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뭔가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 뭔가는 현재 하고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즉, 안 하던 짓을 하겠다는 것이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 법칙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어서, 안 하던 짓을 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작은 피로한 일이다.
5년 전쯤이었던 거 같다. 친구의 권유로 독서 토론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 생애 첫 독서 모임이었다. 책이야 종종 읽어왔지만, 토론을 위한 책 읽기는 처음이었다. 지정된 책을 읽고 선릉에서 모임을 가졌다. 독서 모임의 첫 소감은 이랬다. 아, 피곤하다.
첫 모임의 독서토론 지정 도서로 선정된 책은 재미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책이 아니었다. 그런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 나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모임을 가졌다. 떨떠름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감흥 없이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말해야 했고, 그 내용으로 토론을 해야 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접하며, 낯선 행동을 하려니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피로한 일이다. 독서토론 첫 모임이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시작은 필요한 일이다. 독서토론 모임은 피로한 일이었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면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를 자주 하면 관성에 저항하는 근육이 발달한다. 낯선 요인들은 새로운 자극을 준다. 새로운 자극은 동기부여, 의미, 에너지를 준다. 안 하던 짓을 하는 것, 즉, 시작은 나를 성장시킨다.
독서토론을 통해 원래 같으면 손도 대지 않을 장르의 책을 읽게 되었다. 토론을 위해 깊게 읽는 법을 익혔다. 책의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과 토론하는 법을 익혔고, 같은 책을 읽고도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까지 많이 다를 수 있구나를 체험했다. 나는 독서토론모임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 성장할 수 있었다.
시작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새로운 것을 접하지 않으면, 똑같은 생각의 패턴에서 챗바퀴만 돌릴 뿐 나아지는 것이 없다. 육체는 나이를 먹을수록 노쇠해지지만, 정신은 나이를 먹을수록 지혜로워져야 한다. 정신적인 성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작'해야 한다. 시작은 피로한 일이지만, 필요한 일이다.
... 해가 바뀌고 1월 내내 챗바퀴만 돌렸던 나를 셀프 디스하기 위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