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허하노라

월간 정상순 7월호 <딸들의 여름밤_여름밤에 쓰는 네 통의 편지3>

by 정상순

여러분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시나요.

저는 물 끓이는 것으로 시작해요. 전기 포트 가득 물을 끓여 일부를 보온병에 담아 놓고 일부는 엄마가 하루 종일 마실 작두콩차를 뭉근하게 내려놓습니다. 나머지는 제 몫입니다. 아침에 차를 마셔요. 전에는 차 마시며 담소하는 게 좋았는데, 요즘은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공기를 느끼며 혼자 마시는 차가 좋아요.

명상과 차를 연결하는 이유도 최근에 찾았어요. 차가 스스로를 우려내는 동안 잠시 머물게 되잖아요. 머무는 시간, 기다림의 순간이 차를 마시는 진짜 이유구나 싶어요. 차를 다 마시면 간단한 몸풀기를 합니다. 몸풀기로 적당히 몸이 이완되면 태극권을 하고요. 사부님은 늘 말씀하세요.


“더 할 수 없이, 천천히 (태극권을) 하세요.”

이 말씀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아침에 일어나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시고 태극권을 하는 이 시간, 참 평화롭기만 할 것 같은 이 시간엔 늘 긴장감이 어려 있습니다. 게다가 그 긴장감은 낯선 것이 아니에요. 돌이켜보니 오래전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부터 몸에 밴 긴장감이더군요. 갓난쟁이를 겨우 재우고 집안일을 하거나 일주일 만에 샤워를 할 때 아이가 깰까 봐 노심초사하던 마음, 바로 그것이더군요.

두 딸이 등교 준비를 위해 일어나기 전에 저는 이 시간을 고스란히 누리고 싶어요. 요즘은 엄마가 기침하기 전에 제 루틴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기상 시간을 조금씩 당깁니다. 6시 반은 약간 빠듯해서 5시 반으로 알람을 맞춰놔요. 그러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완벽한 아침형 인간은 아니어서 늘 잠이 좀 부족한 대로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수면의 질이 나쁘지 않아 체력도 바닥은 아니네요.

지난번 편지에서 잠깐 얘기했지요.

‘돌보는 자’가 ‘군림하는 자’로 둔갑하는 순간에 대해서요.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고, 시아버님과 지내면서, 그리고 6년 전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인간이구나.’

돌보는 일은 내 꼴을 보는 일이잖아요. 더구나 그 일이 집약되고 집중되면 직면이라는 고상한 말과는 달리 컨트롤 자체가 불가한 상태가 되어 버리잖아요. 나를 통제할 수 없으니 남을 통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요. 근데 이런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 건 온전히 내가 못난 탓일까요, 정말 내가 인간이 덜 돼서 그런 걸까요.

5월 말 즈음부터 아빠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병원에 가려하지 않고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죠. 가족이 위기를 예감하기 전에 아마도 아빠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직감한 것 같았습니다. 삼 남매는 돌아가며 아빠를 돌보기로 했어요. 일주일에 이틀 반을 서울에서 지내는 일상이 시작되었죠. 날이 갈수록 살 거죽이 앙상한 뼈를 드러냈지만 18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성인 남성을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돌려 눕히거나 기저귀를 채우기 위해 하반신을 들어 올리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자는 죽음에 임박해 몸속의 것을 모두 내놓기 시작한다고 해요. 숙변도 그중 하난데 며칠간 지속된 설사와 변을 받아낸 것은 오빠였습니다. 우선은 그 자리에 오빠의 아내를 앉히지 않을 수 있는 우리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돌봄을 가능하게 해 준 수많은 존재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서울에 머무는 동안 오전 8시에서 정오 무렵까지 집 밖 카페에서 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와주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아빠의 돌봄을 돕겠다고 하셨기 때문이지요. 주중에 서울행을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제 아이들이 얼추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이런 결정을 할 수는 없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요.

아빠가 숨을 거두고 소방대원과 경찰이 다녀갔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집’에서 태어나는 일도, 숨을 거두는 일도 퍽 드문 일이어서 ‘집’에서 눈을 감은 아빠의 후처리는 매우 요란스럽고 소란스러웠어요. 자고로 근대인이란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눈을 감아야 하는데 말이죠.


병원에서 죽지 않은 아빠는 사망 선고를 받기 위해 경찰 소속 의사가 집으로 방문하기까지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망 선고가 떨어지자 가족장을 치를 장례식장에서 아빠를 옮기기 위한 앰뷸런스를 보냈어요. 한데, 시신을 옮기고 운전을 하고 장례식장에 인계하는 일을 담당하는 분이 단 한 사람이더군요. 그분은 들어오자마자 연신 허리를 굽히며 시신 옮기는 일을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면서 난색을 표했습니다. 다행히 저희 집엔 오빠도 형부도 있었고 저 역시 힘 좀 쓰는 지정성별여성이라 문제가 없었지만 1인 가구이거나 가족 구성원이 노약자인 경우 죽은 자는 어떻게 옮겨져야 하는 걸까요.

아빠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던 저는 김용균을, 홍성대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건을 이토록 쉽게 잊는 이 사회가 지겨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혼자 오신 거예요? 이 힘든 일을 하러 혼자 오신 거예요?”


담당 직원은 연신 땀을 훔치며 어색하게 웃으셨지요. 아마도 이 직원은 장례식장에서 외주를 준 수십 개의 회사 중 하나에 소속되어 있을 거예요. 유가족을 만나는 첫 사람, 장례식장에 시신을 안치하기까지 극도의 긴장과 흥분과 고통에 빠져있을 유가족을 상대해야 하는 첫 사람이 16층 아파트에서 안치실까지 혼자 시신을 옮기느라 노동한 결과는 단돈 8만 원이었습니다. 회사에 커미션을 떼이고 나면 해당 직원에게 돌아가는 몫은 대체 얼마가 될까요.

오늘 편지는 여름밤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제 심박수가 빨라지는 게 느껴지니까요. (우영우 버전)

두 통의 편지에서 자랑삼아 이야기 한, 얼핏 다정하고 따뜻해 보이는 모녀의 하루하루는 끝이 있기에 그리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후 엄마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세요. 언니 집으로요. 아빠의 장례를 마치고 우리 집으로 오기 전에 엄마는 언니네, 오빠네를 거쳤지요.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최상의 고통에 해당한다죠. 그런 엄마가 비록 딸아들의 집이지만 이 집 저 집 떠도는 게 최선인지 저희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단기기억장애가 있는 엄마에겐 안정감이 참 중요한 요소인데 말이죠.


아마도 주요 거처는 언니네가 될 것 같아요. 공적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있는 곳이 거기라서요. 하지만 각자 엄마와 함께 지내는 기간이 한 달이 넘지 않도록 삼 남매가 순환 돌봄 하려고 합니다. 집약되고 집적되는 돌봄은 상호 돌봄이 되지 못하고 상호 학대가 되어버리니까요. 돌봄의 역할은 더 많은 이들에게 맡겨져야 하고 어쩌면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돌봐야 하니까요. 성별화 된 돌봄의 영역을 이대로 고착시켜 아들의 자리에 며느리를 앉히고 딸의 자리에 이주여성을 앉히는 방식으로는 영원히 돌봄이라는 말 대신 ‘착취’와 ‘학대’라는 말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언젠가 한 여성단체의 대표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가사 근로자법 관련 이슈와 관련된 발언이었던 것 같은데, 그 여성의 발언을 듣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희 집 이모님(가사근로자를 칭함)이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법적 보호를 받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멀리서 오신 그 이모님을 제가 얼마나 사랑한다고요.” 이 말이, 여성 혐오를 일삼는 남성들이 “내가 여성혐오자라니요, 내가 우리 엄마를 얼마나 좋아한다고요.”라고 씨부리는 말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혔다면 제가 너무 과한 걸까요? 이주 여성이 제대로 된 임금과 법적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일만큼이나 고국에 두고 온, 돈을 벌기 위해 두고 온 가족과 그녀의 땅에서 살만한 삶을 누리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돌봄에 공백이 생긴다는 건, 누군가 그 돌봄을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먹고사니즘에 잡아 먹힌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일이 바깥 일과 집안일에 위계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 위계가 온갖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지요.


우리 집엔 현재 모두 7명의 동물이 살고 있어요. 6명의 인간 동물과 1명의 비인간 동물이죠. 인간 동물 중 한 명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집을 찾습니다. 다른 한 명은 나의 엄마고 다른 둘은 딸들이며 나머지 한 명은 딸들의 학교 선배이자 저와 배움을 함께 한 하우스 셰어러죠. 어제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어요.


“여러분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페미니스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호 돌봄'이라고 생각합니다.

살피는 거요.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하면서 서로를 살피는 자매의 전당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 자매의 전당은 제가 5년 전부터 셰어 하우스를 하고 싶은 욕망을 불살랐을 때 지은 이름이에요. 뭉치네가 좋으면 그걸로 합시다. (뭉치는 자매가 아닌가, 수컷이라? 이것도 얘기 거리가 되겠군요!) 암튼 상, 호, 돌, 봄 하는 우리 집이 됩시다.”


네. 뭉치는 저희 집 반려견의 이름이에요. 엄마는 (엄마가 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식탁 밑에서 잠만 자는 뭉치가 의아합니다. 마늘을 까고, 콩껍질을 벗기고,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먼지를 닦는 노동을 통해 자신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엄마와는 전혀 다른 존재니까요. 엄마에게 뭉치라는 존재의, 그저 존재한다는 자체로 의미 있음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여요. 존재함을 쓸모 있음으로 살뜰하게 전환해 버리는 근대인의 사고방식은 더더욱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서툴게 하겠죠.

사위어가는 아빠의 몸을 목도하며 기저귀를 갈면서 즉시 아빠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길 순 없었어요. 하지만 제 자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 일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나는 과연 아빠라는 몸뚱이를, 존재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었을까. 단기기억장애와 인지능력장애를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사는 일이 독박돌봄이 된다면 나는 여전히 하루를 마감하며 ‘오늘 하루 잘 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컨대, 더 많은 남성들이 돌봄의 장으로 나오길 바랍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터칭과 호흡을 통해 가능한 일이라는 걸 더 많은 남성들이 알아채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딸들에게 더 많은 여름밤과 여름낮과 사시사철의 여유가 주어지길 바랍니다.

너무 갑작스러운가요. 실은 편지의 목적은 바로 이 문장이었어요.


“남자들에게 돌봄을 허하노라.”

토요일에 또 만나요.


2022년 7월 28일

월간 정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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