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아(philia)와 정(情)
친구들 얼굴 한번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현재 속한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친구들은 자주 보기 쉽지 않다. 다들 각자의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에 한 번 만나기 위해서는 한참 전부터 약속을 정해놓고, 혹시 어긋날 일이 없는지, 까먹는 사람이 없는지 주기적으로 체크를 해줘야 한다. 그렇게 했음에도 약속 당일,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나오지 못하는 친구 한두 명이 있는 것은 그렇게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약속 당일 막상 나가려니 귀찮은 마음이 생긴 적도 상당히 많다. 이런 핑계를 댈까, 저런 핑계를 댈까 고민하다가, 어떻게 그러냐 싶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친구들을 만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이들도 나와 함께 수많은 경험을 함께했던 전우이자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추억 거리를 얘기하면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물론 스마트폰만 있으면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상관없는 소통 방식 덕분에 오랜만에 만났다는 자각조차 없기도 하다.
"다른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하더라도 친구가 없는 삶은 그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나온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담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주제는 행복이다. 그런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후반부라고 할 수 있는 8권에서는 필리아(philia)라고 하며 우정을 다룬다. 친구와의 우정 역시 행복의 요소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친구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또 다른 자기 자신이라고 할 만큼 친구의 소중함을 강조했고, 친구 없는 삶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나에게는 분명 맞는 말이다. 이미 지나간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만약 친구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즐거웠던 기억을 얼마나 찾아낼 수 있었을까.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즐겁고 행복한 추억의 대다수는 친구라는 존재들과 함께해왔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우정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눈다. 유익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우정과 즐겁기 때문에 유지되는 우정, 그리고 좋은 것을 위한 우정이다. 유익함과 즐거움이 떨어지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우정들과 달리, 좋은 것을 위한 우정은 훌륭함과 탁월함에 기반한다. 친구의 훌륭함과 탁월함을 닮고 싶어 만나는 우정이고, 훌륭함과 탁월함은 노력만 하면 유지가 가능하므로 영원하고 소중한 우정이라고 얘기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공감이 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동고동락을 함께해왔고, 쉽지는 않지만 가끔이라도 얼굴 보는 친구들. 이 친구들과의 만남이 유익해서 혹은 즐거워서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설마 내가 이 친구들이 훌륭하고 탁월해서, 그것을 닮고 싶어서 계속 만난단 말인가. 그럴리는 없다. 물론 내가 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정(情)'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 있을까.
우정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눈 것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동조하지 못했으나, 진정한 친구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나의 의견이 일치한다. 내가 진정한 친구로 여기는 대상이 있다면, 나는 그 대상이 잘 살고, 행복하게 살고, 훌륭하게 사는 것을 진정으로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진심으로 잘 살고, 행복하게 살고, 훌륭하게 사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결국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 나의 진정한 친구이고,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정말 잘되었으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못 한다한들 어떡할 것인가. 나에 대한 '정(情)'이 있는데. 내가 제 아무리 시궁창에서 구르고 있다 한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되기를 바라는 존재가 나이다. 지금 아무리 초라해도 잘 살고, 행복하게 살고, 훌륭하게 살 것을 끝까지 믿고 원하며, 독려해줄 진정한 친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자존'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친구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리고 친구는 또 다른 나 자신이다. 나는 진심으로 친구가 잘 살고, 행복하게 살고, 훌륭하게 살 것을 원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필리아(philia)는 사랑받는 것보다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것이 바로 필리아의 덕이다. 이것이 상호 간에 성립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우정의 마지막 범주인 좋은 것을 위한 우정이 된다.
친구들이 못살면 안타깝고, 잘살면 부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들아 제발 잘 살아라'하며 간절히 원하는 것도 아니다. 필리아까지 발전하지 못한 내 우정은 안타깝지만, 나에게는 정이 있다. 친구들은 알아서 잘 살 것이고, 나는 그저 정 때문이라도 이 친구들이 하룻밤 사이에 거지가 되든, 부자가 되든, (엄청 나쁜 놈만 아니라면) 나쁜 놈이 되든, 훌륭한 사람이 되든 늘 한결 같이 만나 추억을 곱씹으며 술 한잔 나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