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조금 나아질 거야
순아야. 상순 이모야. 순아에게,라고 쓰고 보니 순아, 라는 이름이 지닌 단정하고도 따뜻한 느낌이 후욱하고 올라오는구나. 순아, 순아, 순아. 그렇게 계속 순아 이름을 부르고 싶다.
졸업 선물로 뭘 준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잘 연결해 보면 좋겠다 싶었어. 난 걷는 걸 좋아하고 가끔은 좀 뛰어줘야 하는데 정말 머리가 복잡할 땐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길들을 오래도록 걷곤 해. 이어폰을 꽂고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걷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싫어지고 사는 게 뭔가 싶을 때면 그저 바람소리를 온몸으로 받아 안으며 걷을 때가 많아. 이런저런 길을 걷다 보니 길들이 위로가 되는 모양새도 각양각색이어서 그걸 기록해 보면 어떨까, 내가 힘들었던 꼭 그만큼 힘든 이들에게도 위로가 되는 길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단다.
이 기록은 순전히 내 취향의 결과야. 그래도 용기를 내서 순아에게 길을 권해 보려 해. 나보다 앞서 길을 걸었을 수많은 존재들 덕분에 길이 생겼고, 내가 길 위에 설 수 있었고, 또 누군가가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는 감각, 아마도 이건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는 일은 아닐까 싶어.
내가 어떨 때 길을 걷는지, 어떤 위로를 받는지 적어볼게. 사진 몇 장과 함께. 만약 순아가 산내를 떠나 다른 곳에 있다고 해도, 길을 걸으며 느꼈던 감각을 떠올리는 것으로 힘이 되면 좋겠다. 그러려면 일단 걸어봐야겠지. 자, 이제 신발끈을 조금 당겨 묶고 출발해 볼까.
완만하지만 서두르지 않아야 할 길, '약수암 오르는 길'
처음 산내에 내려왔을 때, 귀농학교 사람들이랑 이 길을 여러 번 올랐어. 그땐 큰길 말고 주로 샛길로 다녔고. 꽃버섯이 흐드러질 때면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곤 했지. 순아 엄마가 약수암 길에서 따다 준 꽃버섯을 여러 번 얻어먹었는데, 난 엄마가 건네준 꽃버섯을 볼 때마다 어쩜 손끝이 이리 단정할까, 생각했단다. 약수암 길은 내가 좋아했던 언니랑, 세상과 불화한 만큼 진실했던 형이 고된 생을 마치고 함께 누워있는 곳이기도 해. 약수암 길을 오랜만에 다시 찾게 된 건 몸이 나빠지면서부터 였어. 무조건 걸으라는 주치의의 말씀을 받자와 다시 그 길을 걸었지. 뭐든 목표가 정해지면 속도를 내야 하는 성격이라 천천히 걷는 법을 알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단다. 앞만 보고 전진하던 나에게 멈춰 서서 둘러보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운 길이 바로 약수암 길이었어. 아마 작년 초겨울이었을 거야. 트랜스젠더에 대한 도를 넘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했던 그때, 연이은 부고에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었지. 이럴 땐 난 일부러 몸을 좀 괴롭히는 편이야. 그날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오르막을 걷던 참이었어. 근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허리를 밀어주는 느낌이 드는 거야. 물론 아무도 없었지. 사위는 고요했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등과 허리 사이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감싸듯 밀어주던 그 느낌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였고,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라는 격려였어. 아무도 없는 길이었지만 너무나 충만한 순간이었어. 근데 둘러보니 쌓인 눈 위로 내 발자국 말고도 이미 이 길을 오간 수많은 발자국들이 있더구나. 그때 알았어. 혼자가 아니구나. 아직 같이 손잡을 이들이 너무 많구나.
순아는 어떨 때 약수암 길을 걷니? 그리고 걸을 땐 어떤 생각을 해? 난 그저 걸으려고 해. 특히 대본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복잡할 땐 그저 걷는 것, 그것만으로도 실마리가 잡힐 때가 많더구나. 순아도 알다시피 약수암 오르는 길은 사계절이 다 참 곱지. 여름엔 울창한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고맙고, 가을엔 제 빛깔을 바꿔가며 숲을 비옥하게 하는 나무들이 고맙고, 봄엔 완두콩 빛을 닮은 초록이라는, '연두'의 말풀이를 곧이곧대로 떠올리게 하는 새싹들 때문에 고마운 길. 졸업 후 순아가 이 길을 다시 찾을 즈음엔 '연두' 빛깔들이 순아를 환대해 주겠지. 아, 우중산책 코스로 약수암길은 어떨까. 한 번 가랑비를 맞으며 걸은 적이 있어. 싱싱하고 생생한 것들이 훅 올라오는 기분, 순아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아래 사진은 한여름 약수암 길이야. 걷다가 잠시 멈춰 선 그 순간을 순아와 나누며 약수암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할게.
숲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가 들리니? '매동까지 걷는 둘레길'
순아에겐 익숙한 길이지? 새해 첫날에 서진암까지 일출을 보러 갔다고 들었어. 학교에서 서진암을 가려면 이 길을 지나야 하지. 약수암까지 걷기엔 시간이 조금 빠듯할 때 여기를 걸어. 사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고 진짜 속셈은 딴 데 있어. 숲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가 듣고 싶을 때, 고라니가 다닌다는 좁은 마을 길을 지나 둘레길로 접어들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이 길을 걷는 즐거움은 남달라. 숲 한복판을 지나는 느낌도 특별해. 해질 무렵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행운이야. 바람 속에 가만히 서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돼. 순아는 오르막을 오를 때 발을 어떻게 부리니? 난 예전엔 보폭을 크게 해서 바위와 바위 사이를 성큼성큼 걷곤 했어. 산에 다닐 때도 치고 올라가길 즐겼지. 보폭을 넓게 하지 않아도, 멀리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건 한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단다. 친구는 산을 오르는 게 서툰 이였어. 그러면서도 자신이 남에게 폐가 될까 봐 늘 살피는 사람이었지. 그때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 말했어. "멀리 보지 않아도 돼. 앞사람 뒤꿈치만 보면서 가. 빨리 가지 않아도 돼. 보폭을 좁게 해서 조금씩 가." 그때 이 말이 내 입에서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나도 신기해.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거든. 근데 그 친구가 애쓰는 모습을 보니, 힘들어하면서도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어. 나, 그 친구를 정말 좋아했어. 가끔 배움이라는 건 그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것 같아. 누군가의 진심이 온몸으로 느껴질 때, 그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를 때 어쩌면 그때가 배움을 내 것으로 가져갈 가장 적당한 순간인 것도 같아.
길 중턱에 이 나무 기억하지. 고목을 중심으로 서어나무 군락지가 만들어졌다고 들었어. 삼백 년을 넘게 살았다는 고목은 어느 때부턴가 앓기 시작했는데 어린 나무들에게 생명을 지피고 나서 점점 말라갔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아. 사실이 아니라 해도 좋아. 너무 아파서 멋진 이야기니까. 햇빛이 고목에 부서지기 시작할 즈음 나무 앞에 서면 고목의 리즈 시절을 확인할 수 있단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그때와 범접하기 어려운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 거야. 어쩌면 고목의 리즈 시절은 지금 인지도 모르지.
이 길을 걷게 되면 우리 집에 들러서 차 한잔 달라고 질척거리기다.
그냥 지나가기 없기다. 꼭 그러기다.
고리봉 카페를 아시나요
이제 조금 멀리 떠나볼까. 멀리라고 해봤자야. 우리 마을에서 한 번만 휘 둘러보면 보이는 봉우리들이니까. 가을엔 정령치 순환버스를 이용해 봤으면 해. 뱀사골, 덕동을 지나 정령치 휴게소까지 오르는 버스인데 가을에 버스를 타면 단풍놀이를 만끽할 수 있단다. 정령치 주차장을 없애고 차 없는 도로를 만들자는 의견이 순아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왔지만 여전히 쉽지가 않다. '좋은 삶'과 '먹고사는 삶'이 서로를 할퀴지 않고, 물어뜯지 않고 손잡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이 길을 오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
정령치에서 능선을 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우선 고리봉 가는 길을 소개할게. 탐방로 시작 지점 안내판 앞에 서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봐. 응. 그쪽이야. 왼쪽은 어디냐고? 거긴 만복대 방향. 만복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지금은 커피 한 잔 하러 고리봉 카페로 가자고요. 탐방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이 고리봉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개령암지와 마애불상군으로 가는 길이야. 일단 우린 고리봉으로 갈 테지만, 내려오는 길에 마애불을 뵙는 것도 좋겠어. 이런 얼굴을 하고 계신 분이니 마음이 무척 편해질 거야.
고리봉 가는 길은 꽃필 무렵이 장관이래. 나는 가을에만 가서 꽃구경은 못했네. 근데 내가 고리봉에 가는 이유는 하나야. 고리봉에 이르기 직전 제법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거기 앉아 마시는 커피가 정말 맛있단다. 부디 그 바위를 지나치지 말고 주저앉아서 주위를 둘러보길. 심호흡을 하고 커피든 무엇이든 텀블러에 담아 간 따끈한 음료를 호호 불며 마셔 봐. 시원한 거 말고 따끈한 거였으면 좋겠어. 거기선 무엇이든 천천히 음미하는 태도가 필요 해. 풍광이든, 커피든.
몸의 힘을 빼고 싶을 때, 서북능선
고리봉에 도착했다면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어. 갔던 길을 되돌아서 정령치 휴게소로 내려올 수도 있고, 고기리 삼거리로 내려올 수도 있어. 고기리 삼거리 방향은 경사가 심하고 집까지 오는 교통편도 마땅치 않으니 비추야. 나는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순환 버스 시간에 맞춰 정령치로 내려오는데 가끔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해. 주로 머리가 복잡하고, 세상이 싫고, 사람이 미울 때, 몸의 힘을 빼지 않으면 그 힘이 나를 칠 것만 같을 때, 서북능선으로 방향을 잡아. 서북능선의 종착점을 대개 바래봉으로 여기는데 굳이 종착점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산은 이어지고 길은 계속되니까.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되는 서북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몸의 힘이 빠지고 단단하게 묶여있던 생각의 타래도 느슨해진단다.
서북능선은 중간에 내려올 수 있는 지점들이 많으니 무리하지 않아도 좋아. 세걸산에서도, 부운치에서도, 팔랑치에서도 하산할 수 있는 길이 있고 그 지점들 모두 정령치 순환 버스가 지나가는 길이야. 시간이 안 맞을 땐 이모한테 전화해. 이모가 몸의 힘을 빼고 싶은 순아의 마음을 귀신 같이 알아채고 데리러 갈게. 지난가을 서북능선에 올랐던 날, 순아가 친구들이랑 천왕봉에 다녀왔다는 얘길 들었어. 나는 세걸산에서 부운치 가는 길 바위에 주저앉아 천왕봉을 바라보며 김밥을 꺼내 먹었는데, 어쩌면 우린 비슷한 높이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겠구나.
세걸산을 지났다면 능선 타는 맛을 만끽하기만 하면 돼. 내리막을 조심하면서 서두르지 않을수록 좋아. 철쭉 군락이 만들어주는 나무 동굴을 지나 팔랑치에 다다르면 내가 이걸 보려고 올라왔구나 싶은 풍광이 펼쳐져. 봄엔 계절이 만들어 내는 빛깔만큼 눈부시겠지만 가을의 고즈넉함이 난 좋았어. 하늘과 맞닿은 능선이 주는 아득함이랄까, 힘내라고 말하기보다 괜찮다고 말해주던 하늘빛을 기억해. 그 하늘빛이 순아에게도 손짓할 거야.
하산 길은 여러 가지야. 팔랑치에서 팔랑 마을 방향으로 내려오면 원천리의 신선 둘레길로 이어져. 바래봉까지 가서 운봉이나 인월로 내려올 수도 있지. 만약 순아가 서북능선을 탔다면, 몸의 힘을 빼고 싶어 그리했다면 하산길엔 이모를 부르렴. 팔랑마을이든 원천마을이든, 인월 달오름 마을이든 달려 갈게. 돌아오는 차 안에선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내 마음 알다가도 모를 때, 만복대에서 더 가보기
정령치 휴게소의 탐방로 안내판 앞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맞아. 만복대 가는 길이야. 그 길이 성삼재까지 이어진단다. 숲을 지나서 탁 트인 하늘과 산맥들을 마주할 때, 그때 심호흡을 하렴. 왼쪽과 오른쪽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걸어 봐. 만복대로 향하는 길은 많이 힘들지 않아. 아마 순아도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만복대에 가봤을 거야. 산내초의 정규 등반 코스 중 하나지. 근데 내가 권하고 싶은 목적지는 실은 만복대가 아니야. 만복대에 도착하면 일단 숨을 고르고 아래로 향하는 길을 바라봐. 저 멀리 성삼재가 보이고 그 사이 쉴 새 없이 능선이 이어지지. 나는 주로 묘봉치까지 갔다가 다시 만복대로 돌아와. 왜냐면 묘봉치로 향하는 길이 너무 아늑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묘봉치에서 다시 만복대로 향하는 길에 바로 이런 풍광을 볼 수 있기 때문이야.
만복대에서 성삼재로 향할 땐 별 시선이 가지 않는 소나무지만 거꾸로 거슬러 올라 만복대로 향할 때면 이정표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나무야. 들판과 하늘이 맞닿을 무렵, 소나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면 까닭 없이 반갑고 정겹더라. 수선스럽지 않지만 따뜻하게 반겨주는 느낌이랄까. 만복(萬福)을 준다는 만복대 부럽지 않은 소담하고 따끈한 환대의 마음이 느껴지곤 해.
묘봉치에서 사과 하나 정도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만복대를 지나 정령치로 가는 길, 능선이 끝날 무렵에 왼쪽 길을 잘 살펴봐. 거기 도시락을 꺼내 먹기에 안성맞춤인 바위가 있어. 눈에 띄게 드러난 바위 하나랑 약간 안쪽으로 휘어져 자리 잡은 바위가 있는데 나는 주로 사람 눈에 잘 안 띄는 바위에서 도시락을 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내려온단다. 아침 9시 30분 즈음 농협삼거리나 실상사에서 버스를 타고 정령치로 올라가서, 묘봉치를 들러 다시 정령치로 내려오면 점심을 먹고도 여유 있게 2시 버스를 타고 다시 산내로 내려올 수 있어.
사람들이 보고 싶다가도 또 사람들이 없는 곳이 그리울 때, 내 마음을 알다가도 모를 때 만복대 아래 저 나무를 만나러 가보렴. 소나무는 순아의 마음을 헤아려 줄 테니.
어깨를 내어주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인월에서 장항으로 가는 둘레길
순아에게 졸업 선물로 길에 관한 글을 건네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건, 바로 이 길을 걸을 때였어. 먼저 인월 카페 제비 뒤쪽으로 난 둑길을 따라가 봐. 경애원을 지나 중군 마을로 접어들면 오르막이 시작돼. 이 길이 지루하다면 아예 중군 마을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아. 선화사가 나올 때까지 쭉 올라가 봐. 오르막을 탈 땐? 맞아. 종종걸음이 덜 힘들어. 선화사 입구에 가끔 풀려 있는 개가 있는데 사납진 않아. 손등을 내밀어서 냄새 맡게 해 주고 슬쩍 갈 길을 가면 돼. 따라오면서 짖는다면 천천히 산길로 접어들어가. 순아가 모습을 감추면 더 이상 쫓아오지 않을 거야.
선화사를 지나 수성대에 이르는 길은 한 사람이 뽀돗하게 걸을 만한 폭이야. 아주 오래전에 산내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 인월까지 장 보러 갔다는 얘기를 들었어. 처음 귀농했을 때 자전거를 타고 인월에 장 보러 간 일이 있었어. 아주 시간이 많고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 때였지. 근데 돌이켜보면 질문 하게 돼.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여유로운가. 나는 내 삶의 속도를 나 아닌 누군가에게 맡겨놓고 있지 않은가. 해답을 얻을 수 없지만 길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끊임없는 질문을 만들어내는 일인 것 같아. 그러다 보면, 그렇게 묻다 보면 언젠간 응답도 들을 수 있겠지.
이 길을 걸으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어. 순아가 마음을 주고받고 싶은 이와 좁은 길 위에서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걸어도 좋겠다 싶어. 나는 걷는 내내 다정하게 서로를 살피며 걷는 이들의 뒷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아. 걷다 보면 장항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둘레길 쉼터가 나와. 이 벤치에 잠시 앉아 보는 것은 어떨까. 내리막을 오래 버텨 준 다리도 위로해 줄 겸.
저 벤치에 앉아서 우리가 감상해야 할 풍광은 바로 이거야. 여기 설 때마다 어떻게든 건물을 비껴서 천왕봉을 눈에 담으려 했었어.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 기후위기든 탈성장이든 시작은 바로 이 장면이라는 걸. 그래도 너무 상심하진 마. 길의 끝엔 이 분이 계시니까.
소나무 당산나무님이야. 소나무라 사철이 푸르르지. 여름엔 울창한 녹음에 살짝 묻혀 있지만 겨울에 비로소 너른 품을 드러내시는 분. 나는 둑길을 걸어 장항마을 둘레길로 완전히 접어들기 전에 나무님만 뵙고 내려오기도 해. 가만히 올려다보면 '아, 조금 더 살아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같아.
순아야. 내가 순아에게 길을 걷자고 청한 건, 순아가 산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더라도 순아에겐 돌아올 곳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어. 그리고 그곳이 여전히 순아를 환대할 것이라는 걸 잊지 않길 바라서였어.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얘기를 건네고 싶어서였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어서였어. 순아에겐 다른 힘이 아닌, 바람과 하늘과 산을 만끽할 힘이 있으니까. 순아는 그 힘의 소중함을 아니까. 그리고 바람과 하늘과 산은 여기서 순아를 기다릴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다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는 건 있더라. 걷다 보면 조금은 나아질 거야. 순아가 내 친구여서 난 참 좋다. 졸업 진심으로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