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집마련, 그 혹독한 계기

by 김지은

나는 1인가구로 내 나이정도 된 태어나고 자란 동네의 아파트단지에서 거주한다. 혼자 살기에는 막 넓진 않지만 그래도 조그만 몸에 비해서는 편한 정도로 지내고 있다. 자유로 가득 찬 내 집, 내 공간.


사실 나는 내가 혼자 살거라고는 생각을 잘 못했다. 인간불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그냥 막연하게 프로포즈를 받고 결혼해서 뭐 애가 있을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20대 초중반에는 정말 결혼도 생각이 드는 남친을 만났는데 대차게 뻥~ 차이기도 했고^^


이후에 긴 10년 연애를 하면서 뭔가 이건 결혼느낌은 없네, 하지만 연애는 재밌네 좋은 친구같다 하면서 지내다보니 훌쩍 서른살. 아마 결혼에 대해서는 전남친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결혼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주변에서도 듣거나 하면서 그리고 내가 점차적으로 내 자신을 알아가면서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게 서서히 자리잡은 이유일 수도 있겠다. 점점 나는 결혼이랑은 멀어지고 내가 생각보다 개인적이라는 것, 혼자서 뭔가 하거나 회복하는 게 필요한 사람이고 자유, 존재함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걸 알았다. 대표적으로 MBTI가 내 생명줄이었는데, 이상하다 생각되던 내 성격은 그걸로 다 설명이 되었다. 이건 그저 내 기질일 뿐으로,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 모두 다 내 고유의 성격이었다는 것이 명확해지면서 더는 나를 애쓰지 않게 되었다. 나는 철저히 내성향의 인간이고, 이건 소극적인 거랑은 다르다. 소극적인 건 노심초사하며 할 말도 못하는 성격을 말하는데, 나는 내 발걸음대로 뚜벅뚜벌 잘 다니고 처음 본 사람이랑도 말 잘하고 인사도 잘한다. 내성향은 그저 혼자있는 게 좀 더 맞는 사람이다.


많이 없는 MBTI 성격이라는 것도 너무 좋았다. 특히 여성에게서는 잘 없다고 해서 너무 좋았다. 그래! 내가 특이했던 이유가 있었어! 내가 미친 게 아닌 거야!


내 성격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이고 뭐든 체계적으로 하는 걸 잘한다고 했다. 인간로봇같은 사람이 나였다. 그래도 요즘은 마음이 떠껀해져서 맘 따뜻한 로봇이되었지만. 그리고 나이가 드니 아줌마의 흐름대로 누굴 만나서 그냥 헛소리하고 웃고 떠드는 것도 좀 재밌어졌다. 자꾸 헛소리하려고해서 스스로 '닥쳐!'를 속으로 외친 적도 많다.


아무튼 나이가 들면서 나는 그냥 혼자 살아야 하겠다, 라는 생각도 있었다. 태어날때부터 나는 혼자였을떄가 없었다. 항상 가족 그것도 조부모님까지 꽉꽉 같이 미어터지게 살아왔고 근데 또 가족이 화기애애한 건 아냐. 시한폭탄마냥 맨날 사고터지고 할아버지 어디갔다가 술먹고 쓰러지고 뭐 이런 상황에 노출이 되어 있어서 가족끼리 정말 번거롭고 안맞는데 억지로 부대껴서 산 기억이 많다. 그리고 나는 뭔가 자극에 예민해서 잘 듣고, 잘 맡고, 잘 본다. 그러니 가족들의 여러가지 활동에 대해 더 민감해지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혼자 사는 지금은 가끔 티비도 틀지 않고 지내는데 그냥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멍하니 책을 본다거나 일기를 쓴다거나 낮잠을 잔다거나 배란다에 의자를 두고 누워서 풍경을 본다거나 그런 걸로 충분히 잘 지낸다. 이게 내가 원하던 자극없는 삶이고 일상이었던 것 같다.


항상 북적북적했다. 외박도 잘 안 됐고, 가족들도 집을 비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보다 부대끼면서 스트레스, 산만함을 더 많이 느낀 것 같다. 다른 아이들 중에는 어릴때 혼자지낸 시간이 많아 그런 걸 너무 두려워한다는데 나는 혼자가 너무 좋다.


20대 때도 쭉 가족과 살았고, 많이 부대꼈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30대에도 가족과 살았고 대신에 30대에 접어들면서 자주 의견충돌이 있던 아빠는 해외출장을 갔고, 엄마와 여동생 이렇게 셋이서 살았다. 꽤 편하고 좋았다. 30대에 큰딸로써 가족과 사는 건 녹록치 않다. 그 당시 이사를 해서 새로운 집에 살게 되었는데, 난 그 집이 너무 좋았다. 사랑하는 장소였는데 끝까지 내 장소라고 할 수 없었던 건, 언젠가 떠나야하는 장소라는 기분때문이었다. 가족들도 '얼른 결혼해서 나가주길'바라는 게 너무나 선명했으니까.


혼자 살고 싶었다. 나도 눈치 안 보고 잘 살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는 건 역시 집값. 집값은 아시다시피 20년 전후로 확연히 달라졌다. 그 전에 집값이라면 현금박치기로도 쇼부가 가능할 정도로 돈은 나름대로 모아두었었는데, 이렇게 집값이 확 뛰고나니 어디 빚없이 들어갈 집이 없었다. 빚도 1인가구인데 대출이 더 나올 것도 없고. 최대치료 뽑아봐도 아슬아슬.


그래서 매번 가족이랑 트러블이 생기거나 나에게 함부로 '나가라'라고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억장이 무너졌다. '정상적으로 결혼해라.' '나가라'


궁지에 물린 느낌이 컸다. 낭떠러지에 아슬아슬 발가락만 걸려서 허공에 떠있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날 원하지 않고 어디도 의지할 수 없다.


하지만 또 무턱대고 독립하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컸다. 여러모로 맘이 잔잔히 죽어가던 시기.


그러다가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아빠로 인해 서로 점점 생활패턴이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재택근무여서 저녁에 일을 한다거나 새벽시간 다 자는 시간에 혼자 거실에 잔잔한 조명을 켜고 책을 한 권 읽고 들어가는 게 내 일과였다. 그런데 그런 모습조차 맘에 들지 않았는지 항상 새벽에 거실에 나오면서 윽박을 지른다거나 아니꼽게 대했다. 자기는 밤새 안 보는 티비 크게 틀어놓고 쇼파에 술취해 널부러져 자거나 항상 자기만 보는 시끄러운 전쟁영화 하루종일 틀어놔서 가족들 거실에 앉아있을 수 없게 만들었으면서. 고작 나 새벽에 가만히 책보다가 들어가는 게 그리 아니꼬왔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어릴때부터 함부로 대하고 체벌아닌 체벌로 쌓여둔 것도 모두 발화하기 직전이기도 했고. 존재 자체가 싫고 역겨운 존재가 가족이라면 너무 고통스럽다.


잘 지낼 생각으로 서로 거짓으로 가족도 연기해보고 했으나, 이미 서로 본능적으로 뭐같다 느껴버리면 끝인 거지. 그게 곪고 곪아서 치유될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러다가 결국 일이 터지고, 이전 글인 '그 날'에도 써놓은 듯이 폭력 그 자체였던 그 시간에 질려버려서 나는 다음날 바로 미루어온 독립을 위해 집을 알아보고 그 다음날 바로 계약을 했다.


사실 남자라면 어디를 살든 상관 없었는데, 거주지가 안전한 게 나으니까 좀 더 신경써서 골랐고 평생 살 작정으로 골랐다. 물론 더 좋은 기회가 생긴다면 이사를 하겠지만, 이 곳으로도 충분하긴 하다. 대출을 받더라도 조금 모자라서 엄마가 도와주어서 간신히 독립에 성공했다. 나는 한 번 눌러앉으면 잘 이동하지 않는다. 귀찮기도하고. 그래서 집주인의 의견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녀야하는 전세도, 월세도 싫어서 그냥 매매를 했다. 사주에 난 흙이 많은 편인데, 흙이 많으면 잘 안 움직인단다. 일할때도 화장실도 안 갈 정도로 눌러앉는 걸 좋아하니, 여기서도 오래오래 살겠다 싶다.


정말 끔찍하게 싫은 일이었는데, 그로 인해서 내가 인생에서 가장 원하던 걸 가졌다. 특이한 일이지. 나는 결혼도 인생의 목적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있어도 되는 곳, 나만이 있어도 되는 곳, 내 장소, 집이 필요했다. 사실 전에는 친구가 결혼한다 뭘한다 하면 조금 위축이 되었다. 나는 뭘했지? 나는 뭐가 변했지? 그대로인데? 이런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온전히 축하하고 말할 수 있다. 이룬 게 있으니까. 가장 바라던 걸 얻으니 생각보다 더는 바라는 게 별로 없어졌다. 그냥 현상유지가 감사하다.


딱 작년에 일어난 일인데, 그 당시에는 정말 마음의 상처도 컸고, 너무 허망했다. 자주 울었는데, 내 장소 집이 있으니까 펑펑 울든 휴지를 한통을 다 써버리든 상관이 없었어서 정말 개운하게 매번 펑펑 울었다. 그게 좋았다. 혼자 살면 펑펑 울 수 있다. 그리고 그때그때 슬플때마다 우는 게 도움이 되었다. 아직도 꿈에 그 존재가 나오면 나는 도끼눈을 뜨고 그 존재에게 죽일듯이 달려들며 꿈은 끝난다. 그건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좀 무뎌졌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대로 주저앉으면 그냥 주저앉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뭉개져버린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러지말고, 어떤 일이 일어나 내가 넘어졌다 치자, 그러면 어쨌든 조금 쉬더라도 일어날 궁리를 해야한다. 그러면 나는 호되게 넘어져서 옴팡지게 다친 사람이지만 어찌되었든 자력으로 일어난 사람이 된다. 그러면 다음에 또 철푸덕 넘어져도 그때 경험으로 '에잇 이정도는 뭐 인생이 이렇지'하면서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내 상처와 경험을 사랑한다. 감사할수는 없어도 사랑한다. 그걸 이겨낸 극복한 내가 대견하고 기쁘다. 그리고 지금의 일상을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다. 가끔은 고독하지만, 함께 있어 괴로운 것보단 혼자서 외로운 게 더 낫다고 나에게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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