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 정규영 씨

-월간정상순 7월호 <딸들의 여름밤_여름밤에 쓰는 네 통의 편지1 >

by 정상순

“김정태 씨가 우리 아버지니?”

“응.”

“우영옥 씨가 우리 엄마고?”

“맞아. 그럼 엄마 동생은 이름이 뭐야?”

“동생?”

“응, 엄마 동생.”

“재숙이?’

“맞아. 맞아.”

“재숙이, 영작이, 영달이, 화숙이.”


첫째 삼촌인 영작이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작은 삼촌 영달이, 막내 이모 화숙이까지 한 호흡에 내뱉은 아침, 엄마는 기분이 좋아요. 이럴 땐 내친김에 더 가 보는 거죠.


“재숙이 이모는 아들이 둘이야. 누구지?”


다시 돌아온 (관대한) 초성 퀴즈 타임입니다. 형제들의 이름만큼은 아니지만 ‘용, 진, 경, 혜, 민’등의 힌트를 들으면 엄마는 조카들의 이름까지 착실하게 호명해요. 물론 김경숙 씨는 남편인 정규영 씨와 아버지인 김정태 씨의 이름을 헷갈리기도 합니다. 아주 피곤할 때 그래요. 이를 테면 어제처럼 병원에 다녀오거나 하는 날이요.


여기서 잠깐, 궁금한 게 있어요. 구독자 여러분은 ‘딸들의 여름밤’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인 이 편지글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요? 혹시 절절한 사모곡인가요, 아니면 심청이 뺨을 후려칠만한 효녀 서사인가요. 음, 구독자 여러분이 만에 하나 그런 희망을 갖고 있다면 저는 그 희망에 부응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엄마와 더불어 산 지 고작 일주일이 된 어제만 해도, 치질 치료를 위해 소도시 병원 의사와 마주 앉은 순간, 가지런한 주먹 뼈로 의사의 아래턱을 가격하고 싶은 욕망을 참아야 했으니까요.


여든여덟 먹은 엄마와 사는 쉰둘 여성의 일상은 드라마틱하거나 환상적이지 못합니다. 세 끼를 차리고, 식후 30분에 혈압약과 치질약을 챙긴 후, 따끈한 물을 대령하여 좌욕할 준비를 서너 번 하고 나면 하루가 가요. 그래도 날이 저물 무렵,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내가 뭐 했나.’가 아니라 ‘오늘 하루도 잘 갔네.’라고 여길 수 있어 다행일지도요.


“나쁜 사람”

“누구?”

“김정태 씨”

“정규영 씨 아니고?”

“김정태 씨가 누구지?”

“그건 엄마 아빠.”

“정규영 씨는?”

“그건 우리 아빠.”

“정규영 씨 나쁜 사람.”

“왜?”

“애들을 이렇게 다 놔두고 그렇게 먼저 가나.”

“엄마.”

“응?”

“엄마 큰 딸이 몇 살이게?”

“몇 살인데?”

“쉰여섯”

“아이고, 그렇구나.”

“그래도 ‘애들’을 아빠가 두고 간 거야?”

“아니네. 몰랐네. 다 컸네. 나쁜 사람 아니네.”


불 속에서 부서져 내린 아빠의 몸뚱이를 확인한 다음 그가 자라난 고향집 마당에 유골을 묻고 왔는데도 아빠가 ‘여기’, ‘없다’는 사실은 기이하고 기괴합니다. 죽음이 추상적 사실이라면, 내 손이 닿는 곳에 ‘없’고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 다는 감각은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그만큼 낯설어요.


아빠가 가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에요. 꿈을 꿨어요.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꿈이었죠. 뭔가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아 확신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아빠한테 물어볼게!”라며 기세 좋게 소리쳤습니다. 소리치는 순간 바로 꿈을 깼어요. 모로 누워 자고 있던 저는 번쩍 눈을 떴고 그 순간 처음으로 명확하게 깨달았습니다. 아빠가 없다는 걸, 아빠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걸 말이죠. 그런 식의 깨달음을 원했던 건 아니지만 사실이었죠. 사실은 가끔 사람을 아프게 해요.


어쩌면 6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엄마에게 아빠가 ‘없다’는 것은 영원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기기억장애와 인지능력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에겐 매 순간이 처음이고 현재일 테니까요. 그래도 엄마의 정신과 달리 엄마의 몸은 아빠의 부재를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봐요. 치질이 도졌습니다. 치질은 엄마에게 일종의 리트머스 지 같은 거거든요. 힘들고 신경 쓸 일이 많으면 치질 때문에 고생하던 엄마를 기억해요. 우리 집으로 온 첫날부터 밤잠을 설치며 고통스러워하던 엄마는 마침내 엄마의 엄마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엄마, 아이고 엄마, 너무 아퍼.”


혈관이 터지도록 상을 찡그리고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는 내 엄마의 얼굴을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항문을 자극하는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목격하는 건 제게도 괴로움이었지만 어쩌면 차라리 잘 됐다 싶어요. 엄만 그렇게 울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그게 살을 찢는 똥꼬의 아픔이든, 60년을 동고동락해 온 한 존재를 떠나보내는 일이든 울 수 있다면 다행이니까요.


“아이, 나 왜 이래. 왜 이렇게 우리 딸을 고생시켜. 미안하게.”

“고생시켜서 자꾸 미안하다고 하면 나 진짜 고생스럽다고 했지!”

“아, 안 할게. 그 말 안 할게.”

“엄마 너무 아프니까 병원 가자.”

“싫어. 싫어.”

“엄마, 의사는 이 사람 저 사람 똥꼬 다 들여다보는 사람이야. 엄마 똥꼰지 내 똥꼰지 구분도 못 해. 그게 의사 일이야.”

“싫어. 아이 싫어.”

“엄마, 나 고생시키기 싫댔지. 자꾸 병원 안 간다고 하면 나 개고생 한다!.”


저는 엄마의 아픈 손가락을 작정하고 건드립니다. 며칠을 저항하던 엄마는 그제야 채비를 해요. 자주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입고 시원한 여름 모자도 눌러씁니다. 오가는 길만 1시간 반 안팎으로 걸리는 길이니 나들이 삼아야지요. 다행히 토요일에도 진료하는 병원이 있네요. 똥꼬를 외갓 사람에게 드러내야 하는 여든여덟 살 김경숙 씨는 가슴이 콩닥콩닥합니다. 제 가슴도 덩달아 쿵덕거리네요. 첫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할게요. 똥꼬 돌봄 잘 마친 후 다시 기별하겠습니다. 화요일에 만나요.


2022년 7월 24일

월간 정상순


*월간정상순은 항달에 한번 마을에서 공연을 올리기 위한 플랫폼입니다. 7월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연을 올릴 수 없어 편지글로 구독자를 찾아뵈었습니다. 네통의 편지를 차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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