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주문자에게 드리는 편지

by 정상순

돌아보니 첫 편지네요. 그동안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길게는 십 년에서 짧게는 이 년 정도 제가 가꾸는 밭에서 자라난 고사리를 감사히 거둬주신 분들이었는데 말이에요. 여러분이 계신 곳 날씨는 어떤가요? 전엔 날씨 얘기는 수다 거리가 떨어졌을 때나 괜히 어색할 때 꺼내는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시골에 살고 보니, 농사를 짓고 보니, -농사라고 해 봐야 사백 평이 좀 못 되는 고사리밭이지만- 그리고 요즘처럼 변덕이 심한 날씨를 맞닥뜨리고 보니 날씨 얘기야 말로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제 새벽에도 여느 때처럼 밭에 올라갔어요. 예년 같았음 고사리를 끊고 나면 제법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텐데 여전히 발이 시려요. 허리가 아플 만큼 끊을 고사리도 올라오지 않고요. 10년 만에 처음으로 한 시간이 안되어 밭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나마 올라온 고사리는 얼어 있고 두 개를 너끈히 채웠던 고사리는 포대 반 절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고사리라면 정말 헷갈릴 것 같아요. 3월 말만 해도 평년기온을 웃도는 날씨였고 고사리만큼 당황스러운 꽃들이 너도나도 봉우리를 틔웠죠. 매화가 피고 지면 개나리가 피고 박태기 꽃이 피는가 하면 지는 사이 벚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찌할 줄 몰라 에라 지금 피고 보자, 하는 꽃나무들의 둘 곳 없는 심정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고사리도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빨리 올라왔지만 하루 건너 불어오는 강풍과 급격한 기온 하강에 한마디로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구구절절한 말씀을 드리고 있네요. 요약하자면, 올해는 구매자들께서 선주문해주신 주문량의 절반만을 배송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문 순서에 맞춰 주문을 채우고 조금 늦게 주문하신 분들께 양해를 구할까 하다가 각 주문량의 절반을 채워 주문하신 모든 분들께 나눔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라요.


잔소리를 시작한 김에 조금 더 하자면, 땅에 몸을 숙이는 삶을 살아가다 보니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고사리의 더딘 걸음과 기후위기는 결단코 무관하지 않다는 걸요. 엊그제 밭에 올라가 귀한 고사리를 끊고 있는데 아랫 다랑이 어머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요. "이제 그리 부지런히 올 필요 없어. 두 밤 더 자고 와. 그래야 고사리 올라 와." 땅에 더 깊이 허리를 숙이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는 그분들은 아시는 거죠. 변화가 오고 있다는 걸,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이미 감지되고 있다는 걸.


제 고사리를 주문하신 분들은 모두 도시에 살고 계신 분들입니다. 도시에서의 삶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계속된다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제가 살고 있는 농촌엔 희망이 없습니다. 종전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농촌이, 산골이, 자연이 환경오염의 완충제가 되어주리라 믿으신다면 그건 여러분이 드실 고사리를 가꾸던 농촌에, 산골에, 자연에 살고 있는 한 존재의 손을 놓으시는 거예요.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고 육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디,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도시에 살고 계신 여러분이 농촌의, 산골의,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라요.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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