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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Dec 29. 2022

스물다섯, 디자이너에서 직업 틀기

첫 번째 이야기, 퇴사와 제주삼주살이의 시작


안정적인 회사였다.

사원에 들어가 주임을 달았고, 대리까진 거뜬히 달 것이라 생각한 회사였다.

회사의 구조도, 급여도, 사람들도, 무엇하나 크게 모자람이 없는 곳이었다.

그랬던 회사가 코로나로 너무나 쉽게 꺾여 버렸다.

사원들을 가지 쳐낼 기회라는 듯 구조 조정을 요구하던 본사와의 갈등이 극심했고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너무 어려서부터 시작한 사회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한 휴식을 주고 싶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 생각했다. ‘남들 다 하는 제주살이나 해 볼까’가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안정적이라는 생각에 갇혀서는 시야가 보편적이게 된 것이다.

남들 다 하는 거, 노는 거, 먹는 거, 입는 거, 나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거 다 좋지만 일단은 ‘아무것도 안 하기’를 목표로 제주로 떠났다.

바다나 보면서 하루종일 멍을 때리고, 할머니 댁에 있을 때처럼 시간이 너무 안 가는 시간의 미학도 느껴보고, 하루가 참 길구나 하는 체감을 느끼고 싶어서 제주로 정했다.


홀로 떠날 계획에 언니라는 변수가 재를 뿌려 얼떨결에 자매 여행을 떠나게 됐다.

이제 생각해 보면 정말 다행이지만, 그때는 처음으로 마음먹은 홀로 여행이었는데 재 뿌리네 하는 생각이 더 컸었다.



2021.11.4  ‘제주로 떠나기 나흘 전’의 일기 내용 중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오히려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졌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지금 드는 생각은 그저 “제주를 간다고 해서 달라질까?”이다.

일이야 뭐, 하면 되는 거고.

돈이야 뭐, 없음 일해서 벌면 되는 거다.

조금 더 즐겁게 돈을 버는 일.

직업이 그저 돈을 버는 행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저 물리적인 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찾고 있다.





여행이라는 말이 거창할 정도로 이번 우리의 여정은 ‘고립’이었다.

그저 나 자신에게 주는 휴식의 시간, 조금 더 나태하고 한량한 시간들을 주고 싶었다.

그 시간 속에서 찾아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

꼭 그 답을 찾아내지는 못하더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었다.


제주에서의 여정은 에피소드를 새로 뽑아내야 할 만큼 내용이 많다.

여행이라는 걸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나에게 제주에서의 삼주는 많은 것을 바꾸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생각도, 마음도, 미래도, 나의 모든 걸 바꾸는, 짧을 거라고만 느꼈던 삼주만에 일어난 것이다.



제주 9일 차, 첫 혼자

너무 다른 성격의 자매인 탓에 여행 전부터 삐그덕 대기 일수였다.

여행을 떠나면서도 서로 이게 맞나 하면서 길을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싸우고 각자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제주에 온 지 9일이 되던 때에 벌어진 일이었다.


누군가가 표현한 말, 짱구네 집 지붕과 닮았다는 카페 인그리드(제주시 서해안로 64)


어차피 혼자 오려고 했던 여행, 떨어질 때 됐다. 생각하며 저장해 두었던 가고 싶었던 카페로 향했다.

누가 알았을까. 작은 카페 속에서 찾고, 찾고 또 찾던 풀리지 않던 응어리 같았던 생각들을 풀어낼 줄.




인그리드 카페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보통 손님들에게 양보하는 바다 시야가 홀 라운지로 자리 잡혀 있었다.

일하는 도중 앞을 흘끗 바라보면 이호테우의 말 모양의 등대와 바다가 보였다.

그때 그런 생각이 스쳤다. “저분들은 어쩌다 제주바다 앞 사장님이 되셨을까.”

제주가 좋아 육지에서 내려오셨을까.

아님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실까.

전재산을 털고 내려와 카페를 열었을지도 모르려나.

아님 부모님이 하시던 카페를 이어받았을까. 하는 답 모르는 정답에 가까운 상상과

그러나 또 그 ‘정답’이 궁금하진 않은 열린 결말 같은 정답에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 답을 찾았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았던 이유, 정답이 없으니까가 정답이었다.

모든 게 그저 선택일 뿐, 애초에 정답은 없는 것이었다.


2021.11.15  ‘제주 9일 차, 첫 혼자’의 일기 내용 중

제주가 좋아 육지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태어나서 나고 자란 곳이 제주인 사람들도, 육지의 갑갑함이 싫어 제주에 내려와 사는 사람들도,

어쩌다가 제주의 카페 사장님이 되었는지의 사람들도.

제주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들이 다 무언가의 종점을 정하고 다다른 곳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나, 둘 쫓다 보니 정착된 거겠지.

그냥 마치 ‘그냥 하다 보니 잘 됐어요.’ 같은 그런 것.



내가 좋은 것을 하나씩 쫓아가다 보면

무언가 하나에 진심이라면 언젠가 통하지 않을까.


세상에 안정적인 건 없다.

직업은 그냥,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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