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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그중에서 우정을 다룬 부분을 주제로 썼던 글이다. 내가 쓴 과거의 글들을 뒤적이다가 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이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최고의 우정은 '친구의 훌륭함과 탁월함을 닮고 싶어 만나는 우정이다'라고 해놨다. 그런데 뒤로 가면 친구들이 훌륭하게 살 것을 원해야 하며,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최고의 우정이라고 말한다.
앞뒤 내용이 안 맞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앞에서는 허튼소리만 하고 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우정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1. 유익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우정
2. 즐겁기 때문에 유지되는 우정
3. 덕과 선에 기반한 우정
나는 세 번째 유형을 친구의 훌륭함과 탁월함을 닮고 싶어 만나는 우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친구의 훌륭함과 탁월함을 닮고 싶어 그 친구를 만난다면 이는 유익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우정과 다를 바 없다. 이상하게 이해해 놓고 공감이 되지 않는다느니, '정'이라는 요소가 있다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은 것이다.
그나마 글의 후반부로 가면 제대로 된 소리를 하고 있다. 우정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좋은 것을 닮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좋아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어떤 외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위해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친구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나는 여러 얼굴을 마주한다. 회사원으로서의 나, 가정에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각각의 역할에는 그만의 본질이 있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에는 정해진 본질이 없다. 나는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란다.
진정한 우정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이익이나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 자체의 선(善)을 위해 그를 사랑하는 것. 내가 나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듯, 친구의 성장을 위해 진심으로 애쓰는 것.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더 나은 모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
나는 나의 외적인 특성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 나 자신이 좋아지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바라듯이 상대방이 좋아지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이것이 서로에게 작용한다면, 세 번째 유형의 우정, 덕과 선에 기반한 우정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듯 친구를 사랑하고, 내가 나의 선(善)을 바라듯 친구의 선을 바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친구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오래전 글을 읽으며 생각한다. 나는 그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구나. 그리고 또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써놓은 글도 꽤나 많겠지...?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