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선샤인 스포있음 주의>>
10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쉬운 건 아닌데, 친구도 10년을 넘기기 힘든데 다른 성별의 이성과 10년을 같이 지낸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지나고보면 그냥 꿈결같고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의 순간 같다고 느껴진다. 기억도 뭉뚱그려져서 희미하기도하고 명확하기도 하다.
햇수로는 사실 거의 11년사귀었지. 11년 좀 안 되어서 헤어졌어.
내 20대 중반부터 30대의 중반까지 함께했고, 너에게 나는 20대 전체기간의 전부였고 30대초중반의 전부였겠지. 나는 사실 너랑 만나기 이전에도 연애는 했었고, 여러모로 이별도 많이 했고 네가 첫사랑이 아니다보니 이미 아픈사랑도 아쉬움도 그리움도 몇년을 앓기도 하고 그런 상태에서의 연애여서, 헤어진 지금은 다시 만나고 싶다 이런 아쉬움 절박함보다는 '좋았네'정도로 우리의 추억을 차곡차곡 가슴에 담는 중이지. 아프거나 슬프거나 그건 이미 사귀는 동안 진절머리나게 다 해서, 막상 헤어지니 나올 눈물도 없어. 나는 이미 사귀는 중에 헤어지고 있었던 모양이야. 사귈때가 더 힘들고 고단했는데, 헤어지니 내 삶만 생각해도 되어서 꽤 즐겁기도하고 놀랍게 간단해진 내 삶이 일상이 새롭고 신선해. 지낼만 해.
나는 이렇다하지만, 너는 어떨까싶네. 너는 꽤 힘들기도하고 조금은 허허벌판같겠다.
나와의 사진이 전부이던 너의 프로필앨범도 어느새 정리를 했던데, 남은 건 너의 고양이 사진 뿐이었잖아. 그게 꽤 내가 다 슬펐어. 너에겐 내가 전부였던 모양인데, 내가 처음이라 너는 아무래도 지키는 법보다는 당연했다거나 조금 지루해졌다거나 그랬을 것 같아. 내가 연상이다보니 나도 너에게 가르치려하는 게 있었고 나도 성격이 좋은 게 아니다보니 닦달하기도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성격이 별로긴 했어. 그래서 헤어지면서 생각이 드는 건, 헤어지길 잘했다. 라는 결론이야. 나로 인해 너는 힘들었을 거야. 내가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내 틀이 정해져있잖아. 그 틀에 너를 맞춰오는데 너는 답답했을 거야. 그게 올바르다하더라도 그게 싫었을거야. 그리고 너는 그렇게 살면 안 되니까. 내 밑에서 살 수 없잖아.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다루는 게 잘못되었다는 걸 이제는 알아. 그래서 안 그러려고 해. 서로 마주해야하는데, 내가 연장자라는 이유로 너를 이끌려고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고하고 뭐 좋게 포장했지만 결국 내 뜻대로 따라오게끔 했어. 생각할수록 우리 연애는 그다지 올바르진 않았던 것 같아. 정답같은 연애는 없다지만, 그냥 이제사 드는 생각은 나로인해 너가 많이 안됐다, 라는 생각이야. 그래서 내가 없으면 너가 좀 더 편하게 네 인생을 잘 살 것 같아.
너를 한번은 받아줄까 생각했었어. 네가 첫사랑으로 인해 많이 아플 걸 생각하면 내 첫사랑때 3, 4년간 잊지 못해 고생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고 아팠거든. 근데 생각해보면, 첫사랑은 아픈 게 맞고 이별은 얼토당토없이 찾아오는 게 맞더라고. 그렇게 내가 널 봐주듯이 받아줬다면, 나 역시 내 첫사랑이었던 그에게 받아졌어야하는데 얄짤없이 컷이었거든. 그래서 이별은 누구를 봐주고, 동정해서 다시 만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어. 아플 수 있고 허전하기도하고 생애 처음으로 이별다운 이별을 해서 당황스럽기도 하겠지만, 넌 잘 해내리라 믿어. 그리고 너에게 맞는 사람이 있을거야. 그 사람에게 좀 더 잘 해줘. 물론 충분히 잘 해주겠지만, 시간이 지났다고해서 혹은 너의 말을 잘 받아준다고해서 혹은 네 의견과 다르다고해서 너무 성격대로 하지 말고. 네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소리부터 지르지 말고. 그리고 소통할때는 부끄럽거나 그런 생각이 든다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눈을 잘 보고 얘기해. 그것도 필요하니까.
너는 아이를 좋아하고 바랐으니까, 내가 아닌 사람과 가정도 이루고 예쁜 아이들 건강히 잘 낳아 기르며 살아. 나는 헤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아이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 나는 가능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보태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여전해.
아참. 어제 일요일이었는데 영화봤어. 이터널선샤인, 우리 사귀고 초반에 재개봉해서 본 영화잖아. 너 만나기 바로 전 연애에서 나는 차였는데, 너무 뭐라 반박하거나 뭐라 소통할 여지없이 헤어졌어. 약간 너랑 헤어진거랑 좀 비슷하겠다. 아 좀 다르려나. 무튼 나는 차이고나서도 그냥 울고싶지 않아서 무던히 참았어. 한 번도 울지 않았어. 근데 그 눈물이 그 영화를 보고 터졌었나봐. 억울했던 감정, 슬픈 감정, 아쉬운 감정 그런 것들. 영화 속 '음미하자'라는 말에 눈물이 나는 날 본 건지 아니면 타이밍이 맞았던 건지, 너는 그때 갑자기 내 손을 잡았어. 그 손의 온기, 따뜻함은 다 기억 나. 그게 좋았어. 너는 따뜻했고 손은 든든했으니까. 그 손을 영원히 잡을 줄 알았는데, 우리는 헤어졌네.
그래서 그 영화를 떠올리면 네 손이 먼저 떠올라. 근데 마침 헤어지고나니 그 영화가 재개봉을 한다는 거야. 그래서 어제 기대하면서 예매하고 혼자 가서 봤어. 너무 기대 되더라고. 막 울고 싶어서 휴지도 엄청많이 챙겨갔어.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영화관을 나왔어. 전혀 안 슬프더라고.
이미 아는 내용이라하더라도 또 눈물이 나는 영화가 있을 정도로 나는 눈물이 헤픈 사람이야. 그런데 그 영화는 전혀 슬프지 않았고, 내가 11년 전 눈물을 흘린 버튼이었던 사라져가는 기억을 인정하고 '음미하자'라고 말하는 부분도 전혀. 슬프지 않은 거야. 지금은 번역이 달라져서 '즐기는 거야'정도로 번역이 된 것 같은데 아무튼 정말 이상하리만치 동요되지 않았고 오히려 마지막 '네가 어떤 모습이든 우리가 과거 어떤 연애를 했든 다시 사랑하자, 괜찮아' 라는 결말에서는 (사실 까먹고 있어서 잘 몰랐어) 인상을 찌푸리는 날 발견했어.
11년동안 있잖아, 사실 너도 변했는데 웃기게도 나도 엄청 변했더라고. 연애를 대하는 태도, 그런 거나 삶을 대하는 방식 같은 거.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만한 세월인데 당연히 뭔가 바뀌고 중요한 것도 순서가 바뀌는 세월이야. 맞아. 근데 전에 보던 영화가 슬프지 않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더라고. 내 연애관이 많이 바뀌었어. 나는 다시 시작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상황속에서는 절대로 다시 시작할 수 없어. 이건 내가 장기연애를 해봐서 더 연애관이 바뀐 걸지도 모르겠어. 그들은 이미 끝난 사이야. 질릴대로 질리고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준 사이인데, 다시 붙일 수 없어. 그리고 심지어 녹음파일에 여자를 창녀처럼 표현한 것도 만일 실제로 들었다면 절대 다시 사랑할 수 없어. 다시 만날 수 없어. 계속 그 말은 내 머리에서 뒤풀이 될 거거든. 사람은 상처받은 순간이나 말을 절대 잊지 못해. 그래서 다시 사랑할 수 없고 다시 만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사실 영화 자체에 조금 실망스러움을 느꼈어. 너무 허구같아서. 그리고 만일 그게 진심아라면 너무 바보같아서.
분명 울려고 갔는데, 멍하니 돌아오는 길도 찝찝하더라.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아. 그 영화는.
나는 아직도 네가 내게 진심으로 잘해주고 따뜻하고 다정했던 그리고 함께 걸은 빛나고 따스한 길가의 풍경도 기억하는 한 편, 차 안에서 윽박지르고 내게 건성으로 대답하고 귀찮아하던 말투 모든 걸 함께 기억해. 그래서 절망적일 정도로 명확하게 우린 돌아가지 못해. 그리워할 순 있지만, 돌아갈 순 없어.
일기장에 몇 년 전에 쓴 글이 있어. 마치 링거에 뚝뚝 떨어지는 링거액을 받듯이, 나는 너에게 얼마 남지 않은 약간의 애정을 뚝뚝 조금씩 받으면서 위안을 삼으면서 연애를 하는 중이라고. 그렇게는 다시 연애하고 싶지 않아. 고마웠지만 날 슬프게 한 것도 너니까.
너 역시 나에게 좋은 기억과 슬픈 기억, 상처를 받은 기억 모두 갖고 있겠지. 너가 어떤 기억을 우선시하거나 떠올릴지는 몰라. 억지로 나쁜 기억으로 날 욕하며 잊어도 괜찮아. 네 맘만 잘 다독이면서 너 편한 방법으로 우리를 나를 천천히 잊기보다는 그냥 담아두면 돼. 억지로 잊고싶을 수 있겠지만, 어차피 노력하지 않아도 살다보면 또 기억이 가물가물해져.
나는 그 가물가물해지는 게 좀 아쉽더라고. 그래서 애써 잊으려고하지 않고 오히려 더 생각해. 그러면 잘 만나왔다, 후회는 없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 편으로 시간 더럽게 빠르네, 라는 생각도 들어.
서로 서로에게 잘 대해주고 진심인 서로에게 잘 맞는 상대를 만나자. 이성이 아니더라도 그런 내 사람들하고 자주 소통하는 그런 일상이 되었으면 해.
10년이라는 시간이 무겁다면 무거운데 실제로는 입김에 후~ 하면 날아가는 깃털같아.
그래도 만나길 잘했어.
열심히 살아. 기죽어서 나죽겠다~하지 말고. 살아만 있으면 좋은 이별이야. 나쁜 생각하지말고 건실히 잘 살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