼운 술 한잔을 나누면 그 순간은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 그 자체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나중이 되면 거의 기억도 하지 못하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눌 뿐이다. 그럼에도 얘기를 나누는 순간이 즐겁다. 특별히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에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먼 미래까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에는 회사에 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회사 생활도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이들과 함께함을 통해 평온함을 얻는다. 물론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평온한 마음 상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용어가 떠오른다.


아타락시아(Ataraxia). 헬레니즘 초기 시대에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이자 쾌락주의의 대표자인 에피쿠로스가 사용한 용어이다. 부정을 뜻하는 접두어 A와 동요하다는 뜻의 tarasso를 합쳐서 탄생한 말이라고 다. 즉, 동요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 평온한 마음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에피쿠로스는 개인의 평정과 친구와 함께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즐거움, 덕이 있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렇게 궁극에 도달하여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탈피하고, 평온한 마음 상태를 얻는 것, 그렇게 참된 즐거움을 얻어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을 이룬 상태를 아타락시아라고 말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가 순간적인 육체의 쾌락을 위해, 마치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에피쿠로스는 우리를 즐겁게 만드는 것을 좋은 것,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나쁜 것으로 규정한다. 그중에서 나쁜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고통이 없는 상태, 그래서 평온한 상태를 삶의 중요한 과제로 여긴다. 사치와 향락은 당장에는 즐거울지 몰라도, 그 후에는 더한 고통이 따른다고 여기는 것이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다. 오히려 고통이 수반되지 않기 위한 절제가 필요함을 어필하는 사상이다.


고통이 없는 상태, 그래서 마음이 평온한 상태, 이 상태에서 얻은 기쁨과 즐거움을 에피쿠로스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고통을 유발하는 것을 멀리하였고, 그래서 정치를 멀리하고 은둔하는 성향을 가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통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님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어서 존재가 사라지게 되면 죽음을 의식할 수 없으므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삶의 즐거움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위협받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죽음에 대해 에피쿠로스는 짧고, 간략하게, 그리고 멋있게 표현해냈다.

"Non fui"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fui" (나는 존재했다)

"non sum"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non curo"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이 존재하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나는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가 죽었을 때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죽음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이 말이 로마 시대 사람들에게도 멋있게 느껴졌는지 로마 시대 묘비에 쓰이는 말로 유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회사의 소중한 동기들, 친구들, 후배들과 함께 하다 보면 고통이 없어지고 평온해진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인생 전반에 걸쳐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가 아타락시아라고는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상태를 맛보기나마 체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마음이다. 동기들, 친구들, 후배들의 마음속까지는 내가 알 수 없다. 혹시나 그들의 마음, 특히 후배들의 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내 마음속 평온이 깨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걱정조차 고통을 유발하여 평온을 깨게 만든다. 그냥 모두 다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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