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해봄직한 첫사랑은 그 단어부터 사실 진부하다. 그러나 내가 글로 쓰고싶은 목록에 추가가 되어있으니 써봐야지.
첫사랑하면 단순히 첫사랑이 뭐였더라? 생각하게 된다. 처음 한 사랑? 사랑이 뭐지. 연애? 두근거리는 감정을 처음 느낀 사람? 아니면 처음 내 사람 같다는 기분이 든 사람?
첫사랑. 내 기준에서는 첫사랑하면 그냥 다른 조건 없이 '그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첫사랑인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저 단어에 단 한사람만, 세상에 우주에 단 한 사람만 떠오르니까.
내 첫사랑은 제대로 연애다운 연애를 했던 고등학교 3학년의 동갑내기 남자애였다. 그때당시에는 문자 메세지를 통한 연락이 많았었고, 출처불분명한 번호도 가능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번호를 다르게 적어놓고 고백을 한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그런 것도 학교에서는 왕왕 있었던 일이었다. 한창 심심할 무렵, 그냥 세상에 띄우는 종이배처럼 나는 장난스러운 감탄사 정도를 적어서 아무 번호나 눌러 보냈다. 10명 정도에게.
그런데 인연이란 뭔지, 그 10명 중 한 명이 연락이 왔고 대 감탄사에 비슷한 호응을 하며 흥미를 일으켰다. 복권처럼 아무 번호나 찍었고, 그게 마침 내 동갑에 바로 대중교통으로 30분도 안 되어 도착할 수 있는 장소에 사는 아이였고 또 마침 남자애였고 나처럼 심심해하던 차의 타이밍이었다. 이런 우연은 사실 존재하는 게 신기할 지경인데, 아무튼 만날 사람은 어디에서든 만난다고 그런 엉뚱한 문자메세지로도 인연이 닿았고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다가 실제로 만났다.
아주 더운 여름날 오후, 역에서 만난 그 아이는 흰티에 청바지를 입었는데 그 모습 전체가 내 마음에 쏙, 눈에 쏙 담겼다. 한 눈에 반한 건 그 때가 처음이지 않을까. 어릴 때이기도 했고.
잘 생겼기도 했고 (후에 실제로 당시 인사를 나눈 동생은 여전히 잘생긴 오빠로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냥 다 마음에 드는 내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었다. 사실 첫사랑 이전에 짝사랑으로 끝났던 경우는 몇 번 있었는데 매번 스타일이 다 다양했다. 그래서 이상형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냥 맘에 들었다.
굳이 이상형을 꼽자면, 튼튼한 곰돌이나 귀여운 곰돌이나 남자다운 곰돌이 정도였는데 그 범위 내에서는 반했던 이성이 부합한다. 첫사랑은 잘생긴 곰돌이었던 걸로.
그 이후로 첫눈에 반한 적은 정말 없다. 그런 반한다는 감각이 정말 오래되긴 했다. 반하지 않아 편하지만, 또 그립기도 하다.
사실 우리사이를 그냥 '우정'으로 이어나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굳이 연애가 아니어도 되었어. 그런 무거운 거 말고 그냥 친구로 지냈어도 재밌었을텐데. 굳이 연애를 당연히 해야한다 생각을 해가지고 남자친구로써 어쩌구, 어자친구로써 어쩌구가 생기면서 서툰 연애를 하게되고 결국 헤어졌잖아. 근데 우정이든 연애든 일단 그 당시 내가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기적이었고 생각이 없었고 당장에 좋아한다는 감정만이 앞서서 널 피곤하게 하기도 하고 버겁게 만들고 그랬던 거였지.
우리는 6개월정도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 일방적인 상대의 이별로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헤어졌고 많이 울었다. 3년정도를 잊지 못해 고생했다. 만난 게 당연해서 헤어짐도 당연할 줄은 몰랐다. 인연이라하더라도 노력은 필요했던 것이지. 그렇게 하늘이 주신 내 인연은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첫사랑은 괜히 첫사랑이 아닌 것이, 가장 어리숙할 때 만났기 때문에 이 사랑의 크기도, 뭔가 비교할만한 것도 없다. 그래서 첫사랑에 좋은 사람을 만나면 놓치기 쉽다. 왜냐면 이게 당연한 기준점이 되거든. 나쁜 사람을 만났더라면 이게 너무나도 감사한 다정함, 배려라는 걸 알지만, 이게 처음이면 연애하면 이건 당연한가보다 혹은 뭔가 더 다정했으면 좋겠어, 라는 욕심이 생긴다. 기준점이 조금 상향되어 잡히는 것이지. 나에게 첫사랑은 꽤 상향이었기때문에 다 좋았기 때문에 연애 자체가 원래 이런 줄 알았다. 근데 그게 온통 그 아이의 배려 속에 이루어진거라는 걸 몰랐지.
다정한 헤어지는 말 속에서의 너를 생각하며 못됐다고, 헤이절때 이렇게 다정하게 말하면 누가 어떻게 헤어지겠냐며 너를 탓했지만, 그건 너의 여전한 배려이자 사귀던 사람에 대한 예의였다. 그걸 하나하나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미성숙했고 잘 몰랐다.
첫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10년이 넘도록 내가 헤맨 모양이다. 여러 연애를 해오면서 그리고 연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소개를 받거나 잠시 만나면서도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경험, 정말로 연애 다운 연애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정말로 어렵구나, 낮구나 라는 걸 체감했다. 세상에 남자는 많아도 내 사람은 정말 희박했다. 물론 너도 내 사람은 아니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끌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도 사실은 기적같은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음이 좀 무뎌진다. 그러면 한눈에 반할 일도 별로 없다. 반한다 치더라도 여러 조건이나 현실적인 것들을 먼저 계산한 후에 내 마음을 진정하는 방법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잠재우는 방법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다. 그런 번거로운 감정을 치울 수 있다. 이별에 엉엉 울지 않고 늠름하게 내 마음을 쓰다듬을 수 있다. 그래서 첫사랑때의 그 감정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는 것도 대강은 안다.
그래도 추억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좋다. 너가 나쁜 사람이 아니어서 나를 놓아준거고, 이별을 용기있게 말해준 거고, 날 이용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해주고 사귀어준거니까. 이별을 말하는 것도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걸 잘 안다. 내 첫사랑이 너여서 다행이었고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을 곱게 간직하고 있다. 건강히 잘 지냈으면 하고 인연이 된다면 잡담이나 하는 사이로도 한 번 보고 싶긴 하다. 그 당시에는 많이 미웠는데 이제는 그런 건 없다. 꿈결같던 추억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내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