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취미로 종종 에세이를 써보고 있는 후배가 있다. 그가 나에게 피드백을 요청해 왔다. 내 글도 많이 부족한데, 그런 내가 누구를 피드백할 입장인가 싶었다. 그래서 그냥 잘 썼다 말이나 해줄 의도로 글을 읽어나갔다.
문제가 생겼다.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전반부는 술술 읽히는데,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후반부는 잘 읽히지가 않는 것이다. 결국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버렸다. 괜히 했나 싶으면서도 독자 입장에서 잘 읽히지 않으면 뭐라고 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뭐라 할 입장인가 싶기도 하다. 나 자신도 많이 부족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 다음에 왜 저 내용으로 이어지는지 전혀 모르겠어. 너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 있지만, 읽는 사람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아. 최대한 내 생각을 객관화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풀어나가야 된다고."
"너나 잘하세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내 글도 내 머릿속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하지만, 그것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이 되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말로만 "이렇게 하면 돼. 참 쉽지?" 하는 꼴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경험한 것들, 내가 쌓아온 지식들, 내가 형성한 논리적 연결고리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나만의 언어를 만든다. 머릿속에서 A라는 생각이 떠오르면 자연스럽게 B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나만의 사고 회로 말이다.
문제는 이런 나만의 언어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 할 때 생긴다.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연결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내 머릿속의 A와 B 사이에는 수많은 중간 과정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생략해 버린다.
과거에 쓴 내 글을 읽어봐도, 이런 부분이 많이 보인다. 나만의 사고 체계, 나만의 논리적 흐름이 글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 흐름은 나에게는 명확하고 자연스럽지만, 독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나만의 언어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나만의 언어를 우리 모두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내 머릿속의 논리를 다른 사람도 따라갈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하는 것.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연결고리들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 공적 언어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내 경험이 특별하다는 사실, 내 논리가 모든 사람에게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것, 나만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독자와의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
그다음에는 번역 작업이 필요하다. 나만 아는 말을 우리가 함께 아는 말로 바꾸는 것. 내 머릿속의 A와 B 사이에 숨어있는 과정들을 끄집어내어 독자 앞에 펼쳐놓는 것. 독자의 머릿속에서도 A에서 B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나만의 언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것.
결국 글쓰기란 나만 아는 말을 우리가 함께 아는 말로 바꾸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독자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한 걸음씩 다가가 마침내 내 글이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