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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Dec 02. 2020

즐거운 회식

아우스터리츠의 태양

회식은 내 돈 쓰지 않고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기회이다. 더불어 평소 업무 시간에는 나누기 힘든, 여러 가지 고충을 나누며, 팀원들과의 유대감을 높일 수 있는 자리이다. 직급 상관없이 대부분의 팀원들이 기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회식이 기대받게 된 건, 최근의 회식 분위기가 정말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 내가 한창 밑바닥에서 구르고 있을 때의 회식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회식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회식이 있는 날, 업무 시간이 다 되어가고 회식 시간이 가까워지면, 내 심장은 전쟁터를 앞둔 병사처럼 묘한 긴장감에 흥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반면 내 머리는 차갑게 식은 상태로 돌아갔다. 전쟁터를 헤쳐나가기 위한 전략을 짜내기 위함이었다. 전략을 짜기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회식 메뉴였다. 제일 자주 먹는 삼겹살의 경우, 유독 페이스가 빠른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 메뉴가 소고기인 경우, 나는 소고기가 앞에 있으면 정신없이 흡입하는 경향이 있다. 특이하게도 나는 포만감과 알코올 내성이 반비례한다. 그러니 소고기 앞에서도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


머릿속에서 계속 전략을 짜냈다. 물론 혼자는 힘들었다. 주로 술이 센 동기가 도와줬다. 든든했다. 팀에서 가장 막내인 한 기수 후배와 바로 그다음 막내였던 나는 서로 공모하여 전략적으로 자리를 구성했다. 자리를 예약하거나 선발대로 출발해 세팅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막내였던 후배 아니면 나여서 위치를 잡기가 수월했다. 전략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야 살아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돌발 변수는 언제나 있었고, 이마저도 잘 통제해내야 했다. 비유하기도 우습지만, 나폴레옹의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떠올랐다.


1805년 12월 2일 오전 8시, 아우스터리츠 평원에서 프랑스군과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격돌했다. 나폴레옹은 전술의 천재라는 말과 달리 전술적 요충지로 볼 수 있는 프라첸 고지를 연합군에게 넘겨준 상태였다. 병력도 연합군이 많았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대패한 직후라 프랑스군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심지어 프로이센마저 연합군에게 가담하기로 결정하여, 프로이센의 증원군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유리한 점은 없었고, 불리한 점만 가득했다.


나폴레옹은 상대보다 병력이 적은 만큼 전선을 축소하려 했다. 좌익은 2만여 명을 배치해 두텁게 만들고, 우익에는 5~6천 명을 배치해 얇게 만드는 대신 상대가 더 돌아가게 하도록 길게 늘어뜨렸다. 하지만 연합군이라고 이 계획을 간파하지 못할 리 없었다. 프라첸 고지를 중심으로 삼은 연합군은 프랑스의 얇은 우익을 재빨리 돌파하여 뒤로 돌아가기로 했다. 프랑스군 우익 쪽에 연합군 3만 5천여 명을 투입했다. 고지도 연합군이 차지하고 있었고, 병력도 연합군이 많았으며, 진형상으로도 연합군이 유리해 보이는 형세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폴레옹의 계략이었다. 프랑스 군의 우익은 지형을 이용하여 끈질기게 버텼고, 나폴레옹이 사전에 호출한 다부 원수의 3군단까지 가세하여 연합군의 진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1805년 12월 2일 오전 9시가 되었다. 아침이 밝으며, 그 유명한 아우스터리츠의 태양이 떴다. 안개가 걷히며 태양빛이 평원을 비추기 시작했다. 태양빛이 비친 프라첸 고지 앞 평원에, 안갯속에서 진격하고 있던 프랑스의 2개 사단이 드러났다. 연합군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전력이었다. 이 2개 사단은 프라첸 고지를 점령하며, 연합군을 반토막 내버렸다.


나폴레옹의 함정이었다. 일부러 우익을 약하게 연출하여 연합군의 주력을 우익으로 집중시킨다. 그리고 숨겨놓은 주력을 이용하여 중앙을 끊어버리는 작전이었다.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겼다. 작전 도중에 길을 잃어 헤매던 오스트리아군 1개 사단이 얼떨결에 프라첸 고지 전투에 난입한 것이다. 그들이 지친 프랑스군을 밀어내는 듯했으나, 나폴레옹은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충분히 밀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나폴레옹의 예상대로 정예로 구성된 프랑스군의 백병전 시도에 오스트리아군은 혼비백산하여 물러났다.


반토막 난 연합군은 프랑스군의 포위 섬멸 작전에 휩쓸려 단숨에 무너졌다. 이 전투의 영향으로 오스트리아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러시아는 대프랑스 동맹에서 이탈했으며, 프로이센은 참전 결정을 거두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수많은 변수를 컴퓨터와 같은 수준으로 정교하게 컨트롤했다. 돌발변수까지도 통제해냈다. 이는 적장과 부하들의 성향과 행동 방식, 그리고 능력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결과였다. 각자의 구성원에게 부합하는 임무를 분배한 덕분이었다.


당시의 어느 회식 자리에서, 나도 우리 팀원들의 성향을 완전히 파악해 놓았다. 전략이 완전히 맞아떨어졌다. 물론 중간에 위기 상황도 있었다. 내 앞에 앉아있던 후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주당으로 소문난 분이 갑자기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술 잘 마시는 동기의 지원과 담배를 자주 피우는 그분의 특성으로 금방 위기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완벽한 회식을 누렸다. 소고기는 맛있게 먹고, 술은 적당히 마셨으며, 2차, 3차까지 끌려가지 않았다. 다음날 완벽한 체력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회식이었다.


나폴레옹은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10년 뒤, 워털루 전투에서 완전히 몰락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 이후 생긴 자만심과 뛰어난 부하들에 대한 견제, 그리고 잘못된 인재 배치 등이 패배의 원인들로 꼽힌다. 나도 다음 회식에서 하나뿐인 후배를 스리슬쩍 사지로 밀어 넣었다. 동기는 위에 말한 주당으로 소문난 분과 함께 빠르게 전사해버렸다. 혼자 아무리 고군분투해봐야 나는 애초에 나폴레옹 같은 천재도 아니었다. 나도 그날 전사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힘든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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