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수프를 끓여 먹는 여름

-월간 정상순 7월호 <딸들의 여름밤_여름밤에 쓰는 네 통의 편지_2>

by 정상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고구마 줄기를 다듬다 말고 엄마는 묻습니다.


“근데 왜 죄인이라고 했지?”

“하와가 선악과 따 먹었잖아.”

“그건 하와고, 나는 안 따 먹었는데.”


맞아요. 맞고 말고요. 엄마는 가끔, 아니 요즘은 자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야 맙니다. 이런 식으로요.


“김정태 씨가 누구지?”

“엄마 아빠.”

“김정태 씨는 어떻게 됐지, 납북됐나?”

“맞아.”

“멍청이.”

“응?

“멍청이. 잘 좀 숨어 있지, 왜 잡혀 가.”

“전엔 잡아 간 북한 놈이 나쁘다더니.”

“아버지도 나빠. 잘 숨어 있었으면 안 잡히고.”

“안 잡히고?”

“우리 엄마 고생도 안 하고.”

“그러고?”

“나는 의사 하고.”

“아.”

“근데 생각해 보면 의사 해서 뭐 했겠어.”

“왜?”

“하얀 가운 입고 평생 방에 앉아서. 그게 뭐야.”

“아.”


의사! 그러고 보니 똥꼬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네요.

엄마와 함께 갈 병원이 OO시 유일의 똥꼬 병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진료받으러 가기 전에 서치를 좀 했어요. 담당의가 지역 신문과 인터뷰를 했더군요. 세상에, 초등학교 시절 개근상 받은 이력까지 들먹이면 어쩌나 싶대요. 그는 오른손이 한 일을 세상의 모든 왼손이 알게 하는 셀프(과대) 홍보형 인간이었습니다. 어쩝니까. 선택지가 없으니 갔지요. 신문에서 본 의사 사진이 병원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의사는 웃고 있었지만 저는 좀 으스스했어요. 엄마가 간호사와 함께 검사실로 향한 후, 로비 의자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의자는 살짝 삐걱댔지요. 진료실 문이 열리더니 드디어 담당의가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콜을 받고 검사실로 가는 모양이에요. 목례를 했는데, 역시나 본 척 만 척이더군요. 뭐랄까, 나는 너를 봤으나 안 본 걸로 친다, 이런 습이 몸에 흠뻑 밴 사람인 것 같았어요. 단정과 편견, 미안합니다. 근데 사실 별로 안 미안해요.


엄마가 검사받는 동안 저는 간호사 분들께 혈압약 처방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어요. ‘엄마가 사는 곳은 서울이다. 잠시 나의 집에 놀러 오셔서 여기서 처방을 받고 싶다’ 이렇게요. 간호사분들은 의사와 달리 (제가 지금 간호사에게는 ‘분’이라는 접미사를 붙이고 ‘의사’에게는 안 붙이고 있다는 사실 눈치채셨나요? 사실 의사 X이라고 부르고 싶은 걸 참는 중이에요.) 혈압약 이름을 묻더니 처방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죠. 그 사이 엄마도 검사를 마쳤습니다. 아래는 검사를 마친 엄마와 동반 입실 하에 진료실에서 의사와 나눈 대화예요. 괄호는 제가 해석한 의사의 말이고요. 억측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치질이에요.(나이 먹으면 원래 그래요)”

“네.”

“수술을 할래도, 나 참, 나이도 너무 많고.(나이가 너무 많다고!)”

“네.”

“대장 내시경 해봤어요?(뭘 알고나 온 거예요?)”

“아니오.”

“큰 병원 가서 대장 내시경을 하든지.(나는 손 떼고 싶다고, 늙은이들 싫어!)”

“대장 내시경을 해야 하나요?”

“피가 왜 나는지 나는 뭐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다고요.(얼른 가!)”

“항문이 찢어진 건 아니죠?”

“안 찢어졌어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요?(내가 두 번 얘기해야 해?)”

“출혈의 원인을 여기선 알 수 없으니 알고 싶으면 큰 병원에 가라.”

“그래.(말귀는 알아듣네)”


이때 간호사’분’께서 혈압약 처방에 대해 언급하’ 시’ 자 의사’놈’(앗, 실수!)은 이렇게 지껄(앗! 또 실수!)입니다.


“아니, 서울 사람이 왜 여긴 와 갖고…(나도 이 시골 구석이 죽도록 싫다고!)”


사실, 전 이 순간 의사의 아랫턱을 가격하기 위해 가지런히 쥐고 있던 주먹 날에 힘을 뺐습니다. 저 의사 놈 참 불행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자에 대한 존중감도 자신의 일에 대한 경외도 없는 저 놈, 엄마 말대로 하얀 가운 입고 평생 하얀 방에 스스로를 가둔 놈.


얼마 전 영화 <메기>의 이옥섭 감독이 이런 얘길 했어요. 이옥섭 감독은 글쎄, 미운 사람이 있으면 사랑해 버린대요. 저는 이옥섭 감독이 아니라서 의사 놈을 사랑할 순 없겠어요. 하지만 진료실 의자에서 일어나며 목례를 하고 이렇게 말할 순 있었습니다. 물론 속으로요.


‘측은한 놈’


의사는 별로였지만 추앙해야 마땅할 간호사분들 덕택에 병원 문을 닫고 나오기까지 기분이 구리지만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약발이 잘 받는 김경숙 씨는 요즘 주제가를 바꿨답니다. “똥꼬 아파서 죽겠네.” 에서 “똥꼬 나아서 살겠네.”로요. 똥꼬가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한 딸내미는 부지런히 일거리를 대령합니다. 여긴 시골이잖아요. 빨래를 널기도,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기도, 콩껍질을 까기도 좋은 7월이잖아요. 보송한 빨래를 착착 개서 서랍에 넣기도, 부지런히 벗겨 낸 고구마 줄기 김치를 아삭아삭 씹어먹기도, 삶아낸 콩을 곱게 갈아 국수를 후루룩 말아먹기도 좋은 한여름이잖아요.


비건인 저는 여름 보양식으로 동물의 사체 대신 밭에서 열매를 맺은 열 가지 이상의 채소를 푹 고아(!) 수프를 끓여 먹습니다. 마늘과 파를 달달 볶다가 채 썬 양파를 넣어 한번 더 볶고, 도마에서 탕탕 소리가 날만큼 큼직하게 썬 감자, 양배추, 당근 역시 휘리릭 볶은 다음, 절반 크기로 썬 방울토마토와 아기 새송이 버섯을 통째로 넣어요. 자, 이제 파뿌리, 양배추 껍질 등을 우려낸 물을 부어 끓여 줄 시간입니다. 간은 소금으로 하고요. 저는 매콤한 맛을 좋아해서 다진 청양고추를 한 꼬집 넣고 통후추를 엄청 갈아 넣죠. 어렸을 때 엄마는 러시안 수프라는 이름의 케첩 맛 나는 국을 들통 가득 끓여 놓곤 했어요. 저는 그땐 신맛 나는 그 수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가뭄과 장마를 뚫고 열매를 맺은 텃밭 토마토를 보고 있자니 ‘러시안 수프’ 생각이 나대요. 엄만 돼지고기를 넣어 함께 볶다가 끓였던 것 같은데 저는 기름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 큼직하게 구운 두부를 토핑해 먹었답니다.


“맛있어?”

“말 시키지 마세요.”


딸 표 러시안 수프를 먹으며 엄마가 말합니다.


“맛있어?”

“대답할 시간 없어요.”


뽀얀 콩물을 들이키며 엄마는 말해요.


요 며칠 하늘이 장관이죠. 지구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푹푹 찌는 날씨에 하늘은 저렇게 멋질 일인가 싶어요. 지구가 궁금한 것만큼 전 엄마의 머릿속이 궁금합니다. 엄마의 머릿속을 압도하고 있는 기억 몇 조각이 있는 듯한데, 가끔은 그 기억이 사실인지, 아니면 조작과 해석의 결과인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왜냐면 저 역시 그러니까요. 기억이라는 것, 못 믿을 것 중의 하나잖아요. 제가 꾸준히 꾸는 꿈 중의 하나는 제 배우자가 저의 오래된 친구와 바람피우는 꿈인데요,. 어젠 심지어 제 옛 남친이 그 친구와 바람피우는 꿈을 꾸기도 했어요. 가끔은 꿈이 너무 선명해서 배우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답니다.


“어제 꿈에 당신이 내 친구랑 바람났더라. 혹시 그런 일 있으면 나에게 미리 말해 줘.”


혹시라도 제가 엄마 나이가 되어 꿈을 기정사실화 하거든 이 편지를 읽는 여러분이 정정해 주세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네 꿈이라고. 부탁해요. :)


꿈뿐인가요. 제멋대로 기억하고 제멋대로 추억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나는 A에게 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A가 기억하고 있는 나는 전혀 아니었던 경험, 없나요? 전 있어요. 그 사실을 안 순간 제 표정을 거울을 본 듯 기억해요. 얼굴 근육의 떨림과 긴장이 여전히 제 몸에 남아 있거든요. 이젠, 왜, 꼭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하나,라고 생각할 만큼 여유가 생겼지만 20대 후반의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하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제 삶의 목표를 잡지 않았답니다. 정말 다행이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을 그때 버린 것 같아요. 지금은 더 빨리 버렸어도 좋았겠다 싶고요.


지난 편지에 말씀드렸잖아요. 하루가 저물 때 ‘내가 오늘 뭐 했나’라고 생각하기보다 ‘오늘 하루도 잘 갔네’라는 문장을 마음에 둔다고요. 하지만 이게 늘 가능한 건 아니에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쓸 뿐이죠. 십 년 전엔 암 투병 중인 시아버님과 함께 살았어요. 저는 그때 아버님의 보호자를 자처했습니다. 병든 시아버지를 모시는 효부 프레임이 만들어졌죠. 그리고 저는 그 프레임을 부정하지 않았어요. 보호자라는 역할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자리는 강력한 힘을 가집니다. 가끔은 무자비해지고요. 가장 비열한 순간은 ‘아픈 자’를 ‘약한 자’로 규정하고 군림하는 장면이에요. 저는 아버님을 나에게 밥 얻어먹는 자, 나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존재로만 생각했어요. 아픈 자였던 그가, 실은 우리 집에 온기를 불어넣고, 반려견을 돌보고,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정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은 건 그가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저는 그저 며느리였으면 좋았을 걸 싶어요. 보호자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았으면 좋았겠다 싶어요. 물론 며느리는 딸과 아주 많이 다른 위치고 이것만 이야기하기에도 여름밤은 가고 말겠죠. 하지만 이번엔 무턱대고 딸이고 싶어요. 단기기억장애와 인지능력장애를 앓고 있는 이의 보호자가 아니라 ‘러시안 수프’를 끓여주던 엄마의 딸 자리를 잘 지키고 싶습니다. 네, 딸들의 여름밤을 만끽하고 싶어요.


부디 당신도 깊은 밤, 여름의 공기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목요일에 또 만나요.


2022년 7월 26일

월간 정상순

KakaoTalk_20220816_111923553.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쁜 사람, 정규영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