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발은 지시대상이다

by 정상순


큰딸 학교 근처에 살다 보니 가끔 큰딸 친구들이 주말을 함께 보내러 온다. 이번 주말이 그날이라기에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봤다. 나는 집만 빌려주는 엄마다. 먹거리는 손님들이 알아서 해결한다. 괜찮다고, 알아서 해 먹을 거라고 하는데도 떡볶이 떡 같은 거 사다 놔줄까, 하고 괜히 물었다. 식빵 한 덩어리랑 비건 브라우니 한 판 구워놔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때 딸이 방으로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닭발 해 먹기로 했어. 닭발.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는 사실 이상한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피망 채소, 시금치 채소, 양파 채소라고 해야 균형이 맞는다. 고기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말이 지시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언어다. 부재지시대상의 현현이다. 닭 사체, 소 사체, 돼지 사체처럼 지시대상이 명백한 언어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니까 고기와 사체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표백하는 것, 그 부단한 과정, 이것이 어쩜 인류의 역사였는지도 모르겠다.


해묵은 논쟁(그러나 정말 해묵은 것일까)을 다시 지피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그저 닭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큰딸이 닭발이라고, 닭발을 해 먹기로 했다고 말한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딸의 입에서 단일한 모음과 다종의 자음이 합을 이룬 결과 내뱉어진 '닭발'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어쩐지 명백한 지시대상을 확인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닭날개도 있고 닭가슴살도 있다. 닭발만큼 명백한 대상을 지시하는 말이다. 그러나 어째서 달랐을까. 닭발은 지시대상인데 닭날개와 닭가슴살은 왜 부재지시대상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을까.


딸이 닭발을 해 먹기로 했어,라고 이야기 한 순간 나는 확실히 닭의 발을 상상했다. 그리고 딸을 포함해서 네 명이 닭발을 먹을 것임을 연상했다. 한 사람당 닭발을 두 개씩만 먹어도 네 명의 닭이 도살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어렵지 않게 이어졌다. 닭발의 주인공들은 더욱 확실히 가시화되었다. 치킨 한 마리를 넷이 나눠서 먹는다고 했대도 비건인 나는 닭 사체를 치킨과 연결시켰겠지만 이 정도의 정동은 아니었다. 20대 초반 고대 근처 이모집인지 고모집에서 닭발을 먹어본 일이 있다. 주방과 홀 사이 오봉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닭발을 본 일이 있다.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나는 닭발을, 그 발의 주인공을 지시대상으로 여기면서도 그 발을 입에 넣었다.


육류를 요리하거나 우유, 치즈 등의 유제품을 미리 사놓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애들에게 이야기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마도 그 연장선상이었을 것이다. 딸은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랑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닭발을 요리해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수업이 있어 학교로 올라가니 딸이 나를 부른다. 딸은 말한다. 엄마, 애들하고 얘기해 봤는데, 우리 집 말고 **집에서 놀기로 했어. 거기서 해 먹기로 했어.


모두가 애를 썼다. 실은 딸이 제일 애썼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면 '플라스틱, 비닐 든 제품 너무 많이 사지 마라' '다 놀고 돌아갈 땐 분리수거해라' 등등 집을 사용하게 해 주는 대신 지침이 있는 엄마다. 친구들한테 그런 말 하는 게 싫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했을 텐데, 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애들 생각은 좀 다를 수 있다면서 크게 비중을 두는 것 같진 않았다. 그랬던 딸도 한 가지는 양보하지 않았다. 언제든 놀러 와도 좋은데 침낭을 가져오면 좋겠다고 당부한 적이 있다. 우리 집에 다 맡겨놔도 좋으니 그랬으면 한다고. 이 말에는 어쩐지 대답이 흔쾌하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그 말하는 게 힘드냐고 물으니, 딸은 이렇게 대답했고 나는 즉각 네 말이 맞다고 엄마가 잘못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침낭보다는 이불을 애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침낭 가져오라고 하고 싶지 않아."


나는 우리 집에서 닭발 조리하는 장면을 보지 않을 수 있으니 되었고, 딸과 친구들은 원하는 닭발을 먹을 수 있으니 되었다. 딸은 이 과정을 위해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입장에 잠시 섰다가 또 친구들과 어울릴 지점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실은 딸이 기어코 (놀집을 바꿔가면서까지) 닭발을 먹기로 했다는 사실보다 그 얘기를 애들에게 꺼내고 조율하면서 힘들진 않았을지 그게 더 걱정이 됐다. 어쩌면 아무 것도 되지 않았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쉽지 않은 일을 쉽지 않게 해 나가기로 했다. 30년 전 닭발을 입에 넣으며 느꼈던 석연치 않은 그 느낌, 그게 어쩜 해결의 실마리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밤새 월간 정상순 6월호 <나는 동물이다_당신도 그러하다> 오프닝 슬라이드를 만든 엄마는 딸과, 육식이 중심인 세상과 쉽지 않게 또 살아보리라 해묵은 약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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