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궐선거 이후 다시 도래한 망각의 시절
재작년의 일이다. 제주축협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제주지방검찰청에 고발당했다. 고발한 이들은 경마용 말이 경기 종료 72시간 만에 잔인하게 도축되는 장면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국제동물권리단체 페타( PETA)의 조사관이 10개월간 위장 전입하면서 찍은 영상이었다. 고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내 질문은 이랬다. '피고발인은 자신이 왜 고발당했는지 그 이유를 과연 알까.'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동물보호법이라는 법이 존재하는지를 몰랐을 수도 있고, 그(딴) 법이 왜 존재(해야)하는지 도통 몰랐을 수도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동물은 그런 존재였으니까.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존중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으니까. 동물은 자연의 동의어였고 무한해야 하는 자원이었으니까. 자원이 고갈된 자연은 도태되어 마땅하니까. 그게 자본주의의 순리니까.
지난 4월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때만 해도 선거 이후 지금과 같은 페미니즘에 대한 노골적인 백래시를 상상하지 못했다. 징후가 없진 않았다. 후보자나 유권자의 대다수가 재보궐선거의 원인을 잊고 있는 듯했다. 서울과 부산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도시와 그다음으로 큰 도시의 시장이 저지른 성폭력 사건으로 공석이 된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다. 결국 새로운 사람을 세우지 못했다. 정해진 결과였을 것이다. 새 사람을 세우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상상력을 환호하는 대신 차별적 언어와 행동으로 회귀했다. 왜 그랬을까. 선택지가 없었다는 말은 말자. 그런 말은, 선택지가 없다는 말은 살던 대로 살고 싶은 사람, 이제껏 살아온 삶이 문제 되지 않는 사람, 나와 다른 존재가 엄연히 존재하리라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의 변명이니까.
최근 한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 여자 친구에게 집단성폭행을 했다는 과시성 게시물이 올라왔다. 경계와 심판이 아닌 부러움과 궁금증으로 가득한 댓글이 이어졌다. 한국일보가 조사한 60권의 동화전집 중 여성 주인공은 단 네 명이다. 명징한 성별고정관념 속에서 여성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위기 대처 능력 또한 형편없는 존재로 다뤄진다. 미디어의 홍수에서 초등학생이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견고한 성별고정관념이다. N번방 성착취 사건이 한 나라를 뒤 흔든 것이 작년의 일이고, 미투운동을 통해 비로소 말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이 가시화된 것이 서너 해 전의 일이다. 이쯤 되면 총체적 망각 증상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그런 연구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가 늘 잊는 것은 잊을 만한 것이고 잊어도 되는 일이며 잊어도 내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망각이기 때문이다.
노예, 이방인과 함께 시민이 될 수 없었던 그리스 시대의 여성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다. 여성이 참정권을 손에 넣은 것은 20세기 초반의 일이고 전 세계 토지 소유자 중 85퍼센트를 차지하는 성별은 여전히 남성이다. 만인이 평등하다고 주장했던 미국 독립의 주체들은 백 년이 지나서야 흑인이라는 존재를 가까스로 인정했으며 20세기의 절반에 이르렀을 때 특정 민족은 그저 그 민족이라는 이유로 전체의 삼분의 이가 몰살당해야 했다.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 것은 밀레니엄으로 진입하기 불과 십 년 전의 일이고 차별금지법은 14년째 계류 중이다.
동물보호법 제10조 1항에 따르면 "모든 동물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되어서는 아니 되며, 도살 과정에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한다. 페타가 촬영한 폭력적 도축 영상은 같은 농장에서 자라난 말이 잔인하게 도축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뒷걸음질 치는 다른 말의 모습 또한 포착하고 있다. 도축업자에게 동물보호법은 원시의 눈으로도 읽어내기 쉽지 않은 법일 것이다. 제주축협은 그보다는 한 걸음이라도 더 법 가까이에 서서 법을 읽어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래로부터 법의 해석은 너무나 자유로운 행위이기에 8조 원의 이익을 내는 마사회가 은퇴한 말의 후생과 복지 대신 도축으로 응답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것도 없다. 여성이, 장애인이, 성소수자가, 이주민이 살만한 삶을 사는데 별 관심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라는 존재는 비인간 동물의 생로병사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부재지시대상으로 살아온 수많은 소수자가 있다. 당신의 법은 어떤 대상을 망각해도 좋다고 해석하고 있는가. 동료의 잔혹한 죽음 앞에 뒷걸음질 치던 그에게 선별적 공감이 아닌 다른 응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