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으로는 충분치 않다

by 정상순

며칠 전, 가까운 마을에 멜론 공장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라고 했다. 비닐하우스도, 유리 온실도 아닌, 햇빛과 물과 공기를 모두 테크놀로지로 구현하는 공장. 멜론 공장 이야기가 나오자, 요즘은 벼도 아파트에서 재배할 수 있다는, 논과 밭이 아니라도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며 도시 벼 이야기를 하는 이도 있었다. 땅과 흙과 햇빛과 물과 공기 없이 혹은 그것들을 인공적으로 조절하면서 멜론을 키우고 벼를 키우는 상황에 대한 놀라움이 오고 갔다. 그렇다. 어떤 놀라움이 있었다. 인공적으로 농산물을 키울 수 있는 과학 농법에 대한 부러움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키워져도 되는 걸까, 라는 우려와 경이가 오가는 자리였다.


멜론 공장과 도시 벼 얘기를 듣고 있자니 떠오르는 존재들이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공장에서 태어나고 키워진 공장식 축산의, 먹기 위해 존재하는 삶들이었다. 닭과 돼지와 소들이었다. 먹기 위해 공장에서 길러지는 닭과 돼지와 소와 달리, 먹기 위해 공장에서 재배되는 멜론은 이목을 끌었다. 아마도 논과 밭과 산과 들을 눈뜨면 마주해야 하는 이들의 삶의 궤적과 그 '무심하지 않음'은 맞닿아 있을 것이다. 도시의 빌딩 숲 속에 사는 이들에게 멜론이 공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어쩌면 조금도 놀라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호박 샐러드는 알지만 단호박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이미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아이들에게 멜론뿐만 아니라 단호박도 공장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들 놀라울 게 무엇일까. 내가 어렸을 땐 "요즘 아이들은 쌀이 나무에서, 쌀나무에서 나는 줄 알아. 벼가 아니라." 이런 우스개인지 혀를 차는 소리인지 모를 얘기들을 듣고 살았다. 그래도 쌀이 나무에서, 그러니까 공장이 아니라 땅에서 자라는 무엇이라 여기고 자랐다.


멜론 공장에 대한 놀라움이 돼지 공장, 닭 공장, 소 공장, 계란 공장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닭은 흙을 쪼고, 벌레를 찾는 존재이며, 돼지는 진흙 목욕을 즐기면서 체온 조절을 하는 생명이고, 소는 사료가 아닌 풀을 뜯는 비인간 동물이다. 그러나 땅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흙을 쪼고, 진흙 목욕을 하며, 풀을 뜯는 닭, 돼지, 소를 실제로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닭과 돼지와 소를 만날 수 있는 가장 편리하고도 쉬운 방법은, 그렇다. 마트의 식육 코너에서 '고기'를 마주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닭과 돼지와 소가 아니다. 그저 부재 지시 대상인, 당신들의 입 속으로 감칠맛을 내며 감겨 들어갈 '고기'다.


며칠 전, 남녀평등징집제를 주장하는 한 대선 후보의 정책 토론을 시청했다. 유약한 진보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그는 열강에 둘러싸인 우리의 상황을 직시하고 '힘'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들 또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목청을 돋웠다. 후보와 패널들 간에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사이 내 질문은 단 하나였다. 징집, 그러니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일에 '평등'이라는 감각을 왜, 지금, 이런 방식으로 투사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일찌기 시(국) 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성별이었기에 수행할 의무 또한 없던 존재들에게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의무를 수행할 권리를 선사하겠다는 건가. 그것보다 더 구린 건, 평화에 대한 해당 후보의 감각이다. 군축이라는 단어에 코웃음 치고, 평화는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담보될 수 있음을 확신하는 그의 발언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야당 후보를 청와대에 불러 해물탕에 소주 한 잔 곁들이며 대화하겠다는 성별적이고, 인간(만) 중심적이고, 아재 냄새 진동하는 서민 코스프레만큼이나 형편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에게 요구되는 평등의 감각은 무엇일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물건을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시스템을 요구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생산 과정에 투여된 노동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고자 하는 감각이 평등의 감각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공정한 대가가 수출을 통해서 생산지와 유리된 더 큰 시장에서만 가능하다면 우리의 소비는 온전히 공정하고 평등한 것일까. 동물이 공장에서 생산된 지 오래니 식물이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건 일도 아니라는 감각이 평등의 감각이 아니듯, 남성이 군대에 가니까 여성도 군대 가라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심리는 평등의 감각일 수 없다. 병역 혹은 군대 문제에서 평등의 감각이 발휘되어야 하는 공간은 전 국민의 군사화라는 캐치프래이즈가 아니다. 육군, 해군, 공군 내에서 공히 발생한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성평등 한 감각이 발휘되어야 하며, 고위층, 고소득자층의 병역 기피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계층을 뛰어넘는 평등한 사고가 요구되어야 한다.


같이 군대에 가는 것이 아닌 군대가 필요 없는 전쟁 없는 사회에 대한 전망과 상상력만이 평등에 머물지 않는 해방적 전환, 즉 평화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멜론에 대한 기이하고 생경함을 잊지 않고 간직해야만 공장에서 태어나 도살장에서 삶을 마감하는 비인간 동물을 기억할 수 있다. 같아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정한 이들에게만 편안한 삶이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을 거부하고 맞설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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