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티제를 실감할 때

INTJ

by 김지은

MBTI를 믿지 않는 사람도 꽤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MBTI를 혈액형을 보는 거랑 동급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난 꽤 신뢰한다. 왜냐면, 혈액형은 피의 종류로 나누어서 성격을 설명하는거라 조금 대략적인 게 많기도하고 피의 성질로 인해 성격이 결정되고 그게 꼭 네가지라는 것이 좀 아쉬운 부분이지만, MBTI는 애초에 테스트를 하기 때문에 그 많은 문답을 골랐을 때 정해진 특징이 내 성격이라면 그게 맞다고 본다. 애초에 내가 고른 답안들로 내 성격은 그대로 노출되었을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 MBTI를 확인하고 설명을 읽고나서야 나는 뭔가 구원받은 기분이 들어서 사실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나를 어필할 필요없이 정해진 어떤 성격적 특징이 구분이 되고 설명이 된다는 개념이 편하고 좋다.


INTJ, 줄여서 인티제라고 읽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종류를 '로봇'이라고 표현하는 설명들이 많았다. 내향형에 계획형에 이성적 그런 내용들. 주변에서는 최근에 MBTI가 바뀐 경우도 있대서 나도 기간을 두고 한 다섯번 테스트를 다시 해본 적이 있는데, 약간의 그래프만 조금 요동칠 뿐, 항상 이 결과였다. 심지어 조금 마음이 동해서 발랄하게 지낼때도 있었는데, 그 떄도 바뀌지 않았다.


기복은 있어도 기본적인 내 성격의 특징은 이런 모양이다, 라고 여기고 있다. 어릴때부터 뭔가 애늙은이 같은 성격이었고 뭔가 특이하긴 했는데 그걸 뭐라 표현할 수 없고 똑똑하다기보다는 뭔가 어리숙해보여도 나만의 무언가 의지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넘어서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끝내거나 들이받는 성격이 있었다. 요즘은 나이를 먹어 들이받을 힘도 뭐도 없어서 그냥 어느 정도가 지나면 무시하거나 조용히 단념해버리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지만.


인티제는 여성에게서는 많이 없는 편의 성격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성적이 강해서 그런 듯 하다. 기본적으로 동물들도 수컷은 좀 더 이성적, 암컷은 좀 더 감성적 이런 식으로 많이 구분을 짓다보니 그런 구별이 생긴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릴떄에도 그리고 학생때에도 꺅꺅 거리며 손을 맞잡고 '어떡해 어떡해'하면서 꺄르르 거리는 여자애들이 이해가 안 가고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뭔가 오글거리고 이상하다. 지금은 학습한 사회성이나 감정이 있어서 그리고 여러가지 풍파로 경험하면서 감정이 많이 발달했지만, 어릴적에는 정말 타인의 눈물도 감정도 잘 읽지 못하는 편이었다. 무덤덤한 그리고 내 상처나 내 아픔에도 꽤 무덤덤했다. 참고 참고 참는 편. 그래서 약간 돌덩이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마음을 갖고 지냈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많이 어루만지고 아껴주면서 뽀송뽀송한 마음이 되었지만.


성격이라는 건 사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항상 신기할 정도로 내 맘이 편한 쪽을 선택하다보면 '아, 결국 이런 게 내 성격 그대로구나'라는 걸 실감한다. 성격을 애써 바꿀 수 없고, 크게 자극적인 성격이 아니라면 이대로 사회에 물들고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 세상은 그다지 나에게 관심이 없고, 오히려 사회는 로봇을 좋아한다. 나는 꽤 사회에 적합한 로봇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일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일하는 루틴도 좋아하고 일이 많은 날도 계획대로 다 꼼꼼히 처리하고나면 남는 즐거움이 있다. 드라마 같은 거도 요즘 것보다도 8, 90년대의 일본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일하는 여성의 내용 그 중에서도 어버버하다가 시집가버리는 여자이야기보다 자기 할 일 하며 당당히 살아내면서 홀로 서는 느낌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최근에 94년도 일드 '29세의 크리스마스'를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봤다. 해피엔딩이 아니고 현실적인 결말인 것도 너무나도 맘에 들었다. 사실 여주도 너무 내 취향이고, 남주가 너무 내 취향인 것도 있긴 했지만(ㅎ)


전생에 80년대 일본에서 일하다가 안타깝게 죽었는지, 그 시기의 풍경이 너무 좋다. 정작 일본여행은 관심없으면서.


로봇의 특징이 뭘까. 가장 큰 건 다치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는다 이런 거. 물론 슬프기도하고 울기도하고 그렇긴 한데 그건 큰 부분에서만이고 자잘한 것에서는 개의치 않고 상처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무슨 큰일이 난다 하더라도 그래서 내 마음이 너무 많이 다쳤다 하더라도 일단 내 감정과 이 상황을 '생각'한다. 정확히는 '분석'하는 것 같다. 내가 어느 정도 슬픈건지, 이게 내게 위험한 정도의 우울인지, 그리고 이 상황이 어떤 식으로 내게 도움이 될 지 그런거. 긍정회로를 돌리는 것을 좋아한다. 잘 하는 일이기도 하고.


긍정적인 로봇, 그게 나인 것 같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 인생과도 닮아있어서 좋아하는데, 다가온 화(어려운 일, 재난)가 후에는 복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게, 너무 어이없는 일이나 슬픈 일, 억울한 일도 '괜히 생긴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 이유가 있다고 확신하며 살아간다. 이로 인해 내가 무언가를 얻고 나중에 더한 실수를 하지 않게하기 위한 그런 액땜이었다고, 나를 위한 나중을 위한 좋은 넘어짐이었다고 생각하고 잘 털고 일어선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지는 않기로 한다. 기대면 사람은 점점 더 편한 쪽을 택한다. 나중에는 자각이 없어지지. 가능하면 내 두 발로 선다. 그게 나중에 내가 덜 슬플 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기대를 해서 상처받고 슬퍼지는 거니까. 애초에 사람에게는 기대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기뻐할 일, 내가 즐겨하는 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소소한 그 모든 것들을 계획적으로 차근차근 담고 음미하고 기뻐한다. 정말 소소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기쁜 것들. 출근길 매일 마주하는 아기오리, 포근하면서도 아늑한 내 일하는 사무실, 악의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들, 퇴근하고나서 함께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퇴근길 들르는 동네 마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나 그런 소소한 정겨움, 밤하늘 아래로 보이는 나와 내 고양이가 사는 집, 집에 들어가면 미리 앞에 와서 마중나와있는 내 예쁜 고양이. 저녁을 먹고 샤워하고 일찌감치 포근한 거실의 따뜻한 담요가 깔린 러그 위에 앉아 고양이와 같이 보는 영화, 드라마 같은 거.


하루의 정해진 루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 중에 어느 날은 퇴근후에 카페를 가서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를 맛있게 먹기도하고, 식당을 가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하고. 날이 좀 더 풀리는 다른 계절에는 퇴근 후 산책을 가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일상도 중요하다. 하지만 혼자도 혼자만의 분위기, 느낌이 있어서 꽤 즐겁다. 나이가 있다보니 뭔가 아줌마같은 내 모습도 재밌다. 그냥 혼자 장을 보는 것도 그냥 그 자체도 재밌다. 분리수거하고 음식물쓰레기버리고 그런 사소한 것들도 분명 나는 어른임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어린애가 놀이를 하는 기분으로도 느껴지곤 한다. 맛있게 국이 끓여지면 꽤 뿌듯하기도하고 집안일을 이것저것 후다닥 해내는 날 보면 또 뿌듯하다.


성격도 그렇지만 그냥 일상을 대하는 태도도 삶에는 중요한 것 같다. 누군가와 있어서 더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더 많이 느끼는 편이어서 혼자가 덜 외롭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외향형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일상이나 루틴이겠지만, '정말 어떻게 그래?'라고 특이하게 본다면 별 달리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냥 나는 나를 납득하고 이해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내가 나를 납득하고 또 타인에게도 조금은 이해를 시킬 수 있는 MBTI가 있다는 게 나에게는 사실 꽤 큰 의미가 된다. 나를 존중하고 객관화하면서 나를 더 좋아할 수 있다. 나는 특이하게 보이는 나도 좋지만, 그냥 이런 나라서 좋다. 나만의 색이 있어서 좋다. 나를 배려해주어서 좋다. 다른 사람의 불이해보다, 내가 나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게 가장 외롭고 아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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