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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Dec 05. 2020

퇴근하는 길

죽음의 수용소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 어제의 퇴근길, 오늘의 퇴근길, 심지어 내일의 퇴근길까지 여느 때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던 시기. 하루하루가 다 반복되고, 무료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끼던 시기. 회사에서의 나는 그저 부속품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회사를 그저 먹고살게 해주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시기. 내가 한창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시기의 퇴근길이었다.


나는 당시 내가 맡고 있던 업무를 하찮게 여겼다. 하찮지만 필수적이고, 그렇다고 쉬운 업무도 아니기에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업무를, 운 나쁘게도 내가 떠안았다고 생각했다. 맡을 사람이 없으면 안 되기에 위에서는 우쭈쭈 해주지만, 그렇다고 높이 평가하지도 않는 그런 업무였기에 회의감이 든 상태였다. 내가 하는 일이 싫었고, 주어지는 일만 했고, 주어지는 일이 있다는 것마저도 싫었다.


회사에서 탈출하듯이 퇴근하는 길은 별생각 없이, 노래를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면서 퇴근했다. 집에 도착하면 씻고, 혼자 좀 놀다가 자고, 다시 일어나서 출근하는 반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랬기에 퇴근길마저도 무료했다. 그렇게 인생 자체가 무료해지고 있는 와중에,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길에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가 뭘까?


나는 일을 한다. 회사는 그 대가로 돈을 준다. 나는 그 돈으로 먹고 산다. 근데 이렇게 백날 모아봐야 부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도 쭉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살 것이다. 최소한 돈과 일상에 관해서는 지금과 비슷하게 계속 살아갈 것이다. 계속 무료하게 살아갈 것이다. 인생 자체가 무료할 것이다. 그저 이렇게 무료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의미일까?


이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 급하게 이직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의지가 받쳐주지 않아 정말 붙기 힘든 몇 군데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수준으로 끝났다. 그래도 이 시점을 시작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시기는 벗어났다. 하지만 당시 이 책을 읽었다면 그 기간이 좀 더 짧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인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수용소에서 가스실이라는 죽음의 공포와 고된 노역, 감시자나 감독관들의 폭력이 어우러진 상황은 인생을 무료하게 보냈던 나를 반성하게 한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극단적 상황에서 인생을 포기한 사람들은 결국 죽음의 길로 간다. 반면 빅터 프랭클은 매일 한 컵의 물로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며 정갈한 생활을 지속한다. 건강해 보인 덕에 가스실행에서 제외된다. 


빅터 프랭클이 말하는 인간은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이며,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물론 자기 보존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되는 수감자가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시련을 견디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고 여겼다.


그것이 바로 지금 겪는 시련의 의미이기에, 시련으로부터 등 돌리기를 빅터 프랭클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서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시련의 의미이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이다.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다"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정신치료법 이론인 로고테라피를 소개하면서 말한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그 잠재적인 의미는 삶에서 마주치는 각각의 상황마다 변할 수 있다. 인간은 삶으로부터 언제나 질문을 받고 있다. 끊임없이 질문을 받고 깊이 생각해봐야 하기에,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만 이에 응답하며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내 삶의 의미를 찾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저 불만을 품고 무료함에 빠져있었다. 어느 한 퇴근길에 문득 나 스스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지난 이후, 이 책을 보면서 당시에 내가 무료함에 빠진 이유를 얼추 짐작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것과 별개로 결국 내가 꿈꾸었던 에이스와는 거리가 먼 현실이, 삶의 의미를 잠시 찾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삶의 의미는 존재한다. 그 당시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나온 말 중 당시의 나에게 보여줬으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궁금한 말이 있다. 로고테라피의 행동강령이라고 하는 이 말은 지금 봐도 소름이 끼치는데, 당시에 봤으면 뒤통수를 강하게 한 대 맞은 수준의 얼얼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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