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하되 겸손하기
나는 여전히 나를 생각한다.
엄마와 더불어 살고 있는 한 달 가까이 나를 압도하는 건 여전히 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아있는 나의 삶이다. 처음엔 어떻게 죽어야 할까를 고민했다.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나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색은 이 대화 이후로 접었다. 잠시.
-엄마가 만약에 아프면, 엄마가, 너희들한테 얘기는 할 건데, 얘기 안 하고 사라지면 너희가 너무 슬플 테니까. 그래서 어디 있다고 얘기는 할 테니까, 그리고 떠날 테니까, 찾지 말고, 만나러 오지도 마.
=(싱긋 웃으며) 엄마, 우리가 알아서 할게~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큰딸 앞에서 내 모든 의지는 기분 좋게 무력해졌다. 자만이었고 오기였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분명했는데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엄마, 봐봐. 지금 엄마도 할머니한테 엄마가 알아서 하고 있잖아 ‘ 이런 훈수가 분명했는데 순순히 받아들여졌다. 민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건 지금 네 엄마를 민폐로 여기고 있다는 힐난일 수도 있었는데 그리 여겨지지 않았다. 딸의 말은 그저 ‘여전히 할 수 있다 ‘는 감각에 대한 산뜻한 경계였기 때문이다.
조금씩 더 기대.
더 허물어져.
큰딸의 문장은 내게 이렇게 들려온다.
여전히 나는 짐을 더 줄이고 시공간을 덜 차지할 방법에 골몰한다. 늘 이곳이 진짜가 아니고 저곳에 진짜가 있으리라는 오래된 몰두를 거두지 않는다. 하지만 눈뜨고 일어나 이런 풍광을 마주하게 되면 내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