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도 정작 남는 게 없는 이유>
살면서 느끼는 것 7
나는 총 4번의 선교를 다녀왔다. 다른 여행지,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국가... 나는 선교에 대한 욕구 때문에 항상 선교를 가게 되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 말레이시아 선교는 나에게 많은 공허함을 남겼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나의 마음이 식은 것 같았고, 결혼을 해서 더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듯싶었다. 돌아보면 지난 선교 동안 몇몇 사람들도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것이 그들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다고 생각했다.
오늘(그러니깐 2019년 12월 13일)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라는 책을 읽었고 문득 내가 느꼈던 공허함에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논리력의 부족이다. 그러니깐 왜 내가 선교를 가려하는지에 대해서 나 스스로에 대한 타당성이 충분히 부여되지 못했다. 그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나는 선교를 선택했고, 결혼 준비기간과 선교 준비기간이 많이 겹쳤기 때문에 과정 중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선교를 통해 극복할 수 있고 충분히 그 결과를 얻어낼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랬기에 이번 선교는 내게 더욱 공허했고, 불만도 많았던 것 같다.(물론 정말 문제가 있는 부분도 보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나와 관련된 거의 모든 행동에 대해 '왜?'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행동을 함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이 합당한 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행동했다. 그 이유는 그저 그냥 내 인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의 행동은 나에겐 무척 이로웠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곤욕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나를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으로 판단했고, 이만하면 그냥 좀 넘어가자는 식으로 모든 문제를 대응했다. 나는 그러한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해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야..' 세상에 모든 것이 좋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유연하고 특히나 요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회적이나 이념적인 문제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유연해져야 된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해주고 서로 조금 더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이나 치유 프로그램이 유행하지 않는가.
내가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 19년 초에 약 3개월 정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했던 수업들 중 배웠던 루터의 생각이 나를 이렇게 바꾸었다. 지금도 나는 루터의 생각을 존중하고 힘들 때마다 루터를 생각한다. 당시 로마 가톨릭이 면죄부를 팔며 온갖 부와 명예를 독점하였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제 루터는 95개 조 반박문을 통해 면죄부의 부당에 대해 폭로한다. 루터는 반박문을 쓰기로 한 당시 생각했다고 한다. "성경이 옳거나, 로마 교황들이 옳거나.." 루터의 생각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많은 편견들과 부조리들에 부딪힐 때마다 생각해봐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지만 어찌 보면 기득권들의 삶이 기록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대부분의 역사가 되었다. 때문에 우리가 배우고 귀감이 될 만한 많은 것들이 있지만 때론 고쳐나가야 할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부적절한 부탁이나 요구에 대해 부딪힌 적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내가 용기 내어 그것이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루터의 생각이었다.
말이 길었지만 결론은 우리가 모든 행동함에 있어 그 논리를 따져봐야 된다는 것이다. 논리 없이 하는 모든 행동은 행동을 하는 내가 주체가 아니라 그 행동을 요구했던 다른 누군가의 논리이다. 결국 나의 인생이 아닌 그들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단지 그게 편하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휘둘려 행동하지만 결구 그런 생각은 우리가 진정 삶의 위기 앞에 섰을 때 우리를 구해주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행동들에 합당한 논리가 뒷받침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