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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Jun 04. 2023

엄마의 아침 식탁 13

무해한 존재

일요일. 화장실에 다녀온 엄마는 다시 잠을 청한다. 큰 아이는 늦잠을 즐기는 중이다. 뭉치의 아침 산책 담당인 작은 아이가 친구네 놀러 가 집을 비운 아침, 나는 조금 늦게 뭉치와 산책을 나선다. 겁이 많은 뭉치는 제가 밟은 낙엽 소리에 놀라고 뒷발질하다 흙이 튀면 놀란다.  태어나 삼주 후부터 우리와 함께 살았고 학대를 당한 일은 없으니 조심성 있고 겁이 많은 성향임이 분명하다. 겁이 많은 뭉치는 무해하며 안전하다. 어쩌면 어울려 살기 좋은 존재들의 특성은 그런 것일 테다. 


뭉치를 보면서 자주 생각했던 '무해한 존재'에 대한 이미지가 요즘은 엄마와 겹친다. 엄마는 의견을 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욕구를 타인에게 맞춘다. 자기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살핀다. '퇴행성 뇌질환'으로 설명되는 치매를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살핌은 지속된다. 엄마에게 지금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무한히 무해한 존재'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무해한 존재'들이 주는 안온함의 크기 역시 무한하다. 산책을 마친 후 편안하게 누워 낮잠을 즐기는 뭉치가 그러하다. 빵 한 조각조차 살아있는 것으로 여기는 엄마가 그러하다. 시간과 공간 양쪽에서 자신의 영역을 최소화하는데 몰두한다. 경계를 무시하지 않지만 조심스레 허문다. 


쉰 중반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나는 유익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추구하느라 유해한 존재가 되었다. 무해한 존재를 꿈꾸기에는 돌아볼 것이 너무 많은 오십 세, 하늘의 섭리를 어렴풋하게나마 알아야 할 지천명이다. 


이보다 엄중한 명령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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