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gmsuhodaddy/55
오늘은 이 차트로 1999년부터 2009년 까지를 정리 해 보려 합니다.
원래 2편으로 끝내려 했는데 내용이 생각보다 방대해졌습니다.
하지만 전 흥미진진하게 리서치를 했는데요. 엔비디아의 역사는 참 파란만장하고 재밌었습니다.
우선 1편을 요약해 보자면
엔비디아는 1993년에 창업했는데,
초기엔 세가와 계약까지 할 정도로 잘 나갔지만.
1995년/1996년 NV1, NV2 칩을 잘못 만드는 바람에 세가의 도움을 받았고.
직원 100명 중 70%를 해고하고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는 것까지.
3~4년이 걸렸습니다. 진짜... 치열한 세계네요. 단 하루도 평안할 날이 없었겠습니다.
그럼 이제 1996년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1. 1996년 : 3D 시대와 도래와 선점에 성공한 3dfx
툼 레이더와 퀘이크 같은 3D 게임이 히트하며 시장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때 그래픽카드 업계에도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는데, 바로 1994년에 설립된 3dfx입니다. 이들은 ‘부두(Voodoo)’ 그래픽카드를 내놓으며 급격히 성장했는데요. PC 매니아가 아니었던 저마저도 Voodoo 그래픽카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때 당시 대단하긴 했던 거 같습니다. 툼레이더는 저도 해 본 기억이 나네요..:)
2. 1997년 : 숨통이 트이는 엔비디아
엔비디아는 창업 4년 만에 첫 대중적 성공작을 내놓게 됩니다. 바로 RIVA 128(코드명 NV3) 입니다. 빠른 성능, 저렴한 가격, 그리고 Direct3D와의 호환성 덕분에 델(Dell), HP, 컴팩(Compaq), IBM 같은 주요 PC 제조사들이 많이 채택했습니다.
그래픽카드를 별도로 구매해서 장착하는 것이 아닌, 대형 OEM PC의 기본 그래픽카드로 대량 납품되며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한 것인데요. 덕분에 엔비디아는 약 100만 대를 판매하며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물론 1년 먼저 출시된 3dfx Voodoo가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기에 여전히 ‘후발주자’였지만,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시작된 시점이었습니다.
3. 1998년 : 치명적인 선택을 하는 3dfx
엔비디아는 TSMC와 손잡고 RIVA 시리즈를 확장했고, RIVA TNT를 내놓습니다. 이 제품은 당시 3dfx의 Voodoo2와 맞먹는 성능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3dfx는 치명적인 선택을 합니다. 바로 그래픽카드 제조업체 STB Systems를 1억 4천만 달러에 인수한 것입니다. STB 인수 이전까지 3dfx는 그래픽 칩셋만 만들고, 이를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 크리에이티브 랩스, 허큘레스 같은 제조사들이 받아 완제품 그래픽카드로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쉽게 말해, “3dfx = 칩 제조 / 파트너사 = 그래픽카드 제작·유통” 구조였죠.
마치 인텔 CPU를 삼성·HP·LG가 사서 각자 노트북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면 편하실 거 같습니다.
하지만 3dfx가 STB를 인수하고 직접 카드 제작·유통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자, 기존 파트너사들이 하루아침에 경쟁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들은 3dfx 칩을 버리고 엔비디아나 ATI 쪽으로 이동했고, 이는 3dfx 몰락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4. 1999년 : 모름지기 겸손해야 한다
엔비디아는 TNT2를 내놓습니다. 성능 면에서는 Voodoo3와 비슷했다고 하는데요.
성능은 Voodoo3와 비슷했고, 가격은 조금 저렴했다고 언급됩니다.
그런데 리서치를 직접 해본 가격 정보가 조금 애매합니다. 워낙 버전도 많아서 비교도 힘들고, 무엇보다 가격이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는 거 같진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시점부터 3dfx의 ‘압도적인 성능 우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긴밀히 협력하며 Direct3D 지원을 적극 강화했습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인 게, 엔비디아는 NV1/NV2 시점에 마이크로소프트의 Direct3D 때문에 파산할 뻔했는데요. 이 시기엔 협력하여 오히려 호환성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 3dfx는 자사 독자 API인 Glide에 집착했고 Direct3D 지원은 소극적이었습니다. 여기서 API를 설명드리자면, 개발자가 특정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능을 쉽게 쓸 수 있도록 제공하는 “명령어 모음”입니다. Glide는 Voodoo 카드에서 최고의 성능을 뽑아내는 전용 언어 같은 역할인 것이죠.
당시 기준에선 기능도 가볍고 단순해서 성능이 아주 잘 나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Direct3D와 OpenGL이 빠르게 발전하자, 개발사들은 범용 API만 지원해도 충분했습니다. 게임 개발사들이 점점 Direct3D와 OpenGL을 채택하면서, 굳이 Glide 전용 그래픽카드를 선택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게이머들은 점차 엔비디아와의 그래픽카드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1월 엔비디아의 상장 타이밍.
3dfx의 압도적인 성능 우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귀신같이 상장을 합니다.
그리고 GeForce를 출시하죠.
5. 2000년 : 모름지기 겸손해야 한다 x 100000
2000년 3dfx는 파산합니다.
3dfx가 STB Systems를 인수함으로써 제조사들의 반감을 산 점
자사 독자 API인 Glide를 고집한 점
이 두 가지가 파산의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후 3dfx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시장 트렌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점을 보면, 인수한 STB와의 문화적 차이를 해소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그래픽 칩 개발사와 제조사 간의 문화 차이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STB가 처음에는 엔비디아에 매각 의사를 타진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STB의 최대 고객이 바로 엔비디아였기 때문인데요. STB는 그전까지 3dfx 칩셋을 활용한 그래픽카드를 거의 만들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인수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STB는 3dfx로 가게 된 것이죠.
이후 3dfx가 STB를 인수하면서 파트너 제조업체들과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본 엔비디아는, 자신들은 직접 그래픽카드를 만들지 않고 칩셋 개발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전략은 제조업체들의 신뢰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3dfx에서 이탈한 업체들이 엔비디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결과 3dfx와 STB가 통합의 후폭풍에 시달리는 동안, 엔비디아는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며 3dfx의 ‘부두(Voodoo)’ 그래픽카드를 대체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결국 2000년 12월. 3dfx는 정리 수순에 들어가고 엔비디아에게 자산을 매각합니다. 그리고 2002년 최종 파산을 하게 됩니다. 3dfx의 인력 중 상당수는 엔비디아에 넘어가서 이후 GeForce 그래픽 카드 개발에 참여했고, 일부는 ATI라는 회사로 넘어가서 Radeon 그래픽카드 개발에 참여하게 됩니다.
엔비디아는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죠.
6. 나스닥과 비교해 보면..
대표
나스닥은 2000년 3월부터 2003년까지 닷컴 버블로 5,000에서 1,150까지 폭락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수가 ....거의 1/5토막 난 것인데요.
신기한 게 엔비디아는 2000년에 빠지더니 버티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2001년에는 전 고점 돌파하고 2002년 초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이후에는 많이 빠지긴 하지만요. 두 차트를 비교해 보면 시장은 닷컴 버블로 박살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가 시장을 장악한 것에 대해 많은 value를 쳐 줬던 거 같습니다.
7. 최초의 그래픽카드 Geforce의 등장
2000년대 초반이 되자, 수많은 그래픽 카드 회사들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제 남아있는 회사라고는 엔비디아와 그나마 ATI 정도가 있었습니다.
엔비디아는 RIVA를 통해 시장을 점유하는 데 성공했지만,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처리해야 하는 3d 그래픽이 점점 더 복잡해져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픽으로 변환하는데 여러 명령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병렬처리가 필수적이었는데 이를 더 잘 처리하기 위한 칩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라인업으로 Geforce 시리즈를 만들고 1999년 10월. 첫 제품으로 GeForce 256을 출시합니다.
두 라인업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하면, 이전에는 그래픽 카드는 단순 2D/3D 가속기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GPU부터는 CPU가 담당하는 3D 그래픽 연산을 GPU가 직접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게임의 그래픽 품질이 크게 향상하게 되었죠. 그 이후엔 모든 GPU 제조사가 이 방식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8. CPU와 GPU의 차이를 알기 쉽게 정리해 보자
여기서 CPU와 GPU의 차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CPU: 머리 좋은 사람 → 다양한 명령을 처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양은 제한적임
GPU: 대규모 작업자 팀 → 단순하고 반복적인 계산을 엄청난 수의 코어로 동시에 처리 가능
GPU가 필요한 이유는 그래픽의 특성 때문입니다. 모니터 화면은 수많은 픽셀로 구성되어 있고, 각 픽셀은 다른 색을 표현합니다. 따라서 픽셀 단위의 간단한 계산을 동시에 많이 수행해야 높은 품질의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9. 아무튼 다시 GeForce
RIVA와 GeForce의 결정적인 차이는 분명했습니다. 이전의 그래픽 카드는 단순한 2D/3D 가속기 수준이었지만, GeForce부터는 CPU가 담당하던 3D 그래픽 연산을 GPU가 직접 처리하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게임 그래픽 품질은 크게 향상되었고, 이후 모든 GPU 제조사가 이 방식을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성능 덕분에 애플, 델, HP 같은 주요 PC 제조사들이 엔비디아의 GeForce를 채택하기 시작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에도 납품하는 데 성공합니다. 계약 조건은 선불금 2억 달러, 연간 5억 달러 규모였으며, 이를 통해 엔비디아의 매출은 급격히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0. 라이벌의 부상
엔비디아는 GeForce 시리즈를 통해 본격적으로 GPU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GeForce2, 3의 연이은 성공으로 엔비디아는 GPU 시장에서 강자로 자리 잡았지만, 경쟁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가장 치열하게 맞선 회사는 ATI였습니다.
2000년 ATI는 엔비디아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운 그래픽 카드 브랜드 Radeon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2003년 ATI는 Radeon 9700을 출시하며 성능 면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엔비디아가 GeForce FX 5800 시리즈로 비판을 받던 시기와 겹치는데요. 당시 FX 5800은 발열과 소음 문제로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6년, ATI는 AMD에 인수되었고, 이후 AMD Radeon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AMD는 ATI 인수를 통해 GPU 기술을 강화하며 엔비디아를 본격적으로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자체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GPU를 내놓으면서 성능 면에서 주목할 만한 향상을 보여주게 됩니다.
11. 2008년 : 서브프라임 사태와 함께 온 위기
2003년 1월 혹평을 받았던 FX5800가 출시된 이후 Radeon과 경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우상향 합니다. 물론 이렇게 긴 시계열로 봐서 평탄하게 우상향 한 것으로 보이지만, FX5800의 성능 이슈로 2년 횡보하고, 특히 AMD가 ATI 인수한 2006년 경에도 40% 하락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2008년 서브프라임과 함께 손잡고 오게 되는데요.
2008년, 노트북에 내장되던 G84·G86 그래픽 칩에서 심각한 결함이 발견됩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오류 수준을 넘어 노트북 자체를 고장 내는 치명적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HP와 델 같은 PC 제조사들은 무상수리에 나섰고, 애플은 아예 리콜을 단행했습니다. 엔비디아는 1억 5천만~2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떠안아야 했고, 신뢰도 또한 크게 무너졌습니다. 주요 제조사들이 점차 AMD Radeon을 채택하기 시작하면서 “라데온의 성능이 엔비디아보다 낫다"라는 평가까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터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엔비디아에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2008년부터 1년 동안 시가총액의 85%가 날아갑니다. 1달러에서 0.15달러까지.
엔비디아는 곧바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임원들의 연봉을 삭감했고, 젠슨 황 CEO는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줄였습니다. 당시 내부적으로는 “우리에겐 망하기 전까지 30일만 남았다”라는 절박한 슬로건까지 내걸었다고 합니다.
고객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피드백을 제품 개선에 빠르게 반영했습니다. 동시에 CUDA 기술 투자를 강화하면서, GPU를 단순한 그래픽 장치가 아닌 범용 연산 플랫폼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CUDA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 이야기는 바로 뒤에서 이어서 하겠습니다.
위기와 실패 속에서도 젠슨 황은 “사업 다각화”라는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ATI 같은 강력한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GPU 제조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패도 있었는데요. 모바일 시대를 맞아 엔비디아는 Tegra(테그라) 모바일 칩을 내놓으며 아이폰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장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퀄컴에 완벽히 밀리며 결국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12. 게임 오타쿠가 만든 CUDA
이제는 CUDA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뭔가 이름부터가 IT 오타쿠스러운 CUDA.
얜 뭘까요?
https://www.khan.co.kr/article/202403200700001
지금 엔비디아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센터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이안 벅(Ian Buck). 그는 스탠퍼드 대학 시절, 퀘이크 3 게임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더 원활한 게임 환경을 위해 엔비디아의 지포스 32개를 사서 하나로 묶어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8k 해상도를 지원하는 최초의 게임 가속기를 만든 건데요.(요즘도 4k면 되는데 이 아저씨가 참 선을 넘네..)
“게임에만 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연구 자금을 지원받아 병렬 컴퓨팅 연구에 뛰어듭니다. 이후에는 엔비디아에 합류해 2007년, 마침내 CUDA를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진짜 오타쿠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CUDA는 GPU를 그래픽 외의 용도로 활용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들을 위한 도구 모음이자 언어였습니다. 기존에는 개발자들이 주로 C 언어로 CPU를 제어했지만, GPU는 그래픽 전용 구조라 같은 방식으로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GPU를 활용하려면 일종의 “번역기”가 필요했는데, 바로 그 역할을 CUDA가 해낸 것입니다.
처음에 CUDA는 큰 상품 가치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극히 일부 연구자들의 전유물로만 보였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것이 신의 한 수로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그래픽카드 업계는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의 DirectX 표준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차별화 요소는 오직 성능뿐이었습니다. 그러나 CUDA는 달랐습니다. 언어이자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에 독점화(lock-in)가 가능했죠. 예를 들어 CUDA를 활용해 만든 애플리케이션은 반드시 엔비디아 GPU에서만 실행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CUDA 생태계가 쌓일수록, 개발자와 연구자들은 엔비디아 GPU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병렬 컴퓨팅 시장이 작았기 때문에 당장 큰 수익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엔비디아는 Xbox 납품에서 박한 마진을 얻고, PC용 그래픽카드 시장에서도 고전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CUDA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엔비디아의 미래를 바꾸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