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언니에게 배운다

-단순해지면 나눌 수 있다

by 정상순

오십대로 들어서면서 인생의 목표는 확실해졌다.


단순하게 사는 것.


작년엔 가구를 줄이고 책을 줄이고 옷가지를 줄였다. 올해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중이다. 강의를 하거나 듣는 일, 책 읽는 일, 글 쓰는 일 그리고 sns 들여다보는 일을 줄여나가고 있다. 제일 안 되는 게 sns 들여다보는 시간 줄이기인데 이것 또한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 너무 채근하지는 않으려 한다. 세이브된 시간은 밭일을 하고, 마당 풀을 뽑고, 오줌 거름을 뿌리고, 새순을 따고, 햇살을 느끼고, 바람을 가르고, 산책을 하는데 쓸 생각이다.


3월부터 매주 한 번씩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 공양간에서 밥 모심을 한다.(이 학교는 흔히 식당/주방이라 부르는 곳을 공양간으로, 취사/식사 준비를 뜻하는 일을 밥 모심이라 칭한다) 공양간의 퍼스트인 OO언니는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그 모심을 하는 존재다. 들로 산으로 몸을 부리며 취를 뜯고 고사리를 끊고 냉이를 캐고 미나리를 뜯어 일일이 손질한,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그 먹거리로 50명의 끼니를 살핀다. 공양간의 세컨드인 ++샘은 밥 모심을 학교 배움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하고자 공양간 소임을 자청했다. 공양간의 서드인(호시탐탐 세컨드 자리를 노리는) 나는, 퍼스트의 발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그저 돌봄의 만만치 않은 무게를 나눠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밥 모심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우리가 요즘 필수 노동이라 부르기 시작한-돌봄의 행위를 능가할 무엇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나 역시 돌봄의 한 영역인 가사노동에서 누구보다 벗어나고 싶었다.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노동 그러나 상응할 대가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는 가사노동의 부당함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배타적이며 성별화 되어 있는 가사노동은 찬성할 수 없다. 가사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동시에 어머니의 손맛이 추앙되는 이율배반은 지긋지긋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의 회의와 탄식의 원인이 가사노동 혹은 돌봄 행위의 본질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사노동이 남성이 아닌 여성만의 일이 되는 이유, 지배계급 아닌 피지배계급의 노동으로 인식되는 이유, 공적인 일이 아닌 사적인 일로 취급되는 이유, 전체가 아닌 개인에게 몰빵 되는 이유를 먼저 살펴야 한다. 아무도 OO언니처럼 일할 수 없다. 아무도 OO언니만큼 잘할 수 없다. 돌봄의 행위가 한 사람에게 몰빵 되면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잘하는 사람을 못하게 하는 데 해결의 열쇠가 있지 않다. 가능한 방법은 그저 그 일을 나눠 갖는 일뿐이다.


온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존재에게 배우는 것은 정말 많다. OO언니는 쌀 한 톨, 오이 끄트머리 한 조각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동시에 공양간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온몸으로 환대한다. 그러면서도 곳간을 비워내고 나눔 하는 일의 재미를 알려준다. OO언니와 공양간에서 지내는 시간은 나누는 삶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을 배우는 시간이다. 책 아닌 땅에서 찾은 온기를 나누는 일만이 우리를 함께 살리는 일임을 배우는 시간이다. 내일은 나도 더 오래 밭에, 흙에 머물 생각이다. 조금 더 단순하게 살아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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