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후반 여자사람
원래는 화장도 했었고, 꾸미는 것도 좋아했다. 20대 대학생때부터 누구나 그랬듯이 화장을 하거나 하루도 검은 머리 그대로 놔두지 않고 파마나 염색을 했고 손톱도 매번 여러가지 색깔로 칠했다. 여러겹의 다른 색깔의 무언가를 덮고 덮고 덮으면서 내게 어울리는 색을 찾곤했다.
그렇게 20대 후반까지 지내다가 어느 순간 엄마가 자신은 35살이 딱 되니 흰머리가 났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어서인지 두피에 더 이상 손상을 일으키면 돌이킬 수 없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29살즈음부터 37살인 지금까지 한 번도 머리에 염색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딱 한 번 파마랑 매직을 한 번씩 했을 뿐, 여전히 길이감만 달라질 뿐인 내 머리는 언제나 같은 내 머리색이다.
머리도 그렇고 지난 코로나시절에 급 화장에도 번아웃이 와서 (단지 귀찮아서) 안하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갑자기 내 인생에 춤이나 활동적인 그런 걸 하고싶어지는 시점이 들어서면서 34세에 춤바람이 들고 주변에 사람도 웅성웅성 많아지면서 다시 화장을 하기 시작하고 갑자기 제일 짧은 (중학교 입학때 두발검사를 위한 귀밑 3센티 이후 최초) 단발로 자르게되고 그 단발이 심지어 잘 어울리게되어서 여러모로 즐거운 34살에서 35살 초반을 보냈다.
그러다가 35살 7월을 맞이하자마자 내 인생의 제일 큰 사건이 뻥- 터지고 이후에 서서히 다시 화장을 하지 않게 되고 짧았던 단발이나 커트는 다시 미용실을 안 가면서 점점 더 길어졌다.
20대에는 염색을 안 한 내 검은 머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마치 화장 안 한 생얼처럼. 그래서 검은 머리임에도 검은색으로 확실히 색을 입혀야 맘이 놓였다. 화장도 꼬박꼬박 했었다.
그런데 점차적으로 염색을 안 하고 머리에 뭘 안 하고, 화장도 안하고 (대신에 피부는 중요하니까 비용을 투자해서 브랜드 기초세트는 항상 사용해왔다) 따로 향수같은 것도 20대에는 꼭 뿌렸는데, 이제는 전혀 뿌리지 않는다. 섬유유연제 조차도 이제는 세탁할때도 넣지 않아 코를 푹 눌러 맡아야 느껴지는 깨끗한 옷 자체의 냄새가 나도록 한다. 나에게도 향수냄새가 아니라 나 자체의 냄새, 체취가 그대로 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지내다보니 새로운 걸 깨닫는데, 내 머리는 검정색이 아니었다. 갈색도 아니고 뭔가 아주 검정색보다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검은색으로 이를테면 연검은색이랄까. 그리고 이 머리색이야말로 내 피부나 눈동자, 얼굴, 분위기랑 아주 잘 어울리는 색이라는 게 매년 느껴진다. 항상 노란색이나 빨간색의 염색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염색이 달떠보이기도하고 과장된 느낌이 컸는데, 염색을 안 하다보니 딱 내 분위기대로 내 성격대로 느낌이 드러나는 것 같아 과하지 않아 좋다. 나는 원래도 튀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내가 곱슬이 심하다고 생각하고 자라왔는데, 알고보니 나는 거의 생머리에 가까운 약간의 반곱슬만 갖고 있었다. 항상 파마를 해왔기 때문에 몰랐고 어릴때에는 밤에 머리를 감고 자느라고 아침에 산발이 된 머리만 봐왔기 때문에 내 머리가 완전 곱슬인 줄 알았던 거다. 그런데 지금보면 머리가 거의 생머리에 가깝다. 다만, 단발을 하거나 커트를 치면 어김없이 뻗치는 곱슬은 맞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는 곱슬이 아니었다. 지금도 다른 고데기나 머리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린스없이 샴푸로만 머리를 검고나서 툭툭 물기를 제거한 후에 빗으로 가지런히 빗어내린 후 자연적으로 말리면 밑으로 쭉 뻗는 머리가 된다. 절대로 나는 곱슬이 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눈썹도 항상 짧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눈썹이 양옆으로 길었다. 이유는 20대에 들어서면서 무작위로 눈썹을 깎아버렸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눈썹을 주변 지저분한 것들만 지워내는데, 다시 눈썹이 길어졌다. 그리고 내가 억지로 깎고 그려온 눈썹보다 지금 자연스럽게 돋아나는 내 눈썹이 만드는 모양이 내 얼굴에 눈에 제일 자연스럽고 잘 어울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항상 그린 눈썹은 날카로워보이기도하고 또는 굉장히 인조적인 느낌이 들어서 매번 사진 속의 내 눈썹을 볼때마다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그린 것보다는 숱이 적고 연하긴 하더라도 내 자연스러운 태생적인 눈썹의 모습이 맘에 든다.
얼굴색도 억지로 밝게하는 화장은 내 인상을 들뜨게 만들었는데, 화장을 안 한 얼굴빛은 내게 정말 잘 어울렸다. 어릴때에는 얼굴이 까무잡잡해서 너무 싫었는데, 그건 항상 썬크림없이 바깥에서 노느라 항시 그을려있어서 그런거고, 지금보니 내 얼굴도 그리 까무잡잡한 편은 아니었다. 물론 아주 하얀 타입은 아니지만, 오히려 건강한 살색빛의 그리고 얼굴의 자연스러운 음영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서 얼굴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표정도 더 편안해보인다. 그리고 몰랐는데, 항상 혈색좋아보이려고 볼터치를 특히 연분홍색의 불터치를 참 좋아했는데, 알고보니 화장을 안 한 얼굴일 때 덥거나 홍조가 올라오면 나는 얼굴 전체가 빨개지는 게 아니라 볼만 내가 좋아하는 그 연분홍색의 홍조가 올라온다는 걸 새로 알았다. 동생도 술자리에서 술마시던 내 얼굴을 보면서 언니 홍조 연분홍색인 거 처음알았다면서 신기하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어쩌면 내가 하던 화장들은 결국 내 얼굴 원래의 모습을 따라 그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항상 입술색이 옅은 편이라서 항상 빨간색으로 조금이라도 옅어지면 어쩌나 하고 바로바로 바르고 덧바르고 하던 습관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빨간색이 부담스럽고 생얼에는 더더욱 좀 어긋나는 느낌이 들어서 원래 입술색이랑 비슷한 연분홍보다도 더 연한 색의 입술색의 매트한 립을 바르는데, 이 역시 편안한 인상이 되어서 좋다.
내 나이여도 열심히 화장을 하고 밝게 염색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내 고유의 색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떤 게 정답이라고 할 순 없고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되는 부분이다.
다만 나는 아직도 엄마의 35세 흰머리설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염색머리는 내게 너무 화려하고 어울리지 않을거라는 걸 잘 알아서 두피도 고생시키지 않을겸 겸사겸사 이대로 지낼 생각이다. 물론 나중에 흰머림가 올라오면 어쩔 수 없이 뭔가 염색을 하긴 해야겠지만 그때 다시 간만에 새로운 색을 입혀도 재밌겠지. 다만 지금 제 스스로의 색으로 열심히 치장하며 올라오는 내 머리카락의 노력을 위해서도 내 스스로 색을 입힐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아주 어두운 검은 색이긴 하지만, 또 아주 까만색은 아니면서 밤색을 지닌 머리와 눈썹, 눈동자색이 내게는 아주 잘 어울리니까. 내게 맞는 색으로 하루하루 나답게 지내는 것이 지금의 나는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