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가 후배와 논쟁을 한 적이 있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고, 후배는 마지막에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일을 할 때는 철학을 가지고 그걸 고수해야지, 이랬다 저랬다 하면 어떻게요."
나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야지, 고집부리는걸 무슨 철학이라고 하냐며 반박했다.
상황에 따라, 타협하지 않는 우직한 실무자와 여기저기 휘둘리는 무능한 관리자일 수 있고, 반대로 직진만 하려는 답답한 담당자와 유연하게 상황을 조율하려는 매니저일 수도 있다. 내가 쓰는 글이라 어차피 나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테니 상황 자체는 묻어두자. 하지만 일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동료에게 처음으로 듣는 터라 내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에 대한 철학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아는 철학이란, 세상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성적으로 사유하며, 그에 대한 근거를 구성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이를 끊임없이 논증하며 정당한가를 확인하는 학문이다. 개발 철학, 경영 철학, 삶의 철학 같은 어떤 태도로서의 철학과 딱 들어맞는 개념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철학을 가져라' 할 때의 철학은 신념, 원칙, 가치관을 가지라는 말에 더 가깝다고 본다. 쉽고 간결하여 유지보수가 편하고 안정성 있는 개발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진다거나, 프로젝트의 본질만은 흐리지 말고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다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철학인 것이다.
그럼 이를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 막상 생각해 보면 그것이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신념이나 가치관을 세워가는 과정이 나의 경험과 지식들을 토대로 어떤 것(일, 직책, 인생 등등)에 대해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구성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끊임없이 논증하며 이전보다 나은 신념, 원칙,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철학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일이나 인생에 대해서 철학을 가지고 있을까? 반성할 일이다. 그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흐릿한 인상만 있을 뿐 내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신념을 가지고, 원칙을 만들고, 가치관을 세우지는 못했다. 내 자신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논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취미라도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면서, 아직 철학을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아직 많이 부족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철학하기를 어려워하고 무서워한다.
어떤 것에 대하여 철학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철학이 깊은 사유와 수많은 논증의 과정을 거쳐 다져진 것이라면 말이다. 철학에는 그 사람의 경험과 지식, 지혜가 담겨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담아갈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 지혜를 담아 어떤 대상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충분히 치켜세워줄 만하다고 본다.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