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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May 27. 2023

엄마의 아침 식탁 10

허물어지기

어제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중받고 싶어요."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던 중이었고, 다른 사람 때문에 내 가치관을 바꾸어야 했던 경험을 나누던 중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상투적이지만 절박함이 느껴지는 문구였다. 조금 더 이야기를 보태달라 청했다. '타인에 의해 판단당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원한다고 학생은 말했다. 어찌할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조금 더 밀고 나가보기로 했다.


"근데....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한 걸까요."


나와 학생들은 대부분의 수업 시간을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신념은 실재 아닌 환상임을 이야기하는데 썼다. 남성이 우월해져야만 한다는 욕망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했고, 이로써 남성이 우월하고 여성이 열등하다는 신화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남성이 여성과는 '다르다'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방식 자체가 차별임을 확인했다. 환상과 신화를 실재와 도덕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장면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어떨까.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는 확신은 어떻게 신념이 되었을까. 유기'물질'임이 분명한 '내'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자 하는 바람은 왜 염원이 되었을까.


나는 매일 아침 허물어지는 엄마를 본다. 문득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내 집은 어디냐."라고 묻는 엄마를 본다. 자기만의 방에서 아빠 이름을 부르며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기만의 방을 열어젖히고 거실로 나올 땐 방긋 웃으며 굿모닝을 외치는 엄마를 본다. 아마도 엄마에게 '자기만의 방'은 허물어질 준비를 하는 곳일 게다. 자신의 고독과 슬픔과 상실감을 앞세우지 않고 다른 존재들과 어울리고 더불어 살며 기꺼이 허물어지고자 준비하는 곳.


자기만의 방을 다 읽고 나면 학생들과 각자의 자기만의 방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나는 그 시간이 몹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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