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내 인생에서 만나기 싫은 스타일 정리 #징징이

by 김지은

징징이란, 달리 어떤 변화를 주거나 개선할 생각없이 뭔가 하나에 꽂혀서 그것에 대한 투정, 불만만 털어놓는 사람, 그런 행동을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이 어디 매번 좋은 일만 일어나겠는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억울하고 슬프고 분하고 답답하니까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할 수 있다. 나도 충분히 그러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 상황에 대해 놀라고 당황하고 억울하면 이야기하고나서 그 다음으로 생각을 하고 풀어나가고 그 상황을 넘어가야지, 거기에 그대로 머물러서 이럴수가, 나한테만 이런 일이, 왜 대체 내 주변은 다 이 모양이야! 라고만 하고 있다면, 그건 자신의 잘못이다.


그리고 더 나쁜 징징이 스타일을 알고 있는데, 바로 '징징거림'으로 자신을 낮추어서 '상대방의 눈에 들려하는' 혹은 '상대방을 내 입맛에 맞게 조절하는' 사람이다. 이건 정말 답이 없는 게, 한 번 징징거림이나 나의 안타까운 상황에 내가 살을 입히고 계속 얹어서 얘길하면 사람으로써 연민이 생기지. 그러면 이 연민을 받는 가련한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상황이 나중에는 '달콤'하게 변한다. 그런 관심이 너무나도 좋고 나를 안타깝게 보는 그런 눈빛들이 '즐거워진다.'


이건 인간으로써 괘 기분 나쁘다. 나는 누군가 나를 연민하거나 안타깝게 보는 것 자체를 못 견딘다. 그건 그거대로 또 단점이 있겠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충분히 스스로하고 해결이 되기 전에는 굳이 말하지 않고 내 스스로 해결을 한 후에 이런 일이 있어서 고생했다, 정도로는 주변에 우스갯소리로 말을 하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남의 손을 자주 빌리는 사람 그리고 그런 식으로 결국에는 이용하는 사람, 계산하는 사람, 자신을 이미지메이킹하는 사람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 수가 너무 잘 보인다. 그 눈빛 아래에 기울기울하면서 상대방의 패턴을 이끌어내려는 그런 과정이 너무 심하게 말하면 좀 역하다.


왜 이렇게까지 잘 알고, 싫어하냐면 설마 설마 하며 아끼던 동생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꽤 아끼고 좋아하는 나를 잘 따르기도하던 아는 동생이 있었다. 막둥이 기질에 외로움을 잘 타고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여서 재밌게 잘 지낸다 생각했는데, 어릴떄야 그랬지만, 점점 아이가 커가고 30대에 접어드니 약간 이게 묘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듦을 자꾸 토로하고 그게 주된 대화가 되고 그 힘듦은 회사생활이기도하고 잘 되지 않는 다이어트가 되기도하고 주변 사람에게 받은 어떤 부당함이기도 했다. 근데 이게 몇년이 지나도 패턴이 같다. 그게 의아했는데, 회사생활도 이직을 해도 매번 비슷한 상황속에 갇혀서 괴로워했다. 같은 회사가 아닌데 같은 상황이 매번 반복이 되는 건 자신의 원인도 있다. 그리고 개선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고 부당함 속에서 그냥 한탄을 한다. 부딪히지도 건의하지도 다른 방안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게 이직하고 다시 이직한 회사 역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모든 상황이 비슷했으며, 결국 나는 듣기싫은소리더라도 조금은 변해서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그냥 순수히 들어주고 응원하기보다 필요한 조언을 해주었다. 또는 조금은 변화하려 노력은 해야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는데, 그럴 용기도 아무것도 없었다. 학습된 무기력이랄까.


그렇지만 사람은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굴기도하고 발전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아이가 선택한 방법은 혼자 이겨내고 싸워내려는 게 아니라, 좀 더 이 상황, 조건들을 이용하는 거였다. 그래서 영악하게도 조그만일도 부풀리면서 나 뿐 아니라 주변에 모두에게 자신의 힘듦을, 슬픔을, 심지어 어린시절의 상처들이라고 하는 기억들에 대해서도 수시로 풀어놓아 다른 사람에게 동정을 샀다. 그 중에는 나처럼 변화를 위해 노력을 하라고 따끔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나이가 되어서 여전히 그렇게 가족에 얽매어있으면 어떡하냐는 말에 다른 동정하는 친구들과 입을 맞추어 '내 상황이 되어보지않으면 절대 모른다'라고 으름장을 놓은 모양.


그리고 결국에는 나에게 서운한 것도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는 등 절대로 멈춰질 것 같지 않는 그런 자기만의 방어랄지, 사는 방식이랄지 그런 게 점점 더 기괴할 정도로 심해지자 나는 손을 놓았고, 그녀의 징징거림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누군가를 철두철미하게 괴롭히거나 그런 사람도 물론 못되고 이해할 수 없는데, 그만큼 또 생각보다 무섭고 못된 건 지능적인 징징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느 인간관계든, 조금이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아?' 라거나 '이건 좀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손 떼는 게 답이다.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거나 살게 하는 건 생각보다 기만이다. 물론 살게하는 의욕, 도움, 계기는 되겠지. 응원, 힘이 되겠지. 다정함이나 친절함은 사람을 다시 한 번 걷게 하니까. 근데 그 정도일 뿐이지 정말 나아가려면 내가 스스로 나를 일으키고 나를 다독이고 나를 이끌어야한다. 내가 손놓고 있는 나는 주변사람들이 아무리 응원하고 동정해도 나태해지고 낡아갈 뿐이다.


그러니 지금도 지능적인 징징이들로인해 어디까지 받아줘야할지, 대체 이게 뭔지 너무 괴롭다면 나를 위해서 그 관계에서 손을 떼길 바란다. 그 관계에서 손을 뗀다해도, 그 사람을 포기한다해도 당신이 나쁘거나 못된 게 아니니까. 할만큼 했으면 개선이 안 되는 관계, 사람은 관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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