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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May 24. 2023

엄마의 아침 식탁 8

된장국에 콩물을 섞는다. 식은 밥을 으깨듯 냄비 바닥에 담은 후 섞은 국물을 부어 끓인다. 밥알이 퍼지길 기다린다. 오늘은 된장국콩물죽이다. 남은 음식과 재료를 이용해 제3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매일매일의 아침 식탁을 지켜내는 비기다.


얼마 전, 좋아하는 배우가 투톱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마지막 화를 볼 때까지 매번 훌쩍였다. 죽음에 이르는 삶을 그린 드라마였다.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은 기쁨이고 축복이다. 판단하고 분별하지 않으면서 감상자 모드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 화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소개되니 즐거움은 배가 됐다. 죽어가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음식을 만든다. 그냥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출중한 솜씨다. 햇살이 가득한 부엌에서 가지런한 조리도구가 반짝인다. 식탁에 내어진 음식은 플레이팅마저 아름답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목적 양쪽에 온기가 있다.


하지만 나는 궁금하다. 병든 아내가 다 먹지 못한 음식은 어떻게 됐을까. 복잡한 조리과정 후 엄청나게 쌓여있을 설거지는 누가 다 했을까. 아이들과 즐겨보는 예능이 있는데 (게스트가 언니들 일색인 프로라 더 재미나게 보는데) 늘 음식을 걸고 게임을 한다. 지고 이기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지만 아이들이 늘 힘들어하는 지점이 있다. '저렇게 한 입씩 맛보고 남은 음식은 어떻게 될까' 나는 아이들의 질문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식구들이 모두 떠난 밥상을 치워본 사람은 안다.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일도 살림이지만 남은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역시 살림이라는 걸. 이 일을 누군가 혼자 독박 써야 할 때, 세상의 평화는 깨진다. 엄마는 자신의 그릇에 늘 물을 부어 다시 부셔 먹는다. 음식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이 그릇을 씻을 이들의 노고를 알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것을 실행하는 것. 그것이 온전한 앎임을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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