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마다가스카르로 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 있다. 아름다운 자연, 풍부한 자원이 있는 곳이었고, 우리나라에서 그곳으로 이민을 결심한 사람들에겐 프랑스 본토 유학/이민 전에 전초기지로 매력적인 땅이었던 모양이다. 그 아름다운 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 탓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구온난화 탓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굶어 죽어가고 있는 존재들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절대적 소수에게 이익을 남긴 개발과 성장 탓이다. 만에 하나 내가 마다가스카르로 이민을 갔다고 해도 지금의 기근이 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민자로서 나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 마다가스카르 남부의 농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테니까.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선 마을길 공사가 한창이다. 흙길이었던 땅에 시멘트가 부어져 단단하게 굳어가고 있다. 이 길을 포장하게 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걸 꺼내면 얘기가 옆으로 새니까 안 하련다. 다만 그 길에서 주춤거리는 존재에 대한 얘기만 하고 싶다. 누구냐면 뭉치다. 길이 포장되던 첫날, 산책에 나선 뭉치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포장되고, 턱이 세워지고, 나무와 분리되는 그 길이, 냄새 맡고, 영역 표시하고, 오줌을 누고, 똥을 누어야 하는 뭉치에겐 낯설기로 치자면 엄마를 떠나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의 낯 섬만큼이나 묵직했던 모양이다. 뭉치의 허둥거림은 시멘트 포장 아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당황스러움의 대변이었을 거다. 그래도 이 일이 내일은 아니다. 나는 흙길보다 눈부신 시멘트 길에 선글라스를 쓰고 다닐 수 있는 존재고, 안전한 배변 공간을 찾아 헤맬 필요 없는 인간 동물이니까.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죽어간다. 미국은 강경대응을 선포했다고 한다. 마다가스카르 남부 농민들의 아사가 -아니, 21세기에 굶어 죽는다니- 그들 탓이 아니듯, 아프간 민간인들의 죽음 역시 그들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부동항을 차지하려 했던 러시아와 영국 탓인가. 냉전시기의 소련과 미국 탓인가. 911 때문인가. 911을 응징하려던 미국이 문젠가. 그렇다. 그렇다. 모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프간에 대테러 전쟁 지원차 군대를 보내고 재건을 목적으로 한 재건팀을 보낸 국가로서 책임을 지자는 말은, 힘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지속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미라클 하게 한국에 부역한 아프간 민간인을 구출하는 미라클 작전을 펼칠 수는 있으나 그 책임은 오히려 여기서 끝, 이라는 경계선을 선명하게 하는 데 충성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가 난민 협정을 체결했으며 난민법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은 더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 법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시행하도록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권리를 제한하고 의무를 강제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가치와 윤리에 걸맞은 행정을 나라에게 요구하기 위해서도 법은 존재한다. 공감대 형성을 이유로 삼지 말라. 난민을 모른 척하는 것이 윤리적 가치가 아니라는데 뜻을 모았다면 (그것이 비록 제스처였을지라도) 그래서 협정을 체결하고 법을 세웠다면 공감대 형성은 최우선의 과제가 아니다. 나중에 라는 말을 또 듣게 하지 말라. 우리 모두 마다가스카르의 기근과 아프가니스탄의 황폐함에 책임이 있다. 그러니 더 많은 존재들을 함께 살만한 세상으로 이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