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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May 26. 2023

엄마의 아침 식탁 9

더불어 삶

학교 수업이 있는 금요일이다.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갈 채비를 한다.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엄마는 학교 공양간에서 점심으로 나갈 음식 재료를 손질한다. 수업 전에 10분 일찍 가서 학생 상담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마음은 더 바쁘다. 엄마가 약 먹을 시간, 학교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여유 있게 잡아뒀어야 했다. 오르막을 오르는 엄마의 숨이 가빠진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말은 하지만 종종 대는 내 마음을 본다.


쉬는 시간, 잠시 공양간에 들렀다. 오늘 엄마에게 주어진 미션은 마늘종 손질하기이다. 농장에서 올라온 마늘종 양이 어마어마하다. 엄마는 잘라낸 마늘종 자투리를 어쩌지 못하고 줄을 세워두었다. 빨리 하라고 채근하는 이 없으니 엄마는 자신의 속도와 취향을 맘껏 존중하며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엄마가 공양간에 있는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 있게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시간이 끝나고도 교실을 떠나지 않는 학생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호사도 누렸다. 느긋했고 평화로웠으며 가볍고 산뜻했다. 돌봄이라는 노동이 나눠졌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 엄마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자가 아닌,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이로 존재했다. 세심한 환대 덕분이었다. 


오늘은 엄마를 부탁했지만 18년 전엔 아이들을 부탁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할머니가 마늘종을 손질하고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늘 이 학교와 분투 중이다. 싸움이라면 싸움이고 성장이라면 성장이라 할 분투를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분투의 현장에서 나의 돌봄 노동은 나눠지고 가벼워진다. 분투한 만큼 믿고 의지하며 내 어려운 처지를 드러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숙경언니는 가방 한가득 반찬을 담아 주었다. 죽순볶음, 머위대나물, 채소튀김. 죽순과 머위대는 모두 언니가 숲을 헤치고 직접 채취한 것이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게 해 주는 이.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엄마에게 수도 없이 말할 수 있는 이. 이들 덕분에 또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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