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웨이 선생님께

-해러웨이 선언문을 읽고

by 정상순

선생님께서 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선 나이에 따른 경어가 엄격하게 지켜지는 편입니다. 호칭도 말랑말랑한 편은 아니죠. 그래서 실명이 아닌 별칭, 닉네임으로 서로를 호명하며 언어에게 잡아먹힌 경직하기 짝이 없는 사유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선생님께도 그런 닉네임을 하나 붙여드리면 좋을까요? ‘Not 여신 But 사이보그’ 는 너무 길고, ‘카옌의 애인’은 너무 카옌 중심적이고, ‘소중한 타자’는 그럴 듯 하지만 선생님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긴 만무하고, ‘존재론적 안무’는 호칭으로는 어쩐지 2프로 부족하고, ‘기쁨의 실천자’는 너무 활동가 냄새가 나고, ‘삶의 반짝임 혹은 광채 추구자’는 맥락을 모른 채 부르면 너무 세속적인 것만 같네요. 음..., 저는 선생님을 ‘타액과 바이러스를 횡적으로 주고받으며 친족을 넓혀가는 직조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너무 긴가요? 그렇다면 ‘엮기의 마술사’는 어떨지요?

오랜만에 비가 내립니다. 문득 궁금하네요. 약수암 오르는 길, 나무들은 이 비에 이파리를 다 떨궜을까요? 아, 약수암은 저희 집에서 3,5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는 암자입니다. 요즘 이곳으로 자주 산책을 다녀요. 일주일 전 이파리들은 상당히 분주해 보였습니다. 녹색은 적색과 갈색 때로는 노란색에게 자리를 내주며 부지런히 경계를 허무는 중이었고 녹색이 아닌 색들은 그 대가로 시간의 무게를 책임지기로 한 듯 보였습니다. 실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풍경이었어요. 집에, 마을에 더 많이 머물기로, 멀리 떠나 일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작정한 후 다시 눈에 들어온 광경이었습니다.

‘엮기의 마술사’는 –아, 제맘대로 벌써 이렇게 불러버리고 있군요-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저는 반년 전에 비해 매우 단조로운 일상을 꾸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누운 채로 행공-국선도의 호흡법입니다-을 합니다. 호흡의 시작은 앉거나 서는 동작이지만 일부러 몸을 채근하진 않습니다. 호흡을 하다가 서서히 몸이 깨어나면 동작을 좀 더 크고 적극적으로 합니다. 행공이 끝나면 따끈한 물에 차가운 물을 섞어 한 잔 마십니다. 아이들을 깨우거나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전에 조금 시간을 갖는 편이 좋습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그 시간을 참 좋아해요. 하지만 시간을 일부러 확보하려고 알람을 맞춰 놓거나 하진 않습니다. 잠을 충분히 깊게 자 주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무리 하지 않으려 해요.

반년 전에 비하면 단조롭고 조금은 낯선 리듬이지만, 좀 더 오래전으로 돌아가면 익숙한 일상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침대 문화는 상당히 보편적인 것이 되었고, 저도 침대 혹은 붙박이형 매트리스를 최근까지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제 몫의 침대를 중고마켓에 내놓았어요. 대신 요와 이불을 사용합니다. 요와 이불은 단잠을 자고 난 후 원래 크기의 삼분의 일 형태로 부피를 줄일 수 있는 침구류입니다. 이불을 개어 쌓은 후 그곳에 밥상 혹은 책상을 펴두는 것이 이곳의 오래된 생활 형태였습니다. 책상 혹은 밥상은 또한 사용이 끝나면 다시 접어 벽에 기대놓곤 하지요.

저는 오랫동안 이 나라의 가장 큰 도시에 살았습니다. 20년 전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산에 둘러싸인 산골마을로 내려왔어요. 귀농운동 1세대라는 것이 제 꼬리표중 하나입니다. 지하철 환승로를 따라 그저 천천히 걷고 싶었고, 음식물 쓰레기를 땅에 버리고 싶었습니다. 속도가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지만 실은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연극을 빚을 내지 않고 더 이상은 할 수 없다는 걸 눈치채버렸고 돈을 벌기로 작정하지 않으면 품위 있게 살 수 없는 곳이 도시의, 자본의 삶이라는 걸 알아버렸거든요. 처음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왜, 아무 것도 모를 때 참 용감하잖아요. 엮기의 마술사는 생물학과 페미니즘의 경계를 횡단할 때 어떤 용기가 필요하셨을까요?

구구절절 제 사연을 풀어 놓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엮기의 마술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구체성을 외면할 수도 없어 말이 길어졌습니다. 다시 제 일상 얘기로 돌아갈게요. 저는 요즘 20여 년 전의 일상과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처럼 자연과 더 자주, 더 많이 어울립니다. 그런데 그 비슷해 보이는 일상이 조금 아니 많이 달라요. ‘엮기의 마술사’말을 좀 빌린다면 “죽이지 말지어다.”와 “죽여도 되게 하지 말지어다.”의 차이랄까요. 아, 말해놓고 보니 어마무시한 차이네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은 후자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중입니다.

‘엮기의 마술사’가 쓰신 글들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눈으로도 읽고 소리 내어도 읽어 보았어요. 읽을 때마다 여러 문장이 마음으로 읽혔습니다. ‘함께 하는 삶’에 대해 반복해서 말씀하셨죠. 저 역시 그 삶, 함께, 더불어, 같이 사는 삶을 고민하다 20년 전 삶터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엮기의 마술사’의 글을 읽고 제 삶에서 무엇이 빠져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선택인 줄 알았던 나의 삶은 나 아닌 삶의 형태들에 대한 배제와 삭제에서 출발했다는 것, 위에서 아래로 조직되는 구조들에 복무하느라 앞뒤 좌우를 살피지 못했다는 점, 내가 설정한 더불어 사는 삶의 좌표는 구심력이 아니라 원심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 역시 잠정적이겠지만요.

궁금함을 참지 못해 우중산책에 나섰습니다. 녹색이 물러난 자리, 그 자리는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더군요. 녹색의 담대한 퇴장에 힘입어 온세상이 찬란하고 눈부셨습니다. ‘엮기의 마술사’가 데버라 버드 로즈의 입을 빌어 표현한 ‘삶의 반짝임’ 혹은 ‘광채’가 이 순간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광경을 당신과 내가 함께 봤다면 우리는 어쩜 당신이 그토록 고민해 온 ‘우리’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요.

많이 감사합니다. ‘엮기의 마술사’의 글을 읽고 많이 훌쩍였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지만 영 다른 길로 접어들진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함께 하는 삶, 이 납작해지지 않도록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겠습니다.

2020년 11월
이미 아이를 낳아버린 친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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