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카미긴에서
1.
"입수하기 전에 무슨 생각하세요?"
P가 내게 물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수조(P는 수영장, 특히 다이버들을 위한 깊은 수심의 수영장을 이렇게 불렀다)에서 다이빙할 때 부이(다이버들이 수면에서 대기하기 위해 띄워놓는 튜브 모양의 기구)를 잡고 입수하기 직전, 릴랙스를 위해 허용되는 시간은 다이빙의 전 과정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다른 다이버가 입수하는 것을 지켜보느라 부이에 매달려 있을 때도 좋고, FIM(줄을 잡고 천천히 하강하는 잠수 방식)을 위해 두 손으로 부이를 잡고 있을 때도 좋고, CWT(줄을 잡지 않고 피닝을 하면서 하강하는 잠수 방식)를 위해 한 손으로만 부이 아래쪽 줄을 잡고 있을 때도 좋았다. 나는 이 시간을 좀 넉넉히 잡는 편이었는데 수조 속에서 여러 명의 다이버가 부이에 매달려 각자 자신의 입수 타이밍을 기다릴 때면 마음이 급해지곤 했다. 릴랙스 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두 번이었다. 아무도 나를 채근하지 않는데도 입수타이밍이 점점 더 빨라지곤 했다.
"릴랙스 더 하셔도 돼요. 제가 2분 되었을 때 알려드릴게요."
첫 다이빙을 마치고 올라왔을 때 P는 이렇게 말했다. 수조가 아닌 바닷물에 몸을 맡기자니 물리적으로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거의 수영장 같은 잔잔한 바다'라고 P가 명명한 그날의 바다에서 나는 분투 중이었다. 릴랙스 하는 동안 스노클로 물이 들어오면 어떡하나, 랜야드(수심에서 레인과 다이버를 연결해 주는 고리)도 안 했는데 입수하는 순간 조류에 쓸려 레인 밖으로 벗어나면 어떡하나, 너무 긴장해서 입수한 다음 갑자기 BO(의식불명상태)가 오면 어떡하나. 하려고 작정하면 백가지 시름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랜야드 해야 하지 않냐고 P에게 묻기도 했다. P의 대답은 단호했다. '5미터에서는 아무도 랜야드 안 해요.' 그렇다. 실은 5미터였다. 수조에서 나는 17미터를 잠수할 수 있는 다이버였다. (물론 18미터에서 고막이 터져버렸지만) 하지만 바다 5미터는 달랐다. 그곳은 염소 냄새 가득한 수조가 아니었다. 인간동물들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인간동물만을 위한 놀이터가 아니었다. 그곳은 살아있는 물과 살아있는 바다 생물들의 삶터였다. 나는 이곳에서 이제와는 완전히 다른 다이버가 되어야 했다.
2.
두어 번의 웜업이 끝나고 P는 행(hang: 다이버가 수심에서 줄을 잡고 숨을 참는 것)을 제안했다. P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부이에 매달려 P의 행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솔직히 말해 나는 의아했다. '왜 행을 저렇게 부정확하고 불안정한 자세에서 하지?' 내가 알고 있는 행은 목표 수심으로 내려가서 줄을 두 손으로 잡고 발은 줄을 감거나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최대한 숨을 참는 행위였다. 숨을 참다가 다이빙 컴퓨터에서 알람이 울리면 다시 수면으로 상승한다. 때로는 부이에서 대기 중인 버디(프리다이빙은 반드시 버디 시스템_서로 파트너가 되어 안전을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진행된다)가 수심으로 내려와 어깨를 만져 신호를 주면 상승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든 나의 자세는 소위 올드맨 자세(어깨를 살짝 말고 고개를 숙여 저항을 줄이는 자세)였고, 목표는 숨을 오래 참는 것이었다. 하지만 P의 행은 달랐다. P는 약속했던 수심에서 하강을 멈춘 다음, 한 손으로 줄을 잡고 다른 한 손과 두 다리는 물속에 아무렇게나 부려두었다. 마치 거대한 물살이가 물속에서 제멋대로 흐느적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행은 처음 봐요."
의아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솔직히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러웠다. 온몸에 힘을 쫙 뺀 채 문자 그대로 물살에 몸을 맡긴 P가 부러웠다. 내가 지금껏 해왔던 행의 과정과 목표를 간단하게 설명하니 P는 깜짝 놀라며 여기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입수 전 릴랙스를 위해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것처럼 물속에서도 다만 이완하면 된다고 했다. (물살이 혹은 P의 흉내를 내기 위한) 첫 번째 시도에서 나는 긴장했다. 단 한 번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물속에서 한 손으로만 레인을 잡고 있기 어려웠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조금 더 나아져서 파랗고 작고 빠른 물살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 나는 눈을 감고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려고 했다. 그때였을 것이다. 이완과 집중이라는 것은 내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그때 알았을 것이다. 이완과 집중이라는 것은 그저 명상이 아니며 무엇인가를 내 몸과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종일관 파도는 내 몸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너에게 스며들어도 돼?'
'너는 나에게 자리를 내어줄 준비가 되었어?'
'내가 너와 함께 해도 좋겠니?'
3.
수영장에서 부이를 붙잡고 있을 때, 나는 스노클을 오가는 나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기만 하면 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면서 들숨과 날숨을 5대 5로 가져가면 되었다. 호흡이 안정되면 들숨과 날숨 사이, 숨을 참고 있는 시간을 점점 늘려가면 되었다. 그곳에도 물론 대화가 있었다. 나는 내 몸과 마음에게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하나인, 둘이 되기엔 너무 어려운 몸과 마음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이완이라는 이름이든, 명상이라는 이름이든 억지스러웠고 끝내 불화했다. 바다는 나에게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했다. 이전의 내 명상이 딱딱하고 형상적이며 그저 고요한 추상적 심연을 갈망하는 것이었다면 바다는 나에게 '함께' 할 것을 요구했다. 끈적거리고 형태를 알 수 없으며 변화와 움직임이 결코 멈추지 않는 새로운 삶터를 제안했다. 부이를 붙잡고 입수를 기다리는 나에게 바다는 끊임없이 내 몸으로 침윤하길 원했다. 내가 모든 구멍을 열어놓고 그를 받아주길 원했다. 내가 그에게 들어가길 원했으므로 그의 요구는 합당했다. 슈트를 입고 있었지만 너울 치는 파도가 내 몸과 자신 사이에 놓인 경계를 서서히 넘어서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지금껏 나는 그저 혼자 고요해지길 원했을 뿐이었으나 파도는, 바다는, 그곳의 수많은 바다 생물은 '함께' 가는 길을 제안했다. 바다에 누워 바라본 하늘이 살짝 윙크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입수하기 전에 무슨 생각하냐는 P의 질문에 나는 처음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들어가도 좋겠냐고 물어요." 영 틀린 답변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영 바다가 대답을 피할 수도 있는 있는 노릇이었다. P에게는 나의 달라진 답변을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나는 누군가 나에게 P가 했던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답할 생각이다.
"인사를 건네요. 오늘도 함께 하자고."
바다의 답변을 들을 때까지 나는 내 온몸의 촉수를 한껏 열어 둘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