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나는 어릴때부터 척추측만증을 앓았고, 그걸로 인해 보조기도 착용하고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다가 결국 너무 많이 휘어버려서 20대초, 수술을 했다. 총 9시간이 걸리는 대대적인 수술이었고 내 인생에는 '다른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꽤 듬직한 커리어같은 부분이기도 하다. 누가 9시간 수술을 이겨내겠는가! 물론 좋아진 수술실력으로 실패가 없다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그게 꽤 자부심이 든다. 아무튼 그 큰 수술을 받고나서 한 이주일정도는 입원을 했다. 한창 친구도 많을 대학생때라서 친구들에게 문병을 얘기했고, 꽤 많은 친구들이 문병을 와주었다.
초등학교 친구부터 중학교때부터 친구로 지낸 친구, 고등학교때 남은 친구는 없고 대학생때 사귄 친구들 등등. 거의 10명 이상 왔던 것 같다. 자차가 없을 나이니까 모두 다 그 먼 강남세브란스까지 자비로 대중교통으로 방문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차라 하더라도 쉬운 게 아닌데 그들의 마음을 너무 쉽게 당연하게 받은 것 같아 무안하다. 지금의 무안을 새삼스러움을 그때 알았더라면 좀 더 좋은 친구로 남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무튼 거리가 멀었어서 친구들은 대부분 문병을 한 번을 간신히 왔다갔다. 오더라도 뭐 저녁이라도 샀어야했는데 나는 그저 친구들이 온다는 것에 기뻐서 항상 병원 지하 편의점으로 과자를 사서 먹은 기억밖에 없다. 1시간 이상씩 날 위해 온 친구들인데 밥이라도 살 걸. 왜 그때는 항상 나밖에 안 보였을까. 내 재미만 생각했다. 그래도 섭섭한 티 내지 않고 친구들은 즐겁게 대화하고 내 안부를 묻고 웃고 웃었다. 내 수술부위를 궁금해한다거나 수술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는 친구는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잘 지내고 오늘 하루는 어땠고 일상은 어떻고 그런 얘기들. 한 친구는 너무 내가 좋아하는 친구라 늦은 밤까지 수다를 떨며 붙잡아 두었었는데 나중에 백퍼 막차가 끊겼을 시간이었을텐데 어떻게 집에 돌아간 건지 지금에서야 너무나도 미안하고 면목없다. 이후에 친구가 그걸로 내색하지 않은 것도 너무 미안하다.
항상 나는 친구들에게 받기만 했던 것 같다. 이 글을 빌어 모두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무안한 마음으로 감사를 전해본다. 전해지길.
대부분 한 번의 문병으로 그쳤지만, (긴 입원기간도 아니었고 회복도 빨랐으니) 딱 두 번, 문병을 와준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친구로 당시 대학생이었으니 안지는 1년이나 2년되었을까? 사람의 색안경이라는 게 재밌는게, 단 한 친구가 오더라도 그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꽤 갈렸다. 내 엄마는 그 친구를 '날 이용할 것 같은 친구'라고 봤으며 허리수술로 몸이 불편한 나를 씻기고 밥을 날라주던 도우미아주머니는 그 친구가 유일하게 2번 방문한 친구라며 아주 좋은 친구라고 꼭 오래 함께 하라고 당부했다.
2번의 문병을 해준 친구. 그 프레임이 사실은 따뜻해보인다. 날 위해 두번이나 온 것 같은 느낌. 그런데 나는 가장 늦게 나랑 수다를 떨다가 제일 늦게 돌아간 그 친구가 가장 마음에 남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친구들과는 인연이 다해 지금은 안부도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지만 문병의 횟수보다는 한 번을 오더라도 그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문병을 두 번 온 친구는 경기도에 살던 다른 친구들이랑 다르게 서울에 사는 친구였고 물론 서울이든 가깝든 또 와준 것은 감사하지만, 조금 달랐다. 그 마음은 감사하지만 문병의 횟수로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하는 것을 재단하는 건 좀 섣부르기도하고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으로 우정이나 그 사람의 마음을 판단할 수 있을까?
10명이 넘는 친구들이 문병을 와줬던 그 시간들, 그리고 10년이 지나 그들중에 내 곁에 남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지금은 내 곁에 없다하더라도 그 시간들 속에 내 곁에 지내주고 힘들게 버스를 갈아타며 와준 친구들의 발걸음은 매우 감사히 생각한다. 거듭 거듭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는 다시 만나 밝게 인사하거나 웃는 일은 없겠지만, 친구라고 불리던 시간들은 분명히 내 머리에 존재한다. 문병을 한 번 오든, 두 번 오든 그건 이제 내 기억속에 존재하며, 실제 그 친구들은 그 기억을 잊었을 수도 있고 문병의 횟수도 까먹었을지도 모르지. 뭔가를 많이 해줬다고 그 우정이 견실한 것도 아니고 오래가는 것도 아니다. 뭔가를 덜 해줬다고해서 그 우정이 거짓도 아니고 일찍 끝나버리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람이어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고 우정도 끝날 수 있다. 그건 우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냥 시절우정이라고 본다. 우정보다 소중한 게 생기고, 지킬 게 생기고, 생활이 달라지고, 지역도 달라지고, 말투도, 옷차림도, 표정도, 추구하는 목표도 서로 놀랄만큼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자연히 남이 된다.
이제는 그런 게 조금 익숙해서 더는 의문스럽지 않다. 그저 그 시기에 나와 함께 해주어서, 너희에게 밥 한끼 사줄 생각없이 그저 너희가 온 것에 너무 들떴던 바보같은 나를 그 당시 보러 와준 그 마음만 또렷이 기억하며 추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