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 4월 오프 세미나 '씩'의 토론문에 대한 응답
코타루를 아시나요
코타루는 1인 가구예요. 작은 아파트, 원룸형 빌라에 살고 있지요. 만화가, 호스티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행색 만으로 이웃의 지탄을 받는 중년 남성 등과 함께 살아요. 한 번도 정확하게 언급된 적은 없지만 코타루는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방치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이후에 분리 조치가 취해져 보호시설에서 생활한 것 같고요.
코타루는 어머니의 보험금으로 삶을 유지합니다. 코타루는 자신의 생활비의 출처를 알지 못해요. 짐작은 하지만 엄마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는지도요. <코타루는 1인가구>의 작가가 코타루 삶의 기반을 어머니의 보험금으로 설정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보험금은 기본 소득에 대한 은유로 여겨졌어요. 아마 코타루에게 저 보험금마저 없었다면 코타루 이웃들의 선의 역시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서요.
어느 날, 코타루의 이웃인 만화가 카리노의 집에 옛 여자 친구가 찾아옵니다. 엑스여친이 물어요. 너 왜 코타루를 도와주냐고. 왜냐면 유치원에 다니는 코타루는 규칙 상 혼자 등하원을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카리노는 코타로의 등원을 비롯해서 대중탕 같이 가기, 장보기 등을 함께 합니다. 그 ‘함께’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워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볼까요.
‘결국 네가 책임지지도 못할 걸 왜 코타루의 삶에 끼어드느냐’라는 엑스여친의 질문에 카리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코타루의 지금을 기억하려는 거야.”
자신의 유년시절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보다는 그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양육자와 주변 어른들 기억에 남아 있는 법이잖아요. 카리노의 선언은 가족과 책임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서 어쩌면 코타루는 이런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아주 큰 집을 지을 것이라네. 우리 모두가 함께 살 집을.” (코타루는 토노사마맨이라는 애니메이션 매니아고 코타루의 말투는 토노사마맨을 따라 하는 것이에요)
다시, 4월입니다
4월입니다. 네. 언젠가부터'세월'의 이음동의어가 되어버린 그 4월이요. 월간 정상순 4월호도 4월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요양보호사인 이주여성 201호와 참사 유가족 202호, 쿠팡 노동자 203호가 함께 살고 있는 20년 된 임대아파트 이야기입니다. 눈치채셨군요. 그렇습니다. 월간정상순 4월호 <4월을 살고 있습니다>는 코타루의 원룸 빌라에 대한 헌사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우리는 여전히 지옥에 살고 있습니다. 요양보호사인 201호는 코로나 양성 확진이 될 경우 모든 책임을 진다, 라는 각서에 사인해야 하는 지옥에 살고 있어요. 몸으로 ‘정직하게’ 먹고살라는, 그러니 유흥종사자 말고 ‘몸’으로 먹고사는 ‘쿠팡 노동자’가 되길 앙망하는 야만의 세월 속에 203호가 있습니다. 지겹다고, 그만 좀 하라고, 할 만큼 하지 않았냐며 기억의 책임조차 지지 않으려는 폭력의 시대의 정중앙에 참사 유가족인 202호가 있습니다.
“뭘 그만하냐고요! 멀쩡하게 일하던 사람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죽고, 지하철 점검하다 선로에 끼어서 죽고, 택배 배달하다가 덤프트럭에 치어서 죽고, 실습 가서 전복 따다 물에 빠져 죽고, 하우스에서 일하다 얼어 죽는데 뭘 그만해요? 저렇게라도 악을 쓰고 덤벼야 사람 취급을 해주는데 뭘 그만해요? 뭘 그만해!” (월간정상순 4월호, 201호의 대사)
‘복원력을 잃은 5천 톤급 유람선의 침몰’은 은유가 아닌 실제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중 그 누구도 그 배에서 내리지 못했지요. 여전히 가속과 경쟁과 그로 인한 이윤의 축적을 목표로 삼는 먹고사니즘이라는 삶의 방식에서 아무도 내리지 못했지요.
겨울을 지나 봄을 함께 맞이하고 있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성폭력으로 일상을 훼손당한 18세 여성은 이 눈부신 봄날을 거닐며 ‘‘삶의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말해요. 그 여성의 봄을 빼앗은 가해자는 먹고살기 위해 가해자 인식개선 교육을 받을 짬을 낼 수 없다며 버팁니다. 가해자의 미래를 염려하면서 피해자의 오늘을 불안하게 하는 지옥에, 확실히 우리 모두는 여전히 지옥에 살고 있습니다.
서툰 사람들이 사는 법
재작년 여름에 쓰러져 입원을 하고, 작년 4월엔 아픈 몸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나의 깊고 아픈 밤’을 올렸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나를 풀가동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요. 상상할 수 없으니 두렵고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암투병 중인 시아버님과 1년 정도 함께 살았어요. 저는 그때 아버님을 내 삶에 달라붙은 따개비 정도로 여겼습니다. 나의 돌봄 없이는 운신할 수 없는 그와 그의 생사여탈권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나의 대결은 결코 평화롭지 못했고요. 한데 따개비와 같았던 그가 실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돌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를 떠나보내고 여러 해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반려견이었던 해리 (저는 이 반려견을 무척이나 미워해서 해리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를 돌본 것은 물론이고, 당시 5살 7살이었던 제 아이들의 동무가 되어주었다는 걸, 우리 가족에게 안정감과 온기를 주었다는 걸 여러 번의 봄을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내 인생 책임져야지, 남한테 손 안 벌리고 살아야지, 그러면서 남도 안 보고, 나도 안 돌보고, 그저 물량 수치 채울 생각에 전전긍긍하면서 그렇게 살았어. 여기서까지 밀리면 정말 갈 데가 없으니까. 근데 요 몇 달간 날 살린 건, 나도 누군가를 돌보면서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 우리 서로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돼 주면서 돌보면서 지냈잖아. 우리 모두 서툰데 왜 당신이 가.” (월간정상순 4월호, 203호의 대사)
저는 어제 처음으로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습니다. 햇수로 4년째 폭력 피해자 지원을 해오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어요. 한데 엊그제 ‘이제 그만하고 싶다’며 지쳐 쓰러져 있는 저를 처음으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상담받고 또 피해자 만나고 피해자가 멈추기 전까진 멈추지 않을 힘을 ‘자가 발생’시키지 않고 남에게 빌려오려 합니다.
코타루 옆에는 코타루를 기억하려는 사람이 있어요. 코타루는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한 큰 집을 소망하지요. 기억한다는 것은 함께 감당하고 책임진다는 것이잖아요. 책임(responsibility) 진다는 것은 어느 페미니스트의 말처럼 응답(response)하는 능력(ability)이고요.
눈부셔 아린 4월 동안 아픈 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더 잘 배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