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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May 30. 2023

엄마의 아침 식탁 11

나의 효율, 엄마의 예술

날이 갰다.

햇볕을 제대로 보지 못한 고사리를 널어 말리고 쌓인 빨래를 돌리고 물기를 흠뻑 먹어 원심력을 갖기 시작한 양상추 이파리를 묶어준다. 그 사이 엄마에게 빨래 널기를 맡기고 은행일도 보고 온다. 은행과 주유소까지 들러왔지만 엄마는 아직 빨래를 다 널지 못했다. 나의 원가족이 빨래를 너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 일단 젖은 빨래를 마치 마른빨래 대하듯 꼼꼼하게 갠다. 접힌 빨래를 한 손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 탕탕 두드린다. 그다음 다시 빨래를 펼쳐 넌다. 그렇게 널어놓은 빨래엔 주름 하나 남아 있지 않다.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게다가 오늘 엄마에게 주어진 미션에는 서른 켤레는 족히 넘을 양말을 한 쌍씩 집게에 집어 말리는 일까지 포함되어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엄마가 하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낯선 일을 할 때 엄마는 자기 방식을 고집한다. 한 켤레를 동시에 집어 말려도 충분하지만 한쪽씩 말리고 싶어 한다. 물론 그쪽이 더 빨리 마른다. 하지만 집게가 충분치 않고 시간도 더 걸린다. 오랜만에 나온 해 아래서 해야 할 일이 천지다. 젖은 고사리를 넓게 펼쳐 말리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굼뜬 엄마를 보는 일이 오늘따라 쉽지 않다.  나는 결국 엄마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만다.


"엄마, 예술작품하는 게 목적이 아니야. 그냥 널어."


삼십 년쯤 전에 어두운 소극장 무대에서 날 바라보던 연출이 이렇게 말했다.

'그냥 놀아 봐'

조명을 받고 서 있던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객석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그의 실루엣은 볼 수 있었다.  '그냥'이라는 말. 참 심통 맞은 말이었다. 무대에서 '그냥'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고 배웠던 나는 '그냥' 놀아 보라는 연출의 아구창을 갈겨주고 싶었다. 신입 단원으로서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던, 생사여탈권을 연출에게 양도했던 나는 이미 목덜미를 단단히 잡힌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달랐다. 무엇을 해야할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수행했다. 실은 나는 효율성을 앞세우면서 그냥, 이라는 말 뒤에 숨었을 뿐이다. 그래도 또 엄마는 내 방식을 수용한다. 가끔은 엄마가 내 맘대로 하고 싶다고 소리라도 질렀으면 싶다. 그러면 조금은 내가 덜 어리석게 느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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