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4년간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쉬는 동안 잠시 엄마랑 새벽예배를 다녔었다. 바로 집앞의 교회였어서 새벽 늦은시간에도 그다지 위험하거나 어두운 길도 아니었어서 안전했다. 그래도 혼자라면 무서웠을 것 같은데 엄마랑 같이 가니 좋았다.
거의 한 달 정도를 다녔는데 일찍 일어나더라도 이후에 일정이 없으니 편하게 다녀오기가 좋았다. 엄마는 이후에도 직장을 나가야했는데, 워낙 내 어릴때에도 새벽예배를 혼자 다녔기 때문에 익숙해보였다. 엄마의 인생도 꽤 힘들었어서 엄마는 항상 그럴 때마다 신앙에 의존했다. 덕분에 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으며 현재 교회는 잘 나가지 않더라도 헌금이나 기도는 매일 한다. 조만간 독립한 집에서도 예배를 다녀볼까 한다. 새벽예배는 정말 분위기가 좋다. 그 몽환적인 느낌은 북적북적한 일요일 예배랑은 차원이 달라서, 가끔 새벽중에 자전거를 하나 사서 다녀와볼까 생각해보곤 한다.
새벽에는 길가도 고요하다. 그리고 오로지 잔잔한 빛만이 어둠을 밝힌다. 그리고 잔잔하던 거리를 지나 교회앞에 도착하면 교회앞은 이 시간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교인들로 또 새롭게 활기를 띈다. 겨울즈음이었어서 찬 냉기서린 교회 내부 또한 꽤 몽환적이다.
이미 누군가가 먼저 와서 예배 시작 전에 잔잔한 찬송을 켜놓은 내부. 고요함 속에 미리 온 교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예배가 시작이 되고 시끌벅적하지 않은 분위기로 진행이 된다. 설교가 다 마무리가 되면 바쁜 사람들은 예배후에 얼른 돌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남아 마저 자신들 의 기도를 드린다. 중얼중얼거리기도하고 조용히 기도를 하기도하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예배후에는 실내 조명이 모두 꺼진다. 그리고 마치 한줄기 바다위의 등대빛처럼 하나의 조명만이 켜지는데 그게 꽤 멋지다. 정처없는 바다위에 표류된 사람들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작은 신음같은 고된 기도소리가 잔잔히 울리고 작게 틀어놓은 반복적인 찬송의 반주에 잘 어우러진다.
밤공기, 사람들의 숨결, 교회 안의 나무로 만들어진 장식들의 내음 그런 게 좋다.
간절히 주변 사람의 행복이나 건강, 평안을 기도하겠지.
곁의 엄마는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하기 때문에 내 기도를 하다보면 들리는데, 어느 날은 내 기도를 하는 소릴 듣는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시길 바란다고.
누군가를 위한 기도는 참 아름답다. 기도만큼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행위가 있을까.
신앙이 어떤 것이든 그런 걸 떠나 어떤 종교들 바라는 건 단 하나, 소망하는 것들을 스스로 상기하고 반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든 안 되든 그저 소망함으로 간절해지는 그 기도라는 행위가 꽤 인간답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새벽예배를 드리고나서 돌아가는 길, 점점 밝아오는 파란 새벽하늘 위로 뜬 손톱처럼 얇은 초승달을 기억한다.
세상에 마법이 있다면 새벽일 것이고, 그 마법에 애절함이 들어간다면 그건 새벽예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새벽예배에는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도 뚜벅뚜벅 걸어오시고 뚜벅뚜벅 걸어가신다.
새벽예배에서는 소란함이 없다. 다들 조용히 촛불을 손에 쥔 것처럼 후 불면 날아갈 촛불을 든 것처럼 조심하며 걸음을 걷고 고요함을 음미한다.
나는 기도가 다 끝나도 그 시간이 너무 좋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찬양의 반주도 좋아서 그 자리를 꽤 오래 지켰었다. 어두운 사방에 한줄기 빛, 그 물결같은 공간에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그러모아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등은 마치 헤엄쳐나아가는 모습같다. 너무나도 순수한 모습.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고양감과 감동을 느끼고 살아있어서 좋다, 라고 느낀다.
조만간 이번에는 내 의지로, 혼자 새벽예배를 다녀와야지.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노라고, 항상 날 기다려주고 지켜봐주심에 감사하다고 맺힌 말 풀어놓고 엉엉 울러 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