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와 젠슨황의 역사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by 김민석


고민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브런치에서 재테크 콘텐츠는 아닌 거 같다.... 는 거죠...^^;;;

그렇다고 네프콘에 브런치에 인스타 릴스에...

모두 다른 콘텐츠를 하자니 몸 하나로 커버가 안될 거 같아서 머리를 좀 굴려보았습니다.


네프콘에 연재 중인 기업 분석 글 중에서.

기업들의 재미있는 역사와 산업 이야기만 떼어다가 브런치에 연재해 보는 거로!! :)


참 저 어제 생일이었어요.

생일 축하해 주세요. :)


자 그럼 요즘 가장 핫한 엔비디아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래 표는 현재 세상에서 가장 큰 자산들의 시가총액 순위입니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약 4조 2,000억 달러(약 5,800조 원)로 금 다음으로 2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국내 증시 시가 총액을 다 합해도 엔비디아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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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엔비디아 주식을 몇 주 보유하고 있는데요. 막상 이번에 리서치를 시작하기 전, 제 머릿속에 떠오른 엔비디아의 이미지는 딱 두 가지였습니다.

image.png?type=w800 그래픽 카드와 엔비디아의 주봉 차트. 사실 차트가 먼저 떠오르긴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걸 팔아서 전 세계 시총 1위 기업이 된다는 게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전 지금 아이폰과 맥북을 쓰고, 구글로 검색하고 gmail을 쓰고, 유튜브와 인스타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고, 한창 회사를 다닐 땐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오피스를 하루 종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저걸 쓰길래 저렇게 부자 기업이 된 걸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엔비디아의 처음부터 끝까지 싹 정리해 보기.




젠슨황, 엔비디아를 창업하다


1.

이 검은색 가죽재킷을 입은 아저씨가 바로 그 유명한 젠슨 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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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저 가죽재킷의 가격이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챗gpt에게 물어봤습니다.


"

젠슨 황은 주로 Saint Laurent(생로랑), Tom Ford(톰 포드)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의 가죽 재킷을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브랜드의 기본 블랙 레더 재킷 가격은 보통 한 벌에 500만/700만 원(3,500/5,000달러) 수준입니다. 한정판이나 특수 소재라면 1,000만 원 이상도 합니다.

"



2.

각설하고.

젠슨 황은 1963년 2월 17일 대만 타이난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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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 아버지와 영어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젠슨 황은, 특히 어머니의 강한 교육열 아래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의 가족은 그가 9살이 되던 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처음 정착한 곳은 켄터키 루이스빌의 먼로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는데 이민 초기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거의 못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심한 인종차별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매진한 그는 1984년 오리건 주립대에서 학사 학위를, 1992년에는 스탠포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image.png?type=w800 미국은 참... 이동하기 힘들겠어요.



3.

1984년 졸업 후 첫 직장은 AMD였습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그는 LSI Logic으로 이직하게 되는데요.


AMD는 1969년에 설립된 회사로, 인텔 호환 CPU를 만들며 성장했지만 끊임없는 특허 소송과 "영원한 2등"이라는 이미지를 안고 있었습니다.

LSI Logic은 1981년 설립된 팹리스 기업으로, 고객 맞춤형 반도체(ASIC)를 설계·제작하며 실리콘밸리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즉, 젠슨 황은 상대적으로 정체된 ‘2등 기업’을 떠나, 더 큰 성장 가능성을 가진 지금의 스타트업과 같은 회사로 옮겨간 셈이었습니다. 이때 결정만 보더라도 젠슨 황의 빠른 상황파악과 실행력을 볼 수 있는 거 같습니다.



4.

LSI Logic에서 젠슨 황은 약 8년간 근무하면서 엔지니어링, 마케팅, 일반 관리 등 다양한 영역을 두루 경험했고, 빠르게 승진하는 코스를 밟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반도체 업계의 흐름을 보며, 다음 큰 파도는 그래픽 컴퓨팅이 될 것이라는 직감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이전에는 개인이 온전한 컴퓨터 한 대를 소유한다는 것이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등장과 보급으로 PC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젠슨 황이 커리어를 시작한 1980년대 중반은 바로 이 PC 시장의 황금기 개화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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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 첫 컴퓨터는 486 dx2였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말년인가 중학교 즈음인가에 출시된 고성능 컴퓨터였는데요. 갑자기 추억에 잠기네요. 컴퓨터 과외도 받고 그랬는데...^^



5.

초기 PC는 CPU, RAM, 하드 드라이브 같은 기본 구성 요소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화면에는 텍스트 기반의 단순한 정보만 표시되는 흑백 모니터가 달려 있었는데, 이마저도 당시에는 큰 혁신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아예 모니터가 없어서, 천공 카드 같은 출력 장치로만 결과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죠. 기술의 진보로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화면 출력 장치, 즉 모니터가 등장하면서 PC는 비로소 대중적 기기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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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지만 PC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도 그래픽 전문 시장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개인이 고성능 그래픽을 다루기에는 기술적 제약과 높은 가격 장벽이 있었고, 따라서 그래픽 장비는 주로 고가의 워크스테이션이나 슈퍼컴퓨터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장을 이끌던 대표적인 회사가 1981년, 스탠퍼드 교수 출신 짐 클라크가 설립한 실리콘 그래픽스(SGI)였습니다. SGI는 고성능 그래픽 워크스테이션과 3D 그래픽 소프트웨어에 집중했고, 쥬라기 공원과 터미네이터 2 같은 영화의 그래픽 효과가 바로 SGI 장비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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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type=w800 100원 만요


이런 흐름을 보며 젠슨 황은 생각했습니다.

'고성능 그래픽이 언젠가는 대중화될 것이고 게임 시장 역시 반드시 커질 것이다.'


실제로 1992년 윈도우 3.1의 등장 이후,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더 이상 특수 기능이 아니라 PC의 핵심 기능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7.

LSI Logic에 있던 시절, 젠슨 황은 고객사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담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크리스 말라초스키, 커티스 프리엠을 만나게 됩니다. 세 사람은 의견을 나누다 “앞으로는 그래픽과 비주얼 컴퓨팅의 시대가 열린다”는 공통의 확신을 갖게 되었고, 결국 1993년 엔비디아(NVIDIA)를 공동 창업하게 됩니다


그런데 무슨 돈으로 창업했을까요?


엔비디아는 창업 당시 불과 4만 달러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4만 달러라니...

솔직히 이 돈으로는 제대로 된 시제품 하나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엔비디아(NVIDIA)의 탄생


1.

젠슨 황은 LSI Logic를 퇴사하게 되었는데요. 참 될놀될 이었습니다. LSI 대표였던 윌프 코리건이 그를 세쿼이아캐피털의 창립자 도널드 발렌타인에게 소개해준 것이죠. 흥미로운 건 도널드 발렌타인이 이 회사를 꼼꼼히 검증하지도 않고, 오로지 윌프 코리건의 추천만 믿고 20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LSI Logic을 운영하는 것을 보고 코리건의 눈을 믿었던 것이죠. 근데 돈 발렌타인은 이런 농담을 덧붙였다고 하네요.


“만약 내 돈을 날리면, 널 죽일 거다.”



2.

엔비디아(NVIDIA)라는 이름이 탄생한 배경이 재밌습니다. 우선 NV는 Next Version의 약자인데요. 이 Next Version의 약어 NV에 꽂힌 창업자 세 사람은 NV가 가능한 단어를 엄청나게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라틴어로 INVIDIA라는 단어를 찾게 되는데, 뜻은 '부러움'입니다. 흔히 I envy you. 라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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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시각적 경험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로 사명을 엔비디아라고 하게 됩니다.



3.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 인텔도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PC는 점차 대중의 멀티미디어 허브로 진화하고 있었고, 게임 그래픽도 2D에서 3D로 빠르게 넘어가던 시기였죠. 인텔은 단순한 데이터 연산뿐만 아니라 오디오와 비디오까지 처리할 수 있는 만능 CPU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엔비디아도 멀티미디어 확장을 목표로 했지만 접근법은 달랐습니다.

“CPU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결국 별도의 칩이 필요하다.”


인텔이 올인원 CPU를 지향했다면, 엔비디아는 전용 그래픽 칩이라는 길을 택한 겁니다.



4.

엔비디아의 첫 그래픽 가속기인 NV1은 1995년에 등장했습니다. 당시 게임 시장은 둠(DOOM) 같은 히트작 덕분에 3D 게임의 붐이 일고 있었죠. 엔비디아는 이 흐름을 기회로 보고, 실시간 3D 처리 성능과 멀티미디어 지원 기능을 강화해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분위기도 좋았는데요. 설계는 엔비디아에서 하고 제작은 세가(Sega)를 설득해서 세가의 돈을 투자받게 됩니다. 세가 새턴(Sega Saturn)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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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속작 NV2 개발 과정에서 엔비디아는 큰 위기를 맞습니다.

그 배경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가 있었습니다.



5.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3D 그래픽 시장의 흐름을 놓칠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1995년, 윈도우용 멀티미디어·게임 개발 API인 DirectX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3D 그래픽 전용 API인 Direct3D가 포함되어 있었죠.


문제는 호환성이었습니다.


Direct3D는 3D 그래픽의 기본 단위를 삼각형(triangle) 으로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엔비디아 NV1은 사각형(quadrilateral)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image.png?type=w800 사각형으로 구성된 원 / 삼각형으로 구성된 원


PC 시장을 윈도우가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게임 개발사가 굳이 호환성이 떨어지는 사각형 방식을 선택할 이유가 없게 된 겁니다. 엔비디아는 세가 차세대 콘솔용 NV2를 개발 중이었는데, 참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만들어도 망할 것이고, 안 만들어도 망하는 상황.



6.

궁지에 몰린 젠슨 황은 직접 세가의 미국 법인 CEO인 이리마지리를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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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마지리는 일본 본사를 설득해 투자 유치에 성공하게 됩니다.


기업의 운영에도 휴머니즘과 낭만이 있나 봅니다. 세가는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엔비디아에게 5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이 돈으로 엔비디아는 약 9개월의 생존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7.

젠슨 황은 비상 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직원 100명 중 70%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그래픽 아키텍처의 근간을 완전히 뜯어고쳐 삼각형 기반으로 전환했습니다.


이제 엔비디아는 DirectX 호환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동종 업계 경쟁사들과 진짜 생존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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