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없다

-가문 밭을 바라보며

by 정상순


물이 없다.


온 천지에 물이 없다. 풀을 뽑을 때마다 흙먼지가 날린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도 한낮 작물들은 주저앉기 일쑤다. 산책길, 반려견 뭉치의 갈증을 해소해 주었던 계곡물이 일주일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비가 오지 않는데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지니 얼어붙는 작물이 속출한다. 고사리가 그렇다. 냉해 피해를 호소하는 가구가 줄을 잇는다. 나 역시 지난주까지 새벽 고사리밭에 오르면 발이 언 채 내려오곤 했다.


사실 물은 틀면 나온다. 내가 사는 마을의 수원은 관정을 이용한 지하수가 대부분이다. 지하수를 사용하기 위해선 전기가 든다. 전기가 물이다. 설거지를 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들통을 싱크대 곁에 두었다. 세제를 사용하지 않은 설거지 물은 들통에 담아 밭으로 가져간다. 고사리 삶은 물도 식혀서 밭으로 가져간다. 새로 옮겨 심은 꽃모종이며, 소채류의 갈증을 식히기에 부족하지 않은 양이다.


쌀 1㎏을 재배하기 위해선 3400ℓ의 물이, 사과 1개를 키우기 위해선 210ℓ물이 필요하다. 그렇다. 소위 물발자국 얘기다. 그렇다면 소와 돼지 닭을 순전히 먹기 위해서 키우는데 필요한 물발자국은 어떨까. 소의 사체 1㎏을 먹기 위해 만들어내는데, 물 1만 5500ℓ가 필요하며, 돼지 사체는 4800ℓ, 닭의 사체는 3900ℓ의 물이 필요하다. 소의 사체 1㎏에 1.8ℓ 페트병 8611개의 물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소 한 마리가 아니라 소의 사체 1kg이다. 이쯤 되면 물이, 비인간 동물의 사체인 것이다.


비는 오지 않고 바람은 세다. 이 바람은 말라 붙은 땅을 자꾸만 쓸어내어 무언가를 심고 거둘 수 없는 땅을 만들어낸다. 늘 가뭄은 기근의 원인이었고 굶주림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구조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조가 바뀌길 바라며 나의 오늘 하루, 나의 단 하루의 좋은 삶을 놓아버리는 삶은 괜찮을까. 몇 번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이 문장을 가뭄에 신음하는 지구 한 복판에서 비로소 소리 내어 읽는다.


"대안은 무엇인가?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비전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이 새로운 비전을 '자급적 관점'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나는 이보다 더 새로운 세계를 잘 개념화하는 표현을 알지 못한다. 이 '새로운 세계'는 빅뱅이나 대혁명과 함께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여전히 낡은 세계에 살면서도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씨앗을 심기 시작할 때 올 것이다."


-마리아 미즈/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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